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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판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심판학교의 늙은 교관이 첫날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일종의 격려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격려가 아니라 예언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말이 있다. 받아들인 순간에는 하나의 의미였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 청구서처럼 도착하는 말.
청구서는 시월의 어느 밤에 도착했다.
구회말 투아웃, 풀카운트. 사만 명의 함성은 부풀어 오를 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런 함성은 소리라기보다 기압에 가깝다.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공이 그의 손끝을 떠났고 —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사라진다. 이십 년 동안 홈플레이트 뒤에 서 본 인간만이 아는 종류의 정적이다. 세상에 공 하나만 남는다. 하얗고, 둥글고, 시속 백사십몇 킬로미터로 날아오는, 완벽하게 무의미하고 완벽하게 절대적인 물체.
공이 미트에 꽂혔고, 나는 오른팔을 뽑았다.
스트라이크 스리. 게임 오버.
세상은 이 초쯤 조용했다. 그리고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쪽 더그아웃은 샴페인 마개처럼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고, 반대쪽은 오래된 사진 속 사람들처럼 굳었다. 나는 마스크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심판이라는 직업이다. 세상을 두 쪽으로 가르고, 자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 방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모든 채널에 같은 그래픽이 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나타내는 흰 네모, 그리고 그 바깥에 찍힌 빨간 점 하나. 공 반 개 분량의 바깥. 아나운서는 '세기의 오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커피를 끝까지 마셨다. 그런 순간에도 커피 맛은 제대로 느껴진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시스템의 기묘한 점이다.
볼·스트라이크 판정은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다. 번복할 제도도 없고, 사과할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다. 리그 사무국은 성명서를 냈고, 성명서라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기 위해 쓰이는 문서다. 나는 시즌이 끝나고 조용히 마스크를 반납했다. 반납하는 데는 서류 한 장이면 충분했다. 이십 년짜리 인생을 종료하는 서류치고는 너무 얇았지만, 서류라는 것은 원래 인생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아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열세 시간 타고, 완행열차를 두 시간 타고, 태어난 마을로 돌아왔다.
그것이 대략적인 경위다. 대략적이지 않은 경위를 이야기하자면 — 그것은 훨씬 긴 이야기가 된다.
히가시노는 강과 언덕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특징을 꼽자면 편의점보다 자판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자판기의 절반쯤이 아직도 백 엔대의 캔커피를 판다는 것 정도다. 도쿄의 시간이 급행이라면 이곳의 시간은 완행이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마을 초입의 배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남긴 건물이다. 아버지 이야기는 별로 할 것이 없다. 빚과 함께 사라졌고, 건물 하나가 남았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란 대개 그런 식으로 정리된다. 어머니는 그 건물을 팔지 않고 세를 놓으며 도시락 공장 야간조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많지만, 어머니에 대해 말이 많아지는 것을 어머니 본인이 제일 싫어할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것일수록 말하지 않는 것으로 지키는 집안이었다.
매일 아침 다섯 시 사십 분에 눈을 뜬다. 알람은 필요 없다. 이십 년 동안 매주 다른 도시로 날아다닌 인간의 몸 — 동부에서 서부로, 서부에서 중부로, 시즌 내내 시간대를 갈아타는 것이 심판의 생활이다 — 에는 어딘가에 독자적인 시계가 내장되어 있고, 그 시계는 은퇴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레인에 흩어진 공을 줍는다. 어제저녁 손님들이 쳐 낸 공들이다. 보통 백이십 개에서 백사십 개 사이. 나는 그것을 하나씩 주워 바구니에 담는다. 허리를 굽히고, 줍고, 담는다. 생각이라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작업이고, 바로 그 점이 이 작업의 미덕이다.
그다음 피칭 머신 세 대에 기름을 치고, 동전함을 비우고, 장부를 쓴다. 천장의 형광등은 세 개 중 하나가 나가 있다. 갈아 끼우는 데 오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다리도 있고, 새 형광등도 창고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아침 그것을 올려다보고, 매일 그냥 지나친다. 마흔을 넘기면 인생에는 그런 품목이 하나둘 늘어 간다. 고칠 수 있지만 고치지 않는 것들. 그것들은 서랍 깊숙한 곳의 영수증처럼 조용히 쌓여서, 어느 날 문득 세어 보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있다.
점심에는 대개 상점가의 식당에서 정식을 먹는다.
가는 길에 채소 가게 앞을 지나면 아주머니들이 목소리를 낮춘다. 낮춘 목소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보통 목소리보다 잘 들린다.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마을은 나를 두 가지 항목으로 기억하고 있다. 학교를 처음으로 고시엔에 데려간 여름, 그리고 그 콜. 전설과 오심. 어느 쪽도 정정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정정 기사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월의 어느 낮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정식을 먹고 있는데 식당의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특집이 시작됐다. 검증, 올해의 오심들. 익숙한 그래픽이 나왔다. 흰 네모, 빨간 점. 식당 안의 몇몇 젓가락이 멈췄고, 몇몇 시선이 흘긋, 이쪽을 향했다. 나는 젓가락을 놓았다.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편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 두 술, 세 술, 천천히, 끝까지. 된장국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계산하고 나왔다. 별다른 신념이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다. 다만 밥을 남기고 도망친 날부터는 이 식당에 다시 올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도망이라는 것은 한 번 시작하면 목적지가 없다. 나는 그것을 태평양 건너에서 이십 년에 걸쳐 배워 온 참이었다.
"오. 계란 좀 사다 줘. 열 개짜리."
철물점의 켄지는 셔터를 올리다 말고 그렇게 말한다. 거의 매일 아침 같은 대사를, 같은 억양으로. 고등학교 때 좌익수였고, 지금은 삼대째 철물점 주인이다. 이 마을에서 나를 흘긋거리지 않는 유일한 인간이기도 하다.
"내가 왜." 나는 말한다.
"가는 길이잖아." 그가 말한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계란을 사서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켄지는 씩 웃고, 계란값을 주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오심에 대해서도, 사라졌던 이십 년에 대해서도. 그 침묵의 대가로 치면 계란 한 팩은 터무니없이 싼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하필 계란인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참 뒤에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밤에는 이층의 방에서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대개는 간단한 것들이다. 파를 잔뜩 넣은 된장국, 생선 한 토막, 밥.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도마 소리와 된장 냄새에는 사람을 오늘이라는 날짜에 붙들어 매어 주는 효능이 있다. 선풍기가 고개를 젓고, 창밖에는 마을의 불빛이 몇 개. 텔레비전은 없다. 야구 중계가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는 기계를 침실에 두지 않을 정도의 분별은 나에게도 남아 있다.
그런 생활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칠월 첫 번째 토요일, 저녁 여섯 시 사십 분경이었다.
종소리가 울렸고, 세일러복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높이 묶은 머리에, 어깨에는 낡은 캠코더 가방. 아이는 가게 안을 둘러보지도 않고 최단 거리로 카운터까지 걸어왔다. 마치 오래전에 이 동선을 몇 번이고 연습해 본 사람처럼.
"저기요. 아저씨가 그 8번이에요?"
"……뭐?" 나는 장부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전설의 중견수요. 고시엔 데려갔고, 프로 갈 뻔했고, 사라졌다가, 메이저리그 심판이 된 사람."
볼펜이 반 박자 멈췄다. 반 박자는 심판에게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세이프가 아웃이 되기도 한다.
"……사람 잘못 찾았다."
"잘못 안 찾았는데요."
아이는 가방에서 복사지 두 장을 꺼내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탁, 탁. 이십오 년도 더 묵은 신문들이었다. 담장 앞 공중에 떠 있는 열여덟 살의 내가 거기 있었다. 등번호 8. 그 옆 장에는 스물한 살의 내가 있었다. '프로 지명 확실'이라는 활자와 함께. 오래된 신문의 잉크 냄새는 복사기를 통과해도 어딘가에 남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찾았어요. 인터뷰 좀 해 주세요. 학교 방송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거든요. 전국 공모전에 낼 거예요. 주제는 '우리 마을의 얼굴'."
"안 해."
"왜요?"
"그 얘기는 재미없어. 끝이 안 좋거든."
"끝이 안 좋은 얘기가, 제일 재미있는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겁이 없는 눈이었다. 다만 겁이 없다는 것과 상처가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나이의 눈에서 그 차이를 읽어 내는 능력을, 나는 별로 갖고 싶지 않은 경로로 습득했다.
"마을의 얼굴이면 딴 데 가. 다이후쿠 가게…… 는 없어졌나. 그럼 철물점. 삼대째다. 말은 나보다 백 배 많고."
"철물점 아저씨는 벌써 찍었어요. 사십 분 찍었는데 쓸 만한 건 사 분이에요."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그랬어요. 진짜 얼굴은 배팅센터에 있다고."
켄지. 나는 계란값을 올려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목소리를 반 톤 낮췄다. 좋은 인터뷰어는 급소의 질문 앞에서 목소리를 낮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 마지막 공. 진짜로 스트라이크였어요?"
레인 쪽에서 피칭 머신이 규칙적으로 공을 뱉고 있었다. 슝, 깡. 슝, 깡.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늘 누군가가 공을 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날도 있고, 전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날은 후자였다.
"……나가라."
"저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아이는 나가지 않았다. "근데 세상 전부가 그 공 하나로 아저씨를 판정하는 건 —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해서요.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그 문장은 이상한 각도로 들어왔다. 바깥쪽 낮게,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을 스치듯이. 치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하는 코스로. 나는 제일 시시한 질문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이름이 뭐야."
"사키요. 미즈시마, 사키."
볼펜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일 초. 이 초. 삼 초.
미즈시마라는 성은 일본에 대략 몇만 명쯤 있을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몇 페이지에 걸쳐 늘어서 있을, 지극히 평범한 성이다. 나는 그렇게 판정을 내리고 볼펜을 다시 움직였다. 이십 년간 판정으로 먹고산 남자가 그 여름에 내린 첫 번째 오심이었다. 오심의 문제는 내리는 순간에는 그것이 오심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알면 내리지 않았을 테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일수록 사람은 늦게 이해한다.
"또 올게요." 아이는 문가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두 개 다 대답, 그때 들을래요. 인터뷰랑 — 아까 그 질문이랑."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카운터의 신문 복사지를 집어 들고 쓰레기통 앞까지 갔다. 발로 페달을 밟아 뚜껑까지 열었다. 뚜껑이 열린 채로 오 초쯤 지났다. 그리고 나는 뚜껑을 닫고, 복사지를 장부 밑에 끼워 넣었다. 아이가 찾으러 오면 돌려줘야 하니까, 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설명했다. 나 자신은 그 설명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날 밤, 이층의 방에서 나는 오랜만에 천장을 보며 오래 깨어 있었다.
미즈시마. 그 성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불러 본 것이 언제였는지 계산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계산이라는 것은 답이 나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작업인데, 그 계산은 답이 나오는 순간부터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아이의 얼굴을 생각했다. 겁이 없는 눈. 급소로 직진하는 질문. 끝이 안 좋은 얘기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하는 열네 살. 세상에는 닮음이라는 것이 있다. 얼굴이 닮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마주 보고 서는 방식이 닮는 것. 나는 그 생각도 도중에 그만두었다. 생각을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나의 오래된 특기다. 그 특기가 내 인생에 청구한 금액에 대해서는, 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차 밝혀질 것이다.
창밖에서 풀벌레가 울고 있었다. 마을의 불빛은 세 개로 줄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언덕 중턱의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는데, 그 집에 최근 누가 이사 왔다는 이야기를 나는 켄지에게서 들은 것 같기도 했고, 흘려들은 것 같기도 했다.
인생의 큰 사건은 대개 소리 없이 배치를 끝낸다. 무대 위의 인간만이 그것을 모른다.
— 1화 끝 —
完璧な判定など存在しない。完璧な絶望が存在しないように。
審判学校の年老いた教官が初日にそう言ったとき、私はその言葉を一種の励ましとして受け取った。それが励ましではなく予言だったのだと理解するのに、二十年かかった。世の中にはそういう種類の言葉がある。受け取った瞬間にはひとつの意味だったものが、ずいぶん長い時間が経ってから、まったく別の意味になって請求書のように届く言葉。
請求書は十月のある夜に届いた。
九回裏ツーアウト、フルカウント。四万人の歓声は膨らめるだけ膨らみきっていた。ああいう歓声は音というより気圧に近い。投手がワインドアップに入り、ボールがその指先を離れ——その瞬間、すべての音が消えた。嘘ではない。本当に消えるのだ。二十年間ホームプレートの後ろに立ってきた人間だけが知っている種類の静寂だ。世界にボールひとつだけが残る。白くて、丸くて、時速百四十数キロで飛んでくる、完璧に無意味で完璧に絶対的な物体。
ボールがミットに突き刺さり、私は右腕を振り上げた。
ストライク・スリー。ゲームセット。
世界は二秒ほど静かだった。それから真っ二つに割れた。一方のダグアウトはシャンパンの栓のようにグラウンドへ弾け出し、もう一方は古い写真の中の人々のように固まった。私はマスクの中で微動だにしなかった。それが審判という職業だ。世界を真っ二つに割って、自分はどちらにも属さないこと。
翌朝、私はホテルの部屋でひとりコーヒーを飲みながらテレビを見た。どのチャンネルにも同じグラフィックが映っていた。ストライクゾーンを示す白い四角、そしてその外側に打たれた赤い点がひとつ。ボール半個分の外。アナウンサーは「世紀の誤審」という表現を使った。私はコーヒーを最後まで飲んだ。そういう瞬間にもコーヒーの味はちゃんと感じられるというのが、人間というシステムの奇妙なところだ。
ボール・ストライクの判定はビデオ検証の対象ではない。覆す制度もなければ、謝罪する場も用意されていない。記者会見はしなかった。リーグ機構は声明を出したが、声明というものは誰にも読まれないために書かれる文書だ。私はシーズンが終わると、静かにマスクを返納した。返納には書類が一枚あれば足りた。二十年分の人生を終了させる書類にしてはあまりに薄かったが、書類というものはもともと人生の重さを量る秤ではない。
それから飛行機に十三時間乗り、鈍行列車に二時間乗って、生まれた町に帰ってきた。
それがおおまかな経緯だ。おおまかでない経緯を話すとなると——それはずっと長い話になる。
東野は川と丘のあいだに挟まれた小さな町だ。特徴を挙げるなら、コンビニより自動販売機のほうが多いこと、そしてその自販機の半分ほどがいまだに百円台の缶コーヒーを売っていることくらいだ。東京の時間が急行なら、ここの時間は鈍行だ。あるいは時間というものそれ自体が、別の路線を走っ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私は町の入り口の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を営んでいる。父が遺した建物だ。父の話は特にすることがない。借金とともに消え、建物がひとつ残った。人生の貸借対照表というのは大抵そんなふうに整理される。母はその建物を売らずに人に貸し、弁当工場の夜勤で私を育てた。母について話すことは多いが、母について言葉が多くなることを母本人が一番嫌がるだろう。うちは大事なことほど口にしないことで守る家だった。
毎朝五時四十分に目が覚める。目覚ましは要らない。二十年間、毎週別の街へ飛びつづけた人間の体 — 東部から西部へ、西部から中部へ、シーズン中ずっとタイムゾーンを乗り換えるのが審判の生活だ — には、どこかに独自の時計が組み込まれていて、その時計は引退というものを認めない。水を一杯飲み、階下に降りて、レーンに散らばったボールを拾う。昨日の夕方、客たちが打ち返したボールだ。だいたい百二十個から百四十個のあいだ。私はそれをひとつずつ拾ってカゴに入れる。腰をかがめ、拾い、入れる。思考というものが入り込む余地のない作業で、まさにその点がこの作業の美徳だ。
それからピッチングマシン三台に油を差し、コイン箱を空にし、帳簿をつける。天井の蛍光灯は三本のうち一本が切れている。取り替えるのに五分あれば足りることは分かっている。脚立もあるし、新しい蛍光灯も倉庫にある。それなのに私は毎朝それを見上げ、毎日そのまま通り過ぎる。四十を過ぎると、人生にはそういう項目がひとつふたつと増えていく。直せるのに直さないもの。それらは引き出しの奥のレシートのように静かに積もっていって、ある日ふと数えてみると、ひとつの人生になっている。
昼は大抵、商店街の食堂で定食を食べる。
途中、八百屋の前を通ると、おばさんたちが声をひそめる。ひそめた声というのは不思議なもので、普通の声よりよく聞こえる。物理法則に反する話だが、事実そうなのだ。この町は私を二つの項目で記憶している。学校を初めて甲子園に連れて行った夏、そして、あのコール。伝説と誤審。どちらにも訂正記事は出ない。世間は訂正記事というものをあまり好まないのだ。
六月のある昼にはこんなことがあった。定食を食べていると、食堂の壁掛けテレビでスポーツ特集が始まった。検証・今年の誤審たち。見慣れたグラフィックが出た。白い四角、赤い点。食堂の中のいくつかの箸が止まり、いくつかの視線がちらりとこちらを向いた。私は箸を置いた。立ち上がって出て行くのが、みんなにとって楽な選択だっただろう。
私は残りの飯を最後まで食べた。二口、三口、ゆっくりと、最後まで。味噌汁も最後の一滴まで飲んだ。それから静かに勘定を済ませて出た。特に信念があってしたことではない。ただ、飯を残して逃げた日から、この食堂には二度と来られなくなることを知っていただけだ。逃げるということは、一度始めたら目的地がない。私はそれを太平洋の向こうで、二十年かけて学んできたところだった。
「おう。卵買ってきてくれ。十個入りの」
金物屋の健二はシャッターを上げる手を止めてそう言う。ほとんど毎朝同じ台詞を、同じ抑揚で。高校のときはレフトで、いまは三代目の金物屋の主人だ。この町で私をちらちら見ない唯一の人間でもある。
「なんで俺が」と私は言う。
「通り道だろ」と彼は言う。
私は返事をせずに通り過ぎる。そして帰り道に卵を買って、カウンターの上に置く。健二はにやりと笑い、卵代を払わず、何も訊かない。誤審についても、消えていた二十年についても。あの沈黙の代価としては、卵ワンパックは途方もなく安いほうだと私は思う。なぜよりによって卵なのかには理由があるのだが、それはずっと後で話すことになるだろう。
夜は二階の部屋でひとり夕食を作って食べる。大抵は簡単なものだ。ネギをたっぷり入れた味噌汁、魚の切り身がひとつ、飯。料理と呼ぶのも恥ずかしいような代物だが、まな板の音と味噌の匂いには、人を今日という日付に繋ぎ止めてくれる効能がある。扇風機が首を振り、窓の外には町の灯りがいくつか。テレビはない。野球中継が流れてくる可能性のある機械を寝室に置かない程度の分別は、私にも残っている。
そういう生活だった。悪くなかった。少なくとも、悪くないと自分に言い聞かせられる程度には、悪くなかった。
あの子が扉を開けて入ってきたのは七月最初の土曜日、夕方六時四十分ごろのことだった。
ベルが鳴り、セーラー服の女の子が入ってきた。高く結んだ髪に、肩には古びたビデオカメラのバッグ。少女は店内を見回しもせず、最短距離でカウンターまで歩いてきた。まるでずっと前からこの動線を何度も練習してきた人のように。
「あの。おじさんが、例の8番ですか?」
「……は?」私は帳簿から目を上げなかった。
「伝説のセンターですよ。学校を甲子園に連れて行って、プロに行きかけて、消えて、メジャーリーグの審判になった人」
ボールペンが半拍止まった。半拍というのは審判にとって長い時間だ。そのあいだにセーフがアウトになったりもする。
「……人違いだ」
「人違いじゃないですけど」
少女はバッグからコピー用紙を二枚取り出し、カウンターに置いた。タン、タン。二十五年以上も前の新聞だった。フェンスの前の空中に浮かんでいる十八歳の私が、そこにいた。背番号8。その隣の一枚には二十一歳の私がいた。「プロ指名確実」という活字とともに。古い新聞のインクの匂いは、コピー機を通ってもどこかに残る。少なくとも私にはそう感じられた。
「図書館で見つけました。インタビューさせてください。学校の放送部でドキュメンタリーを撮ってるんです。全国コンクールに出すんです。テーマは『うちの町の顔』」
「やらない」
「どうしてですか」
「その話は面白くない。終わりが良くないんだ」
「終わりが良くない話が、いちばん面白いのに」
私はそこでようやく顔を上げて、少女の顔をまともに見た。怖いもの知らずの目だった。ただし、怖いもの知らずであることと、傷がないこととは別の問題だ。その年頃の目からその違いを読み取る能力を、私はあまり持ちたくなかった経路で身につけていた。
「町の顔なら他を当たれ。大福屋……はなくなったか。なら金物屋だ。三代目だぞ。口数は俺の百倍多いし」
「金物屋のおじさんはもう撮りました。四十分撮って、使えるのは四分です」少女は肩をすくめた。「それに、あのおじさんが言ってました。本当の顔は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にいるって」
健二。卵代は値上げしてやろう、と私は思った。
少女は一度息を整えると、声を半トーン低くした。いいインタビュアーは急所の質問の前で声を低くする。誰かに教わったわけでもないだろうに。
「……ひとつだけ訊いてもいいですか。あの最後の一球。本当にストライクだったんですか?」
レーンのほうではピッチングマシンが規則的にボールを吐き出していた。シュッ、カン。シュッ、カン。世界のどこかでは、いつも誰かがボールを打っている。そう考えると少しは慰めになる日もあれば、まったくならない日もある。その日は後者だった。
「……出て行け」
「私は、おじさんがどんな人か知りません」少女は出て行かなかった。「でも、世界中があのボール一個でおじさんを判定するのは——それはちょっと違うんじゃないかな、って。誰も、もう一度見た人はいないのに」
誰も、もう一度見た人はいないのに。
その文章は妙な角度で入ってきた。外角低め、ストライクゾーンの隅をかすめるように。打つことも避けることもできないコースで。私はいちばんつまらない質問へ逃げることにした。
「……名前は」
「咲希です。水島、咲希」
ボールペンが帳簿の上で止まった。
一秒。二秒。三秒。
水島という姓は、日本におよそ何万人かはいるはずだ。電話帳を開けば何ページにもわたって並んでいる、ごくありふれた姓だ。私はそう判定を下し、ボールペンをまた動かした。二十年間判定で食ってきた男が、あの夏に下した最初の誤審だった。誤審の問題は、下す瞬間にはそれが誤審だと分からないことだ。分かっていれば下さなかったはずだから。当たり前の話だ。当たり前の話ほど、人は理解するのが遅い。
「また来ます」少女は戸口で振り返って言った。「答えは二つとも、そのとき聞きます。インタビューと——さっきの質問と」
ベルが鳴り、扉が閉まった。
私はカウンターの新聞のコピーを手に取り、ゴミ箱の前まで行った。足でペダルを踏んで、蓋まで開けた。蓋が開いたまま五秒ほどが過ぎた。それから私は蓋を閉じ、コピーを帳簿の下に挟み込んだ。あの子が取りに来たら返さ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と私は私自身に説明した。私自身は、その説明をあまり信じていない様子だった。
その夜、二階の部屋で、私は久しぶりに天井を見つめたまま、長いあいだ目を覚ましていた。
水島。その姓を最後に声に出して呼んだのがいつだったか、計算しようとして、やめた。計算というものは答えが出ることに意味がある作業だが、あの計算は答えが出た瞬間からが問題だからだ。
代わりに私は少女の顔のことを考えた。怖いもの知らずの目。急所へ直進する質問。終わりが良くない話がいちばん面白いと言う十四歳。世の中には「似る」ということがある。顔が似るのではなく、世界と向き合って立つ姿勢が似るということ。私はその考えも途中でやめた。考えを途中でやめるのは私の古い特技だ。その特技が私の人生に請求した金額については、この物語が進むにつれて、おいおい明らかになっていくだろう。
窓の外で虫が鳴いていた。町の灯りは三つに減っていた。そのうちのひとつは丘の中腹の古い一軒家で、あの家に最近誰かが越してきたという話を、私は健二から聞いたような気もするし、聞き流したような気もした。
人生の大きな出来事は、大抵、音もなく配置を終える。舞台の上の人間だけが、それを知らない。
— 第1話 終 —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erfect call. Just as there is no such thing as perfect despair.
When the old instructor at umpire school said this on the first day, I took it as a kind of encouragement. It took me twenty years to understand that it was not encouragement but prophecy. There are words like that in this world. Words that mean one thing at the moment you receive them, and then, after a very long time, arrive again meaning something else entirely, like a bill come due.
The bill arrived one night in October.
Bottom of the ninth, two outs, full count. The roar of forty thousand people had swollen as far as a roar can swell. That kind of roar is less a sound than a change in air pressure. The pitcher went into his windup, the ball left his fingertips—and in that instant, every sound disappeared. I am not making this up. It really disappears. It is a kind of silence known only to a man who has stood behind home plate for twenty years. The world reduces to a single ball. White, round, coming in at ninety-odd miles an hour, an object perfectly meaningless and perfectly absolute.
The ball slammed into the mitt, and I punched my right arm into the air.
Strike three. Game over.
The world stayed quiet for about two seconds. Then it split in two. One dugout came pouring onto the field like a champagne cork blowing, and the other froze like people in an old photograph. Inside my mask, I did not move a muscle. That is the profession of umpiring: you split the world in two, and you belong to neither side.
The next morning, alone in my hotel room, I drank coffee and watched television. Every channel showed the same graphic. A white rectangle marking the strike zone, and a single red dot stamped outside it. Half a ball's width outside. The announcer used the phrase "the missed call of the century." I drank my coffee to the last drop. That you can still taste coffee properly at a moment like that is one of the odd things about the system called a human being.
Ball and strike calls are not subject to video review. There is no procedure for overturning them, and no venue provided for apology. I gave no press conference. The league office issued a statement, and a statement is a document written so that no one will read it. When the season ended, I quietly turned in my mask. One sheet of paper was all it took. It seemed too thin for a document terminating a twenty-year life, but then paper was never a scale for weighing a life in the first place.
Then I rode a plane for thirteen hours and a local train for two, and came back to the town where I was born.
That is the general outline of it. As for the outline that is not general—that becomes a much longer story.
Higashino is a small town wedged between a river and a line of hills. If you had to name its features: it has more vending machines than convenience stores, and about half of those machines still sell canned coffee for a hundred-some yen. If Tokyo time is an express, time here is a local. Or perhaps time itself runs on a different line altogether.
I run the batting center at the edge of town. The building is what my father left behind. There is not much to say about my father. He vanished along with his debts, and one building remained. That is generally how the balance sheet of a life gets settled. My mother, instead of selling the building, rented it out and raised me on the night shift at a boxed-lunch factory. There is a great deal to say about my mother, but my mother herself would hate, more than anyone, to have much said about her. We were a family that protected the important things by not speaking of them.
Every morning I wake at five forty. No alarm needed. The body of a man who spent twenty years flying to a different city every week — East Coast to West, West to Midwest, changing time zones all season long, which is the life of an umpire — has its own clock built in somewhere, and that clock does not recognize retirement. I drink a glass of water, go downstairs, and pick up the balls scattered along the lanes. The balls the customers hit the evening before. Usually between a hundred twenty and a hundred forty of them. I pick them up one at a time and put them in the basket. Bend, pick up, drop in. It is work that leaves no room for anything called thought, and that is precisely its virtue.
After that I oil the three pitching machines, empty the coin boxes, and write up the ledger. Of the three fluorescent tubes in the ceiling, one is dead. I know that replacing it would take five minutes. There is a ladder, and there are new tubes in the storeroom. And still, every morning I look up at it, and every morning I walk on past. Past forty, life accumulates items like that, one by one. Things you could fix but don't. They pile up quietly, like receipts in the back of a drawer, until one day you happen to count them and find they have become a life.
For lunch I usually have the set meal at a diner in the shopping arcade.
On the way, when I pass the greengrocer's, the women out front lower their voices. A lowered voice, strangely enough, carries better than an ordinary one. It violates the laws of physics, but it is the truth. This town remembers me under two entries: the summer I took the school to Koshien for the first time, and that call. A legend and a blown call. Neither one ever gets a correction printed. The world has never much cared for corrections.
One June afternoon, this happened. I was eating my lunch when a sports special came on the diner's wall-mounted television. A Review: This Year's Blown Calls. The familiar graphic appeared. White rectangle, red dot. Around the diner a few pairs of chopsticks stopped, and a few glances flicked my way. I set down my chopsticks. Getting up and leaving would have been the comfortable choice, for everyone.
I finished the rest of my rice. Two mouthfuls, three, slowly, to the end. I drank the miso soup down to the last drop. Then I paid quietly and left. It was not conviction that made me do it. I simply knew that from the day I left my rice behind and ran, I would never be able to come back to that diner. Running is a thing that has no destination once you begin. I had spent twenty years on the far side of the Pacific learning exactly that.
"Hey. Pick me up some eggs. A carton of ten."
Kenji at the hardware store says this, pausing halfway through rolling up his shutter. Nearly every morning, the same line, the same intonation. He played left field in high school, and now he is the third-generation owner of the store. He is also the only human being in this town who does not steal glances at me.
"Why should I," I say.
"It's on your way," he says.
I walk past without answering. And on the way back I buy the eggs and set them on his counter. Kenji grins, does not pay for the eggs, and asks nothing. Not about the call, not about the twenty years I was gone. As the price of that silence, a carton of eggs strikes me as absurdly cheap. There is a reason it is eggs, of all things, but that is a story for much later.
At night I cook dinner for myself in the room upstairs. Simple things, mostly. Miso soup crowded with green onion, a single cut of fish, rice. It hardly deserves to be called cooking, but the sound of a knife on a cutting board and the smell of miso have a way of fastening a person to the date called today. The electric fan swings its head, and outside the window there are a few lights of the town. There is no television. I retain at least enough sense not to keep a machine in my bedroom that might, at any moment, emit a baseball broadcast.
That was the life. It was not bad. At least, it was not bad enough that I couldn't tell myself it was not bad.
The girl opened the door and walked in on the first Saturday of July, at around six forty in the evening.
The bell rang, and a girl in a sailor-suit school uniform came in. Hair tied up high, an old camcorder bag over her shoulder. She did not so much as glance around the place; she walked the shortest possible line straight to the counter, like someone who had rehearsed the route many times, long ago.
"Excuse me. Are you that number 8?"
"...What?" I did not raise my eyes from the ledger.
"The legendary center fielder. Took the school to Koshien, almost went pro, disappeared, became a major league umpire."
The ballpoint stopped for half a beat. Half a beat is a long time for an umpire. Safe can turn into out in less.
"...You've got the wrong man."
"No, I don't."
The girl took two photocopied sheets from her bag and laid them on the counter. Tap. Tap. Newspapers more than twenty-five years old. There I was, eighteen, suspended in the air in front of the fence. Number 8. On the next sheet I was twenty-one, alongside the type reading "Pro Draft a Certainty." The ink smell of an old newspaper survives the photocopier, somewhere in the paper. At least it seemed that way to me.
"I found them at the library. Please let me interview you. I'm in the broadcasting club at school, and we're making a documentary. We're entering it in the national competition. The theme is 'The Face of Our Town.'"
"No."
"Why not?"
"It's not an interesting story. It doesn't end well."
"Stories that don't end well are the most interesting kind."
Only then did I raise my head and look at her face properly. They were fearless eyes. But being fearless and being unwounded are two different matters. The ability to read that difference in eyes that young was something I had acquired by a route I would rather not have taken.
"If it's the face of the town you want, go elsewhere. The daifuku shop... no, that's gone now. The hardware store, then. Third generation. Talks a hundred times more than I do."
"I already filmed the hardware store man. Forty minutes of footage, four minutes usable." She shrugged. "And he told me the real face of this town was at the batting center."
Kenji. I decided I would have to start charging him more for the eggs.
The girl caught her breath, then dropped her voice half a tone. A good interviewer lowers her voice before the question that goes for the vitals. And no one could have taught her that.
"...Can I ask just one thing? That last pitch. Was it really a strike?"
Over on the lanes, the pitching machine was spitting out balls at regular intervals. Whoosh, clang. Whoosh, clang. Somewhere in the world, someone is always hitting a ball. There are days when that thought is some consolation, and days when it is none at all. That day was the latter.
"...Get out."
"I don't know what kind of person you are." The girl did not get out. "But the whole world judging you on that one ball—that just seems a little off to me, is all. When no one ever even looked at it again."
No one ever even looked at it again.
The sentence came in at a strange angle. Low and away, grazing the corner of the zone. A course you can neither hit nor get out of the way of. I chose to escape into the most trivial question there is.
"...What's your name."
"Saki. Mizushima, Saki."
The ballpoint stopped on the ledger.
One second. Two. Three.
There must be tens of thousands of Mizushimas in Japan. It is an utterly ordinary surname, the kind that fills page after page of a phone book. That was the call I made, and I set the pen moving again. It was the first blown call of that summer by a man who had made his living on calls for twenty years. The trouble with a blown call is that at the moment you make it, you do not know it is blown. If you knew, you would not make it. Which is obvious. And the more obvious a thing is, the longer it takes a person to understand it.
"I'll come again," the girl said, turning back at the door. "You can give me both answers then. The interview, and—that other question."
The bell rang and the door closed.
I picked up the photocopies from the counter and walked to the trash can. I stepped on the pedal and got as far as opening the lid. The lid stayed open for about five seconds. Then I closed it and slid the copies under the ledger. Because she would come back for them and I would have to return them—that was the explanation I gave myself. The self I gave it to did not seem to believe much of it.
That night, in the room upstairs, I lay awake a long time staring at the ceiling, for the first time in years.
Mizushima. I started to calculate when I had last spoken that name aloud, and stopped. Calculation is work that finds its meaning in producing an answer, and with that particular calculation, the answer is where the trouble begins.
Instead I thought about the girl's face. The fearless eyes. The questions that went straight for the vitals. A fourteen-year-old who says the stories that end badly are the most interesting kind. There is such a thing in this world as resemblance. Not a resemblance of faces, but a resemblance in the way a person stands facing the world. I stopped that thought partway through, too. Stopping a thought partway through is an old specialty of mine. As for the amount that specialty has billed to my life, that will come clear little by little as this story goes on.
Outside the window, the insects were singing. The lights of the town were down to three. One of them was an old house halfway up the hill, and I had a feeling Kenji had told me someone had recently moved in there—or that he had told me, and I had let it drift past.
The great events of a life generally finish taking up their positions without a sound. Only the people on stage do not know it.
— End of Ep. 1 —
아이는 정말로 다시 왔다.
일요일 저녁,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아이는 카운터 앞까지 걸어와서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배꼽 인사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체류 시간 십오 초. 나는 장부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십오 초를 전부 세고 있었다.
월요일에는 오지 않았다. 화요일에 왔다. 이번에는 벽에 붙은 요금표를 오 분쯤 읽고 갔다. 요금표에는 읽을 것이 세 줄밖에 없다. 이십 구에 삼백 엔, 회수권 있음, 헬멧 착용. 세 줄을 오 분 동안 읽는 것은 일종의 재능이다.
수요일, 아이는 삼백 엔을 동전으로 내고 레인에 들어갔다.
헛스윙, 헛스윙, 또 헛스윙. 어깨가 먼저 열리고 고개가 공보다 빨리 돌아가는, 야구에 관계된 인간이라면 오 초 이상 지켜보기 힘든 종류의 스윙이었다. 게다가 배트를 너무 길게 잡았고, 발의 폭은 너무 좁았고, 공이 오기 전에 눈을 감았다. 교정할 곳이 많다는 것은 교사에게는 축복이고 방관자에게는 고문이다. 나는 방관자의 자리를 지키기로 하고, 안 보는 척하면서 전부 보고 있었다. 인간의 눈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는 잘 속아 주지 않는다.
이십 회를 전부 헛치고 나온 아이는 카운터 앞에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야구, 어렵네요."
"……그러냐."
"내일 또 올게요."
전략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십 년 동안 감독들의 항의를 받아 온 인간이다. 감독의 항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판정을 바꾸려는 항의와, 다음 판정에 영향을 주려는 항의. 전자는 아마추어고 후자는 프로다. 아이의 전략은 후자였다. 오늘의 대답이 아니라 내일의 대답을 노리고, 매일 조금씩 카운터와의 거리를 좁혀 오는 것이다. 열네 살이 프로의 수를 쓴다는 것에 대해 나는 조금 감탄했고, 감탄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다.
목요일 아침, 계란을 사러 가는 길에 나는 철물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너, 그 애한테 무슨 얘기를 했어."
켄지는 셔터를 반쯤 올리다 말고 나를 봤다. 시치미의 각도가 벌써 틀려 있었다.
"뭘."
"사십 분."
"……아아, 그 방송부." 켄지는 셔터를 마저 올리며 어깨를 돌렸다. "본론만 했다. 이 마을 학교를 처음으로 고시엔에 데려간 등번호 8. 프로 지명 확실이라던 남자. 그게 스물한 살에 사라졌다가 메이저리그에 심판으로 나타났다 — 사실만 말했는데."
"그게 사십 분이냐."
"살은 좀 붙였지. 얘기라는 건 살이 팔 할이야." 켄지는 앞치마 끈을 묶었다. "야, 근데 그 애 물건이더라. 내 얘기 중간에 캠코더 슬쩍 내리고 듣기만 하데. 어디가 진짜 얘긴지 아는 거야, 그 나이에."
"쓸데없는 짓 했어."
"쓸데없는 짓 좀 하고 살아라, 너도." 켄지는 그렇게 말하고 가게로 들어가다가, 문턱에서 돌아봤다. "계란은?"
나는 계란을 사다 주지 않았다. 그날 하루만의, 나의 소소한 보복이었다.
금요일에는 장대비가 왔다.
여름의 비는 예고가 짧다. 오후 네 시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네 시 반에는 양동이로 붓는 비가 됐다. 손님이 있을 리 없는 날씨였고, 나는 카운터에서 피칭 머신의 부품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섯 시 십 분에 유리문 너머로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아이였다. 우산도 없이, 교복이 반쯤 젖은 채로,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있었다. 품에는 캠코더 가방을 안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젖어도 가방은 젖게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될 것을, 아이는 들어오지 않았다. 영업 방해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매일 쳐들어오는 인간의 원칙치고는 기묘한 원칙이었지만, 원칙이라는 것은 대개 남이 보면 기묘한 법이다.
나는 십오 분을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아이의 등은 점점 젖어 갔다.
결국 나는 수건을 한 장 꺼내서 문을 열고 던져 줬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았다. 따뜻한 쪽 버튼을 눌렀다. 여름에 따뜻한 코코아를 뽑은 것은 그 자판기를 들여놓은 이래 처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는요?" 아이가 수건을 받으며 웃었다.
"마셔."
아이는 처마 밑에서 코코아를 두 손으로 쥐고 마셨다. 나는 문을 닫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비를 봤다. 삼십 분쯤 뒤에 비가 가늘어졌고, 아이는 빈 캔을 처마 밑에 가지런히 놓고, 유리문에 대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빈 캔을 치우러 나갔을 때, 캔 밑에 백이십 엔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백이십 엔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빚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른에게, 세상에게, 아무에게도. 열네 살이 코코아 값을 처마 밑에 두고 가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생각했고, 생각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스스로 멈췄다. 그 마음의 출처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한 번 잃어 본 사람은 그런 버릇을 갖게 된다. 세상에 빚을 만들지 않는 버릇.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버릇이라면 — 나도 오래 써 온 사람이었다.
나는 백이십 엔을 카운터의 서랍에 넣었다. 거스름돈 칸이 아니라, 클립이나 고무줄 같은 것들이 굴러다니는 잡동사니 칸에. 왜 그랬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토요일. 여섯 번째로 온 날이었다. 아이는 또 삼백 엔을 내고 레인에 들어갔다.
헛스윙. 헛스윙. 어깨가 열리고, 고개가 돌아가고, 눈이 감겼다. 스무 번 중에 배트에 공이 스친 것이 두 번. 아이는 다시 동전을 넣었다. 또 스무 번. 이번에는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세 번째 동전이 투입구에 들어가는 소리가 났을 때,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어깨 열지 마. 공 끝까지 보고."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후회는 언제나 발화보다 영 점 오 초 늦게 도착한다. 아이가 타석에서 이쪽을 돌아봤다. 나는 장부를 보고 있는 척했다.
다음 공에서 깡, 하는 소리가 났다.
금속 배트가 공의 중심을 제대로 잡았을 때 나는, 그 특유의 건조하고 기분 좋은 소리. 언제 들어도 좋은 소리는 좋은 소리다. 아이가 헬멧을 쓴 채로 홱 돌아보았다.
"지금 그거, 코칭이었죠? 저 방금 전설한테 코칭받았죠?"
"……아니야."
"카메라 켜 놓을 걸 그랬다."
아이는 남은 열여덟 개의 공 중에서 일곱 개를 쳤다. 일곱 개 전부 어깨를 닫고, 공을 끝까지 보고 친 것이었다. 한 번 들은 것을 일곱 번 실행하는 인간은 어른 중에도 드물다. 나는 그 일곱 번의 타구음을 들으면서, 조금씩 위험한 기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르치고 싶다는 기분은 나에게 위험한 기분이다.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무언가와 다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니까.
그날 저녁, 아이는 돌아가지 않고 카운터 앞에 숙제를 펴 놓고 눌러앉았다. 수학이었다. 연립방정식을 풀다가 지우개질을 하다가, 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아저씨. 저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오고, 개학하면 방과 후마다 올 거예요. 어차피 학교랑 집 사이에 여기가 있어서 교통비도 안 들어요."
"……영업 방해다."
"손님 저밖에 없잖아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장부를 덮고, 그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았다. 높이 묶은 머리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인간이 패배를 인정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다. 짧게 말하는 것.
"……딱 한 번이다. 카메라 한 대. 얼굴은 찍지 마."
"얼굴 없는 전설이 어디 있어요."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연필이 바닥에 굴렀다.
"싫으면 관둬."
"……알았어요. 일단 그걸로 스타트."
아이는 가방에서 촬영 동의서를 꺼냈다. 학교의 공식 양식이었고, 나는 대충 사인했다. 서명란 아래에 보호자 서명란이 있다는 것, 거기에 이미 단정한 글씨가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 보지 않기로 했는지, 정말로 보지 못했는지, 지금도 판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은 대개 그런 식이다. 슬로 비디오는 언제나 나중에야 도착한다.
봤어야 했는데.
"첫 촬영, 다음 주 토요일 저녁이요." 아이가 가방을 메며 말했다. "아홉 시까진 집에 가기로 한 날이에요. 안 가면 — 엄마가 데리러 오겠죠."
일요일과 그다음 주는 이상하게 길었다.
아이는 예고대로 매일 왔다. 레인에서 스무 개를 치고 — 타율은 조금씩 올라갔다 — 카운터 앞에서 숙제를 하고, 저녁 여섯 시 반이 되면 돌아갔다. 나는 매일 저녁 여섯 시 반이 되면 가게가 갑자기 조용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발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용한 것은 이십 년 동안 나의 전문 분야였다. 전문 분야가 침식당하고 있었다.
수요일에는 아이가 질문 노트라는 것을 보여 줬다. 대학 노트에 질문이 번호순으로 적혀 있었다. 일 번, 고시엔 갔을 때 기분. 이 번,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삼 번, 왜 심판이 됐어요. 그리고 사 번 — 그 공, 진짜 스트라이크였어요.
"순서대로 물을 거예요. 사 번은 마지막 날에."
"마지막 날이 언젠데."
"그건 편집하면서 정해요." 아이는 노트를 덮었다. "다큐는 끝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끝내는 데서 끝나거든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스스로 만든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말은 꽤 정확했다. 인생도 대체로 그렇다. 끝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끝내는 데서 끝난다. 나의 스물세 살이 그랬듯이. 물론 그때의 나는 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촬영일의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무렵의 일이다.
토요일 저녁, 삼각대 위의 캠코더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테이프가 도는, 요즘 세상엔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아빠가 준 거라고, 아이는 자랑인지 변명인지 모를 설명을 짧게 덧붙였었다.
나는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취조받는 자세네요, 하고 아이가 웃었다. 부정할 근거가 없었다.
"질문 일 번. 지역예선 결승. 고시엔이 걸린 마지막 타구가 떴을 때 — 무슨 생각 했어요?"
"……생각 같은 건 안 해. 몸이 먼저 가."
사실이었다. 공이 떠 있는 동안, 세상은 단순해진다.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낙하지점이 있고, 도달 시간이 있고, 잡거나 못 잡거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단순함을 사랑했다.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더.
"우와, 방금 거 좋았어요. 몸이 먼저 간다." 아이는 노트에 별표를 그렸다. "그럼 질문 이 번." 노트가 넘어갔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프로 간다던 사람이."
이십오 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캠코더의 빨간 불빛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라는 문장이 그 후로 며칠째 몸 안 어딘가에서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종이 울렸다.
"사키야, 아직이야? 아홉 시 넘—"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등이 먼저 알았다. 뇌보다, 심장보다 먼저, 등이. 몸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십팔 년쯤은 가볍게 건너뛰고, 열여덟 여름의 강변으로, 스무 살의 진구 구장으로, 한순간에 되돌아가도록. 외야수가 타구음만 듣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 간다.
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느린 턴이었을 것이다.
문가에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마흔여섯의 미즈시마 료코가, 문손잡이를 쥔 채로. 손끝이 하얘져 있었다. 형광등 두 개 분량의 빛 아래에서도 그것은 보였다.
사 초, 혹은 오 초. 텅 빈 배팅센터에 형광등의 웅웅거리는 소리만 흘렀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을 나는 직업상 잘 알고 있다.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종류의 정적이었다. 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면 십칠 년 전에 던져진 공이 이제야 도착한 것인지도 몰랐다.
"……오랜만이야."
먼저 말한 것은 그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어. 오랜만."
십칠 년 만의 대화치고는 경제적이었다. 두 어절. 그러나 어떤 종류의 문장은 길이와 무게가 반비례한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삼각대 뒤에서 사키가 우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캠코더의 빨간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REC. 세상 전부가 다시 보기를 그만둔 이야기를, 그 작은 기계만이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반 박자 빠르게, 료코가 대답했다.
"동창이야."
동창. 정확한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아무것도 아닌 말. 심판을 이십 년 하면 알게 된다. 정확한 판정이 반드시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키, 가자. 늦었어."
아이는 캠코더를 끄고 삼각대를 접었다. 평소의 반의반 속도로. 접는 동안 두 어른을 번갈아 보는 시선이 바빴다. 문을 나서기 직전, 아이는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촬영, 수요일이요. 질문 이 번, 아직 대답 안 하셨으니까."
종소리가 울리고 두 사람은 사라졌다. 유리문 너머로, 나란히 걸어가는 두 개의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를 지나 어두워졌다. 큰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나는 한참 동안 빈 문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장부 밑에서 촬영 동의서를 꺼내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다.
보호자 서명: 미즈시마 료코.
단정한 글씨였다. 이십팔 년 전, 미술실 서랍에 상장을 넣어 두던 사람의 글씨. 부치지 못한 것들을 쌓아 두던 사람의 글씨. 나는 그 다섯 글자를 오래 보고 있었다.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류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보고도 보지 않은 쪽이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아이가 처음 온 날부터의 열이틀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했다. 구십 도의 인사. 요금표 오 분. 처마 밑의 백이십 엔. 일곱 번의 타구음. 미즈시마, 사키. 슬로 비디오는 언제나 나중에야 도착한다. 그리고 나중에 도착한 슬로 비디오 속에서, 모든 장면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이 마을에 온 것은 사키가 아니라, 미즈시마 료코의 딸이었다. 아니 — 두 사람 다였다. 판정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 심판은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가. 교관의 목소리가 이십 년 저편에서 들려왔다.
끝까지 보고 나서, 콜을 해라.
나는 불을 껐다.
— 2화 끝 —
あの子は本当にまた来た。
日曜の夕方、ベルの音とともにドアが開き、あの子はカウンターの前まで歩いてきて九十度のお辞儀をした。最敬礼と呼ばれる類のものだった。それから何も言わずに出ていった。滞在時間、十五秒。俺は帳簿から顔を上げなかったが、十五秒をすべて数えていた。
月曜日は来なかった。火曜日に来た。今度は壁の料金表を五分ほど読んで帰った。料金表には読むものが三行しかない。二十球で三百円、回数券あり、ヘルメット着用。三行を五分かけて読むのは一種の才能だ。
水曜日、あの子は三百円を小銭で払ってレーンに入った。
空振り、空振り、また空振り。肩が先に開き、頭がボールより速く回る、野球に関わった人間なら五秒以上見ていられない類のスイングだった。おまけにバットは長く持ちすぎで、スタンスは狭すぎで、ボールが来る前に目をつぶった。直すところが多いというのは、教師にとっては祝福であり、傍観者にとっては拷問だ。俺は傍観者の席を守ることにして、見ていないふりをしながら全部見ていた。人間の目というものは、そういうふうにはうまく騙されてくれない。
二十球すべて空振りして出てきたあの子は、カウンターの前で額の汗を拭いながら言った。
「野球って、難しいんですね」
「……そうか」
「明日また来ます」
戦略というものを俺は知っている。二十年間、監督たちの抗議を受けてきた人間だ。監督の抗議には二種類ある。判定を変えようとする抗議と、次の判定に影響を与えようとする抗議。前者はアマチュアで、後者はプロだ。あの子の戦略は後者だった。今日の答えではなく明日の答えを狙って、毎日少しずつカウンターとの距離を詰めてくるのだ。十四歳がプロの手を使うことに俺は少し感心し、感心したという事実に少し狼狽した。
木曜の朝、卵を買いに行く途中、俺は金物屋の前で足を止めた。
「お前、あの子に何を話した」
健二はシャッターを半分上げかけたまま俺を見た。しらばっくれる角度が、すでに間違っていた。
「何を」
「四十分」
「……ああ、あの放送部か」健二はシャッターを上げきって肩を回した。「本筋しか話してない。この町の学校を初めて甲子園に連れて行った背番号8。プロ指名確実と言われた男。それが二十一歳で消えて、メジャーリーグに審判として現れた——事実だけ言ったんだがな」
「それが四十分か」
「肉付けは多少したさ。話ってのは肉が八割だ」健二はエプロンの紐を結んだ。「にしても、あの子はモノが違うぞ。俺の話の途中でビデオカメラをすっと下ろして、聞くだけ聞いてた。どこが本当の話か分かるんだよ、あの歳で」
「余計なことをしたな」
「余計なことも少しはして生きろ、お前も」健二はそう言って店に入りかけ、敷居のところで振り返った。「卵は?」
俺は卵を買って行ってやらなかった。その日一日限りの、俺のささやかな報復だった。
金曜日は土砂降りだった。
夏の雨は予告が短い。午後四時に空が暗くなったかと思うと、四時半にはバケツをひっくり返したような雨になった。客が来るはずのない天気で、俺はカウンターでピッチングマシンの部品リストを整理していた。五時十分、ガラス戸の向こうに影がひとつ現れた。
あの子だった。傘もささず、制服を半分濡らしたまま、軒下で雨宿りをしていた。胸にはビデオカメラのバッグを抱えていた。自分は濡れてもバッグは濡らさない、という姿勢で。ドアを開けて入ってくればいいものを、あの子は入ってこなかった。営業妨害はしないという原則のようなものがあるらしかった。毎日押しかけてくる人間の原則にしては奇妙な原則だったが、原則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他人から見れば奇妙なものだ。
俺は十五分、カウンターに座っていた。雨はやむ気配がなかった。あの子の背中はだんだん濡れていった。
結局、俺はタオルを一枚出してドアを開け、放って渡した。それから自販機でココアを買った。あたたかい方のボタンを押した。夏にホットのココアを買ったのは、あの自販機を入れて以来初めてだったはずだ。
「……インタビューは?」あの子はタオルを受け取りながら笑った。
「飲め」
あの子は軒下でココアを両手で包んで飲んだ。俺はドアを閉めてカウンターに戻った。ガラス戸一枚を挟んで、俺たちはそれぞれの場所から雨を見た。三十分ほどして雨が細くなり、あの子は空き缶を軒下にきちんと置いて、ガラス戸に向かってぺこりと頭を下げ、帰っていった。
空き缶を片付けに出たとき、缶の下に百二十円が置いてあった。
俺はその百二十円を長いこと見ていた。借りは作らない、ということだ。大人にも、世間にも、誰にも。十四歳がココア代を軒下に置いて帰る心について俺は考え、考えは何かの結論に達する前に、自分から止まった。その心の出どころが分かる気がしたからだ。何かを一度失ったことのある人間は、そういう癖を持つようになる。世間に借りを作らない癖。いつでも身軽に立ち去れるように。そしてその癖なら——俺も長年使ってきた人間だった。
俺は百二十円をカウンターの引き出しに入れた。釣り銭の仕切りではなく、クリップや輪ゴムなんかが転がっている雑多な仕切りに。なぜそうしたのかは、説明が難しい。
土曜日。六度目に来た日だった。あの子はまた三百円を払ってレーンに入った。
空振り。空振り。肩が開き、頭が回り、目がつぶられた。二十球のうち、バットにボールがかすったのが二回。あの子はまた硬貨を入れた。さらに二十球。今度は一度も当たらなかった。三枚目の硬貨が投入口に落ちる音がしたとき、俺はとうとう我慢できなかった。
「……肩を開くな。ボールは最後まで見ろ」
言ってから後悔した。後悔はいつも、発話より〇・五秒遅れて届く。あの子が打席からこちらを振り返った。俺は帳簿を見ているふりをした。
次の球で、カキン、と音がした。
金属バットがボールの芯をきちんと捉えたときに鳴る、あの独特の乾いた、気持ちのいい音。いつ聞いてもいい音は、いい音だ。あの子がヘルメットをかぶったまま、勢いよく振り向いた。
「今の、コーチングでしたよね? 私いま、伝説にコーチングされましたよね?」
「……違う」
「カメラ回しておけばよかった」
あの子は残り十八球のうち七球を打った。七球とも肩を閉じ、ボールを最後まで見て打ったものだった。一度聞いたことを七回実行する人間は、大人にも滅多にいない。俺はその七回の打球音を聞きながら、少しずつ危険な気分になっていった。教えたいという気分は、俺にとって危険な気分だ。何かを教えるということは、その何かともう一度関係を結ぶという意味だから。
その日の夕方、あの子は帰らずに、カウンターの前に宿題を広げて居座った。数学だった。連立方程式を解いては消しゴムをかけ、あの子は顔も上げずに言った。
「おじさん。私、明日も来るし、あさっても来るし、学校が始まったら放課後に毎日来ますから。どうせ学校と家の間にここがあるから、交通費もかからないし」
「……営業妨害だ」
「お客さん、私しかいないじゃないですか」
反論できない事実だった。俺は帳簿を閉じて、その後頭部をしばらく眺めた。高く結んだ髪が、蛍光灯の明かりの下で揺れていた。人間が敗北を認めるやり方にはいろいろあるが、俺のやり方は昔も今もひとつだ。短く言うこと。
「……一度きりだ。カメラ一台。顔は撮るな」
「顔のない伝説なんて、ありますか」あの子はがばっと立ち上がった。鉛筆が床に転がった。
「嫌ならやめろ」
「……分かりました。まずはそれでスタート」
あの子はかばんから撮影同意書を取り出した。学校の公式の様式で、俺は適当にサインした。署名欄の下に保護者署名欄があること、そこにすでに端正な字が入っていることを、俺は見なかった。正確に言えば——見ないことにしたのか、本当に見えなかったのか、いまだに判定を下せずにいる。人生の重要な局面は、たいていそういうものだ。スロービデオはいつも、後になってから届く。
見ておくべきだった。
「初回の撮影、来週の土曜の夕方です」あの子はかばんを背負いながら言った。「九時までには家に帰る約束の日なんです。帰らなかったら——母が迎えに来るでしょうね」
日曜日と、その次の一週間は、妙に長かった。
あの子は予告どおり毎日来た。レーンで二十球打ち——打率は少しずつ上がっていった——カウンターの前で宿題をして、夕方六時半になると帰っていった。俺は毎日夕方六時半になると店が急に静かになるという事実を発見し、その発見が気に入らなかった。静けさは二十年間、俺の専門分野だった。専門分野が侵食されつつあった。
水曜日には、あの子が質問ノートというものを見せてくれた。大学ノートに、質問が番号順に書いてあった。一番、甲子園に行ったときの気持ち。二番、なぜ急に消えたんですか。三番、なぜ審判になったんですか。そして四番——あの球、本当にストライクでしたか。
「順番に訊いていきます。四番は最終日に」
「最終日っていつだ」
「それは編集しながら決めます」あの子はノートを閉じた。「ドキュメンタリーは、終わるところで終わるんじゃなくて、終わらせるところで終わるんですよ」
どこかで拾ってきた言葉なのか、自分で作った言葉なのか、分からなかった。ただ、その言葉はなかなか正確だった。人生もだいたいそうだ。終わるところで終わらず、誰かが終わらせるところで終わる。俺の二十三歳がそうだったように。もちろん、そのときの俺はそこまでは考えなかった。その考えに至るのは、撮影日の土曜、夜九時ごろのことだ。
土曜の夕方、三脚の上のカムコーダーに赤いランプが灯った。テープが回る、今どき珍しい代物だった。父さんがくれたのだと、自慢なのか言い訳なのかわからない説明を、あの子は短く付け加えていた。
俺はカウンター前の椅子に座った。取り調べを受ける姿勢ですね、とあの子が笑った。否定する根拠がなかった。
「質問一番。地区予選の決勝。甲子園のかかった最後の打球が上がったとき——何を考えてましたか?」
「……考えなんかしない。体が先に動く」
事実だった。ボールが宙にある間、世界は単純になる。ボールは嘘をつかないから。落下地点があり、到達時間があり、捕れるか捕れないかがあるだけだ。俺はその単純さを愛していた。人の世界はそういうふうにはできていないと知ってからは、なおさら。
「うわ、今のよかったです。体が先に動く」あの子はノートに星印を描いた。「じゃあ、質問二番」ページがめくられた。「なぜ急に消えたんですか? プロに行くはずだった人が」
二十五年間、誰にもしなかった話だった。それなのに不思議とその瞬間、話してもいいのかもしれないという気分になった。ビデオカメラの赤いランプのせい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し、「見返した人は誰もいないくせに」という文章が、あれから何日も体のどこかでぶつかる音を立てていたせいかもしれない。
俺は息を吸い込んだ。そのとき、ベルが鳴った。
「咲希、まだなの? 九時過ぎ——」
声はそこで途切れた。
背中が先に知った。脳より、心臓より先に、背中が。体というものはそういうふうにできている。二十八年ばかりを軽々と飛び越えて、十八の夏の川辺へ、二十歳の神宮球場へ、一瞬で戻れるように。外野手が打球音だけで背を向けて走り出すのと同じ原理だ。考えはしない。体が先に動く。
俺はゆっくりと振り返った。おそらく、俺の人生でいちばん遅いターンだった。
戸口に、あの人が立っていた。四十六歳の水島涼子が、ドアノブを握ったまま。指先が白くなっていた。蛍光灯二本分の明かりの下でも、それは見えた。
四秒、あるいは五秒。がらんとした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に、蛍光灯のうなる音だけが流れた。世界のすべての音が消える瞬間を、俺は職業柄よく知っている。ボールが指先を離れる瞬間がそうだ。だが、これは別の種類の静寂だった。ボールはどこにもなかった。それとも、十七年前に投げられたボールが、今ごろ届いたのかもしれなかった。
「……久しぶり」
先に口を開いたのは、あの人だった。昔からそうだった。
「……ああ。久しぶり」
十七年ぶりの会話にしては経済的だった。二語。だが、ある種の文章は、長さと重さが反比例する。
「……ふたりって、知り合いなんですか?」
三脚の後ろで、咲希が俺たちを交互に見ていた。目が輝いていた。ビデオカメラの赤いランプは、まだ点いていた。REC。世界中が見返すのをやめた物語を、その小さな機械だけが律儀に記録していた。
俺が口を開く前に、半拍早く、涼子が答えた。
「同級生よ」
同級生。正確な言葉だ。世界でいちばん正確で、いちばん何でもない言葉。審判を二十年やれば分かる。正確な判定が、必ずしも真実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
「咲希、行くよ。遅くなったから」
あの子はビデオカメラを止めて、三脚を畳んだ。いつもの四分の一の速度で。畳む間、ふたりの大人を交互に見る視線が忙しかった。ドアを出る直前、あの子は振り返って言った。
「次の撮影、水曜日です。質問二番、まだ答えてもらってませんから」
ベルが鳴って、ふたりは消えた。ガラス戸の向こうで、並んで歩いていくふたつの影が、街灯の下を過ぎて暗くなった。大きい影と、小さい影。俺は長いこと、誰もいなくなった戸口を見ていた。
それから、帳簿の下から撮影同意書を取り出して、初めてちゃんと読んだ。
保護者署名:水島涼子。
端正な字だった。二十八年前、美術室の引き出しに賞状をしまっていた人の字。出せなかったものを積み重ねていた人の字。俺はその四文字を、長いこと見ていた。
ボールは嘘をつかない。書類もつかない。嘘をつくのはいつも、見ていながら見なかった側だ。
その夜、俺はベッドに横になって天井を見ながら、あの子が初めて来た日からの十二日間を、最初から再生し直した。九十度のお辞儀。料金表の五分。軒下の百二十円。七回の打球音。水島、咲希。スロービデオはいつも、後になってから届く。そして後から届いたスロービデオの中で、すべての場面は最初から明白だった。
この町に来たのは咲希ではなく、水島涼子の娘だった。いや——両方だった。判定はひとつに定まらなかった。審判はそういう場合、どうするのか。教官の声が、二十年の彼方から聞こえてきた。
最後まで見てから、コールしろ。
俺は明かりを消した。
— 第2話 終 —
The kid really did come back.
Sunday evening, the door opened with the chime of the bell, and she walked up to the counter and bowed at a full ninety degrees—the kind of bow they call a deep formal bow. Then she left without a word. Total time on the premises: fifteen seconds. I never looked up from the ledger, but I counted all fifteen.
She didn't come Monday. She came Tuesday. This time she spent about five minutes reading the price list on the wall before leaving. The price list has exactly three lines to read. Three hundred yen for twenty pitches, punch cards available, helmets required. Taking five minutes to read three lines is a kind of talent.
On Wednesday, the kid paid her three hundred yen in coins and stepped into the lane.
Swing and a miss, swing and a miss, another miss. Her shoulder flew open early and her head turned faster than the ball—the kind of swing no one connected to baseball can watch for more than five seconds. On top of that, she gripped the bat too high, her stance was too narrow, and she closed her eyes before the ball arrived. An abundance of things to correct is a blessing for a teacher and a torture for a bystander. I decided to keep my bystander's seat, pretending not to watch while watching everything. The human eye does not let itself be fooled that way.
After whiffing on all twenty, the kid stood in front of the counter, wiping the sweat from her forehead, and said,
"Baseball's hard, isn't it."
"...I suppose."
"I'll come again tomorrow."
I know a strategy when I see one. I'm a man who spent twenty years taking arguments from managers. A manager's argument comes in two kinds: the kind that tries to change the call, and the kind that tries to influence the next one. The former is amateur; the latter is professional. The kid's strategy was the latter. She wasn't after today's answer but tomorrow's, closing the distance to the counter a little more each day. That a fourteen-year-old was using a professional's move impressed me a little, and the fact that I was impressed unsettled me a little.
Thursday morning, on my way to buy eggs, I stopped in front of the hardware store.
"What did you tell that kid?"
Kenji froze with the shutter half raised and looked at me. The angle of his innocence was already wrong.
"Tell her what?"
"Forty minutes."
"...Ah, the broadcasting club." Kenji pushed the shutter the rest of the way up and rolled his shoulders. "I stuck to the essentials. Number 8, who took this town's school to Koshien for the first time. The man they said was a lock for the pros. Who vanished at twenty-one and turned up in the major leagues as an umpire—I told her nothing but facts."
"That took forty minutes?"
"I put some flesh on it, sure. A story is eighty percent flesh." Kenji tied his apron strings. "But listen, that kid's the real thing. Halfway through my talk she quietly lowered the camcorder and just listened. She knows which part is the real story. At that age."
"You did something unnecessary."
"You should try doing something unnecessary once in a while yourself." Kenji said this, started into the store, then turned back at the threshold. "What about my eggs?"
I didn't buy him his eggs. It was my small act of retaliation, good for that one day only.
On Friday it poured.
Summer rain gives short notice. The sky darkened at four in the afternoon, and by four-thirty it was coming down in buckets. It was no weather for customers, and I was at the counter sorting a parts list for the pitching machines. At ten past five, a shadow appeared beyond the glass door.
It was the kid. No umbrella, her school uniform half soaked, sheltering from the rain under the eaves. She was hugging the camcorder bag to her chest—the posture of someone who would let herself get wet before she let the bag. She could have opened the door and come in, but she didn't. Apparently she had some kind of principle about not interfering with business. A strange principle for someone who barged in every day, but principles usually look strange from the outside.
I sat at the counter for fifteen minutes. The rain showed no sign of stopping. The kid's back grew steadily wetter.
In the end I took out a towel, opened the door, and tossed it to her. Then I bought a cocoa from the vending machine. I pressed the button for hot. It must have been the first hot cocoa that machine had dispensed in summer since the day I installed it.
"...What about my interview?" the kid said, laughing as she took the towel.
"Drink."
The kid drank the cocoa under the eaves, holding the can in both hands. I closed the door and went back to the counter. With a single pane of glass between us, we each watched the rain from where we were. After thirty minutes or so the rain thinned, and the kid set the empty can down neatly under the eaves, gave a little bow toward the glass door, and went home.
When I went out to clear away the can, there was a hundred and twenty yen underneath it.
I looked at that hundred and twenty yen for a long time. It meant: I will owe nothing. Not to adults, not to the world, not to anyone. I thought about what moves a fourteen-year-old to leave cocoa money under the eaves, and the thought stopped itself before it reached any conclusion. Because I thought I knew where that impulse came from. A person who has lost something once acquires habits like that. The habit of owing the world nothing. So you can leave lightly, at any moment. And that habit—I had been using it for a long time myself.
I put the hundred and twenty yen in the counter drawer. Not in the change tray, but in the junk compartment where paper clips and rubber bands roll around. Why I did that is difficult to explain.
Saturday. Her sixth visit. The kid paid her three hundred yen again and stepped into the lane.
Swing and a miss. Swing and a miss. The shoulder opened, the head turned, the eyes closed. Out of twenty pitches, she ticked the ball twice. She fed in another coin. Twenty more. This time she didn't touch a single one. When I heard the third coin drop into the slot, I finally couldn't stand it.
"...Don't open your shoulder. Watch the ball all the way in."
I regretted it the moment I said it. Regret always arrives half a second behind the utterance. The kid turned from the batter's box to look at me. I pretended to be studying the ledger.
On the next pitch there was a crack.
The sound a metal bat makes when it catches the ball square on its center—that peculiar, dry, satisfying sound. A good sound is a good sound whenever you hear it. The kid whipped around, helmet still on.
"That was coaching just now, wasn't it? I just got coached by the legend, didn't I?"
"...No."
"I should have had the camera running."
Of the eighteen pitches remaining, the kid hit seven. All seven with her shoulder closed, watching the ball all the way in. People who can execute seven times what they've heard once are rare, even among adults. Listening to those seven sounds of contact, I felt myself slipping, little by little, into a dangerous mood. Wanting to teach is a dangerous mood for me. Because to teach something is to enter into a relationship with that something all over again.
That evening, the kid didn't go home. She spread her homework out in front of the counter and settled in. Math. Working through simultaneous equations, pausing to erase, she spoke without lifting her head.
"Mister. I'm coming tomorrow, and the day after, and once school starts I'm coming every day after class. This place is on the way between school and home anyway, so it doesn't even cost me bus fare."
"...This is interference with business."
"I'm the only customer you have."
It was a fact that admitted no rebuttal. I closed the ledger and stared at the back of her head for a while. Her high ponytail swayed under the fluorescent light. There are many ways for a human being to concede defeat, but mine has always been the same one. Say it short.
"...One time only. One camera. Don't film my face."
"Who ever heard of a faceless legend?" The kid shot to her feet. Her pencil rolled across the floor.
"Take it or leave it."
"...Fine. We'll start with that."
The kid took a filming consent form out of her bag. It was the school's official form, and I signed it carelessly. That there was a guardian's signature line below mine, that neat handwriting already filled it—these things I did not see. To be precise—whether I chose not to see, or genuinely failed to see, I have not been able to make the call to this day. The important junctures of a life are usually like that. The slow-motion replay always arrives after the fact.
I should have looked.
"First shoot is next Saturday evening," the kid said, shouldering her bag. "It's a day I'm supposed to be home by nine. If I'm not—my mom will probably come get me."
Sunday and the week that followed were strangely long.
The kid came every day, as promised. She hit her twenty in the lane—her average crept upward—did her homework in front of the counter, and left at six-thirty each evening. I discovered that at six-thirty each evening the place went suddenly quiet, and I did not like the discovery. Quiet had been my area of expertise for twenty years. My area of expertise was being encroached upon.
On Wednesday the kid showed me something she called her question notebook. Questions written out in a ruled notebook, in numbered order. One: how it felt to go to Koshien. Two: why did you suddenly disappear. Three: why did you become an umpire. And four—was that pitch really a strike?
"I'll ask them in order. Number four is for the last day."
"And when is the last day?"
"That gets decided in the editing." The kid closed the notebook. "A documentary doesn't end where it ends. It ends where you end it."
Whether she had picked the line up somewhere or coined it herself, I couldn't tell. But it was fairly accurate. Life is mostly like that too. It doesn't end where it ends; it ends where someone ends it. The way my own twenty-third year had. Of course, at the time, I didn't take the thought that far. That thought would arrive on the Saturday of the shoot, around nine in the evening.
Saturday evening, the red light came on in the camcorder atop the tripod. The kind that runs actual tape — a rare thing these days. Her dad gave it to her, she had added briefly, in a tone that could have been either pride or excuse.
I sat in the chair in front of the counter. You look like you're being interrogated, the kid said, laughing. I had no grounds for denial.
"Question one. The regional final. When the last fly ball went up with Koshien on the line—what were you thinking?"
"...You don't think. The body moves first."
It was the truth. While the ball is in the air, the world becomes simple. A ball never lies. There is a landing point, a time of arrival, and you catch it or you don't. I loved that simplicity. Loved it all the more once I learned that the world of people is not built that way.
"Wow, that was a good one. The body moves first." The kid drew a star in her notebook. "Then question two." The page turned. "Why did you suddenly disappear? When you were supposed to go pro."
It was a story I had told no one in twenty-five years. And yet, strangely, in that moment, I felt it might be all right to tell it. Maybe it was the camcorder's red light. Or maybe it was that sentence—even though nobody ever watched it again—which had been knocking around somewhere inside my body for days.
I drew a breath. That was when the bell rang.
"Saki, aren't you done? It's past nine—"
The voice broke off there.
My back knew first. Before my brain, before my heart—my back. The body is built that way. Built to vault lightly over some twenty-eight years and return, in an instant, to a riverbank at eighteen, to Jingu Stadium at twenty. It's the same principle by which an outfielder hears the crack of the bat and is already turning to run. You don't think. The body moves first.
I turned around slowly. It was probably the slowest turn of my life.
She was standing in the doorway. Mizushima Ryoko, forty-six years old, her hand still on the door handle. Her fingertips had gone white. Even under two fluorescent tubes' worth of light, I could see that.
Four seconds, maybe five. In the empty batting center, only the hum of the fluorescent lights. I know, professionally, the moment when every sound in the world disappears: it's the moment the ball leaves the fingertips. But this was a different kind of silence. There was no ball anywhere. Or maybe a ball thrown seventeen years ago was only now arriving.
"...It's been a long time."
She spoke first. She always had.
"...Yeah. Long time."
For a first conversation in seventeen years, it was economical. A few words. But there is a kind of sentence whose length and weight are inversely proportional.
"...Wait. You two know each other?"
Behind the tripod, Saki was looking back and forth between us. Her eyes were shining. The camcorder's red light was still on. REC. A story the whole world had stopped replaying, and that little machine alone went on faithfully recording it.
Before I could open my mouth, half a beat ahead of me, Ryoko answered.
"We went to school together."
We went to school together. An accurate statement. The most accurate, most meaningless statement in the world. Work twenty years as an umpire and you learn this: an accurate call is not necessarily the truth.
"Saki, let's go. It's late."
The kid switched off the camcorder and folded up the tripod. At a quarter of her usual speed. All the while, her eyes went busily back and forth between the two adults. Just before stepping out the door, she turned and said,
"Next shoot is Wednesday. You still haven't answered question two."
The bell rang and the two of them were gone. Beyond the glass door, two shadows walking side by side passed under the streetlight and faded into the dark. A tall shadow and a small one. I stared at the empty doorway for a long time.
Then I took the consent form out from under the ledger and read it properly for the first time.
Guardian's signature: Mizushima Ryoko.
Neat handwriting. The handwriting of the person who, twenty-eight years ago, kept an award tucked in an art-room drawer. The handwriting of the person who stockpiled the things she never sent. I looked at that name for a long time.
A ball never lies. Neither does paperwork. The one who lies is always the one who saw and chose not to see.
That night I lay in bed looking at the ceiling and replayed, from the beginning, the twelve days since the kid first came. The ninety-degree bow. The five minutes at the price list. The hundred and twenty yen under the eaves. The seven sounds of contact. Mizushima. Saki. The slow-motion replay always arrives after the fact. And in the replay that arrived after the fact, every scene had been obvious from the start.
The one who had come to this town was not Saki but Mizushima Ryoko's daughter. No—it was both. The call would not resolve into one. What does an umpire do in a case like that? My instructor's voice reached me from twenty years away.
Watch it all the way, then make the call.
I turned off the light.
— End of Ep. 2 —
나에게는 문장을 접는 버릇이 있다.
말하려던 문장을 도중에 접어서,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커피라도 마실래, 는 커피라도, 에서 접힌다. 가지 마, 는 대개 잘 가, 로 접힌다. 종이접기와 비슷하다. 접는 횟수가 늘수록 원래의 모양은 알 수 없게 되고, 마지막에는 학인지 개구리인지 본인조차 구분할 수 없는 작은 덩어리가 남는다. 나는 그런 덩어리를 사십육 년 분량 가지고 있다. 서랍 하나는 족히 채울 것이다.
그날 밤에도 나는 하나를 접었다.
배팅센터의 문을 열었을 때, 카운터 앞 의자에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십칠 년 만이었다. 정확히는 십칠 년하고 몇 개월. 나는 그 몇 개월까지 셀 수 있지만, 세지 않기로 한다. 세는 순간 그것은 기다림이었다는 것이 되어 버리니까.
"둘이, 아는 사이예요?"
딸이 물었을 때, 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반 박자 빠른 "동창이야"였다.
원래의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것은 여러 번 접혀서, 두 어절이 되었다. 동창이야.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아무것도 아닌 말. 접는 기술만큼은 십칠 년 사이에 더 늘어 있었다.
돌아오는 언덕길에서 사키는 평소의 두 배로 말이 많았다. 전설이 어떻고, 인터뷰가 어떻고, 오늘 대답이 어떻고. 나는 응, 그래, 그렇구나, 로 답하며 걸었다. 딸의 말은 절반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귀가 다른 것을 재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오랜만. 네 글자. 십칠 년 치고는 너무 짧고, 그 사람치고는 충분히 긴 대답을.
"엄마,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방금 내가 뭐랬는데?"
"……전설 얘기."
사키는 코로 웃었다. "엄마도 옛날 얘기 좀 해 줘. 동창이었으면 아는 거 많을 거 아냐."
"……별거 없어. 옛날 일이라."
접었다. 오늘 몇 번째인지는 세지 않았다.
이 마을에 돌아오게 된 경위를 정리하면 세 줄이 된다.
아버지가 입원했다. 이혼 서류의 잉크가 말랐다. 딸에게는 전학 수속이 필요했다. 사람이 옛 마을로 돌아오는 이유는 대개 그런 식으로 사무적이다. 사무적인 이유를 세 개쯤 겹쳐 놓으면, 사무적이지 않은 이유 하나를 그 밑에 숨길 수 있다.
이삿날은 유월 말이었다. 소형 트럭 한 대 분량의 짐이었다. 십이 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면 트럭 한 대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짐을 싸는 내내 아무 감상도 갖지 않으려고 애썼다. 감상이라는 것은 갖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에만 갖지 않을 수 있다.
거실 짐을 풀다가 서류 봉투가 하나 나왔다. 이혼 관계 서류. 나는 그것을 서랍 제일 아래 칸에 넣었다. 제일 아래 칸이라는 것은 이상한 장소다. 버리지는 않겠지만 보지도 않겠다는 마음들이 모이는 곳. 집집마다 그런 칸이 하나씩 있고, 그 칸의 두께가 그 집의 역사다.
그리고 상자가 하나 있었다.
이사할 때 유일하게 새로 포장하지 않은 상자. 테이프는 누렇게 바랬고, 모서리는 십칠 년 분량의 이사를 견디느라 무릎처럼 둥글게 닳아 있다. 결혼할 때도, 이사할 때마다도, 이혼할 때도, 나는 그 상자를 열지 않고 옮기기만 했다. 남편이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그거 뭐야? 나는 대답했다. 옛날 그림 도구.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이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남편은 끝까지 몰랐고, 어쩌면 끝에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당신 마음 안에는 처음부터 선객이 있었어, 라고 도장을 찍으며 말한 것을 보면.
나는 그 상자를 침실 벽장의 제일 위 칸에 올렸다. 제일 아래 칸과 제일 위 칸.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두 주소. 아래 칸에는 끝난 것을 넣고, 위 칸에는 끝나지 않은 것을 넣는다. 그런 구분을 머리로 정한 적은 없다. 다만 상자를 든 손이 망설임 없이 위 칸으로 올라갔고, 나는 발판 위에서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다.
아버지의 병실은 사 층이었다.
침대의 아버지는 야위어 있었다. 평생 도장을 찍는 쪽이었던 아버지. 남의 서류에, 남의 계획에, 그리고 딸의 인생에 — 붉은 인주 하나로 허락과 반려를 정하던 사람. 언제나 닫힌 서재 문 안쪽에 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지금은 환자복 소매 밖으로 나온 팔목이 내 팔목보다 가늘다. 협탁 위에는 막도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간호사가 서류 받을 일이 많아서요, 라고 웃으며 말했다. 평생 남의 인생에 도장을 찍던 사람이 마지막에 찍는 것은, 자기 몸에 관한 동의서들이다. 도장이라는 것은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서, 끝내 주인의 몸으로 돌아온다.
"……왔냐."
"네."
그것이 우리 부녀의 대화의 전부였다. 삼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았다. 사각, 사각. 병실에는 그 소리만 있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언제나 소리가 부족했고, 사과는 그 부족을 메우기 위한 오래된 도구다.
사키는 문가에서 자판기 주스를 들고 서 있다가, 특유의 직구를 던졌다.
"할아버지. 이 동네에 전설 있는 거 알아요? 고시엔 갔다가, 사라졌다가, 메이저리그 심판 된 사람. 지금 배팅센터 한대요."
사과를 깎던 손이 멈췄다.
일 초, 이 초. 나는 다시 깎기 시작했다. 껍질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십몇 년 사무직으로 단련된 손은 그런 때에 유능하다. 마음과 무관하게 작업을 계속하는 능력. 그것으로 월급을 받아 왔으니까.
아버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긴 사이가 있었다.
"……시끄러운 동네다."
그것이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사키는 어깨를 으쓱하고 주스를 마셨다. 나는 사과를 마저 깎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삼십 년 전 — 정확히는 이십팔 년 전 — 딸이 어느 야구부원과 사귄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 와서, 저녁 밥상에서 젓가락을 놓으며 "쓸데없는 것에 한눈팔 시기가 아니다"라고, 도장을 찍듯 말했던 것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 서류의 수령인란에 서명하지 않았다. 말없이 밥을 먹는 방식으로. 그것이 나의 최대 출력이었다.
병실을 나올 때 아버지가 등 뒤에서 말했다.
"……료코."
나는 돌아봤다. 아버지는 창밖을 본 채였다.
"사과, 두고 가라."
깎아 놓은 사과를 두고 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접시를 협탁에 놓고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 부녀의 언어에서 그것이 무엇으로 번역되는지를. 잘 왔다, 인지. 또 와라, 인지. 아니면 그냥 사과가 먹고 싶다, 인지. 삼십 년을 배워도 아버지어(語)는 어렵다. 다만 어려운 채로, 그 두 어절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전학 수속을 하러 간 날, 사키의 학교 방송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담임이 될 선생은 젊은 여자였고, 사키의 전 학교 생활기록부를 넘기다가 말했다. 방송부 활동을 열심히 했네요. 우리 학교 방송부는 작지만 공모전 실적이 있어요. 사키는 옆에서 눈을 빛냈다. 그 눈을 보며 나는 안심했던 것 같다. 이 아이는 어디에 심어도 뿌리를 내린다.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해 본 적이 있는 인간은, 실패하지 않는 인간을 보면 경외감을 느낀다. 그것이 자기 딸이라도. 아니, 자기 딸이라서 더.
돌아오는 길에 사키가 물었다.
"엄마는 이 학교 나왔지? 어땠어?"
"……보통이었어."
보통이었어. 그 대답을 하는 순간의 내 목소리가 어떤 각도로 흔들렸는지, 아이가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알아챘을 것이다. 그 아이는 흔들림을 채집하는 아이니까. 다만 그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아이는 물을 것을 미리 골라 두고, 묻는 순간은 따로 고르는 아이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리고 칠월의 어느 저녁, 사키가 촬영 동의서를 내밀었다.
식탁 위에 밀어 놓은 서류의 촬영 대상자 칸에는, 딸의 또박또박한 글씨로 이름이 먼저 적혀 있었다. 아사쿠라 유타.
나는 그 다섯 글자를 내려다보았다. 볼펜을 쥔 손이 보호자 서명란 위에서 멈춰 있었다. 몇 초였는지는 모른다. 사키가 "엄마?" 하고 불렀으니까, 아이가 이상하게 느낄 만큼의 길이였을 것이다.
"이 아저씨야? 네가 요즘 맨날 가는 데가."
"응. 배팅센터. 전설이야."
"……그렇구나."
나는 서명했다. 미즈시마 료코. 결혼 전의 성으로 돌아온 서명. 그 성을 데리고 이 마을로 돌아온 지는 두 달째였다. 서명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서류가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겠구나. 이 글씨를 보겠구나. 아니, 어쩌면 안 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서류를 대충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어느 쪽을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도 접는 것의 한 형태다.
그날 밤 나는 벽장 앞에 섰다. 제일 위 칸의 상자. 발판 위에 올라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골판지에 닿기 직전에 — 멈췄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어떨까. 오랫동안 잠가 둔 방의 문고리에 손을 얹는 순간, 문 너머의 공기가 손바닥에 먼저 느껴질 때가 있다. 차갑고, 밀도가 높고, 십칠 년 동안 아무도 숨 쉬지 않은 공기. 그 공기를 오늘 밤 들이마실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벽장을 닫고 부엌으로 가서 보리차를 마셨다. 컵을 씻고, 행주를 개고, 이미 개어져 있던 행주를 한 번 더 갰다. 행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손이라는 것은 마음이 갈 곳을 잃으면 아무 데나 들르는 법이다.
그리고 토요일 밤 — 재회의 밤이 왔다.
아홉 시가 다 되어도 사키가 오지 않아서, 나는 언덕을 내려가 배팅센터로 갔다. 유리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 숨을 한 번 골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 가게에 누가 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동의서의 다섯 글자를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알면서 딸을 매일 보냈고, 알면서 데리러 갈 일을 만들지 않았고, 알면서 — 그날은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사키야, 아직이야? 아홉 시 넘—"
문장은 거기서 끊겼다. 준비한 문장이었는데. 아홉 시 넘었잖아, 까지 다섯 글자가 남아 있었는데.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십칠 년은 사람의 얼굴에 여러 가지를 한다. 살을 깎고, 그림자를 파고, 흰 것을 심는다. 그러나 눈만은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를 보는 그 눈은, 외야에서 공을 기다리던 열여덟의 눈 그대로였다.
"……오랜만이야."
먼저 말한 것은 나였다. 옛날부터 그랬다. 접는 사람이 먼저 말하게 되는 관계라는 것도 세상에는 있다. 삼키는 사람이 상대일 경우에 한해서.
"……어. 오랜만."
사키가 우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캠코더의 빨간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시야 끝에 보였다. 아이가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동창이야."
반 박자 빠른 대답이었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았다.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다만 그 말은 열여덟의 불꽃과, 진구 구장의 함성과, 골목의 가로등과, 뉴욕의 코인 빨래방과, 십칠 년의 태평양을 전부 접어서 만든 두 어절이었다. 펼치면 방 하나를 가득 채울 것이다.
"사키, 가자. 늦었어."
돌아서는 순간까지,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다. 보면 무언가가 접히지 않고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튀어나오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두 번뿐이었다. 열여덟의 언덕에서 한 번. 그리고 — 아니, 그 이야기는 아직 순서가 아니다.
집에 돌아와 사키가 제 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부엌에 혼자 앉아 있었다.
부엌의 시계가 열두 시를 넘겼다. 딸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키는 잠들면 세상 무엇으로도 깨울 수 없는 아이다. 그 점만은 나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십육 년 동안 얕게 잤다. 접어 둔 것이 많은 인간은 잠도 얕게 자는 법이다. 주머니 속의 종이들이 밤중에 부스럭거리므로.
창밖으로 언덕이 보였다. 이십팔 년 전과 같은 자리에, 같은 각도로.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고향도 아니다. 내가 이 마을에 산 것은 인생에서 단 일 년 — 고등학교 마지막 한 해뿐이다. 그런데도 '돌아왔다'는 동사 말고는 쓸 말이 없다. 사람의 고향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인생의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에 등기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딸은 지금, 이십팔 년 전의 나와 똑같이 전학생으로 이 마을의 학교에 다닌다. 그런 것을 우연이라고 부를지 유전이라고 부를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내일부터 딸은 또 캠코더를 메고 그 배팅센터에 갈 것이다. 질문 노트에는 내가 흘긋 본 것만으로도 심장이 접히는 질문들이 적혀 있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 공, 진짜 스트라이크였어요.
언젠가 그 카메라는 나에게도 향할 것이다. 아이의 카메라란 그런 것이다. 어른들이 서로 보여 주지 않기로 합의한 것들을, 합의한 적 없는 존재가 정면으로 찍는다.
그때 나는 무슨 문장을 접게 될까. 아니면 —
이십팔 년 만에 처음으로, 접지 않게 될까.
보리차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마셨다. 그리고 이십팔 년 전의 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학 서류를 들고 이 마을에 처음 내린 날의, 열여덟의 나에 대해서.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길어질 테니까. 인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던 일 년의 이야기는, 미지근한 보리차 한 잔 분량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 3화 끝 —
私には文章を畳む癖がある。
言いかけた文章を途中で畳んで、誰にも知られないようにポケットにしまうのだ。コーヒーでも飲まない、は、コーヒーでも、のところで畳まれる。行かないで、はたいてい、気をつけてね、に畳まれる。折り紙に似ている。折る回数が増えるほど元の形はわからなくなり、最後には鶴なのか蛙なのか、本人にさえ見分けのつかない小さな塊が残る。私はそういう塊を四十六年分持っている。抽斗ひとつは優に埋まるだろう。
あの夜も、私はひとつ畳んだ。
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の扉を開けたとき、カウンター前の椅子にあの人が座っていた。十七年ぶりだった。正確には十七年と数ヶ月。私はその数ヶ月まで数えられるけれど、数えないことにする。数えた瞬間、それは待っていたということになってしまうから。
「ふたりって、知り合いなんですか?」
娘に訊かれたとき、私の口から出たのは、半拍早い「同級生よ」だった。
元の文章が何だったかは言わない。ただそれは何度も畳まれて、あのひとことになった。同級生よ。世界でいちばん正確で、いちばん何でもない言葉。畳む技術だけは、十七年のあいだにさらに上達していた。
帰りの坂道で、咲希はいつもの倍よくしゃべった。伝説がどうの、インタビューがどうの、今日の答えがどうの。私は、うん、そう、そうなんだ、と相槌を打ちながら歩いた。娘の言葉は半分ほど耳に入らなかった。耳が別のものを再生していたからだ。ああ。久しぶり。たったそれだけ。十七年にしてはあまりに短く、あの人にしては十分に長い返事を。
「お母さん、聞いてる?」
「聞いてるよ」
「じゃあ、今なんて言った?」
「……伝説の話」
咲希は鼻で笑った。「お母さんも昔の話してよ。同級生だったなら、いろいろ知ってるでしょ」
「……別に何もないよ。昔のことだから」
畳んだ。今日で何度目かは数えなかった。
この町に帰ってくることになった経緯をまとめると、三行になる。
父が入院した。離婚届のインクが乾いた。娘には転校の手続きが必要だった。人が昔の町に帰る理由は、たいていそんなふうに事務的だ。事務的な理由を三つほど重ねておけば、事務的でない理由をひとつ、その下に隠すことができる。
引っ越しは六月の末だった。小型トラック一台分の荷物だった。十二年の結婚生活をまとめるとトラック一台になるという事実について、私は荷造りのあいだじゅう、何の感傷も持たないように努めた。感傷というものは、持たないように努めているあいだだけ、持たずにいられる。
居間の荷物をほどいていたら、書類の封筒がひとつ出てきた。離婚関係の書類。私はそれを抽斗のいちばん下の段にしまった。いちばん下の段というのは不思議な場所だ。捨てはしないが見もしない、という気持ちの集まるところ。どの家にもそういう段がひとつあって、その段の厚みがその家の歴史なのだ。
そして、箱がひとつあった。
引っ越しのとき、唯一梱包し直さなかった箱。テープは黄ばみ、角は十七年分の引っ越しに耐えて、膝のように丸く磨り減っている。結婚のときも、引っ越しのたびも、離婚のときも、私はその箱を開けずに運ぶだけだった。夫に一度訊かれたことがある。それ、何? 私は答えた。昔の絵の道具。嘘ではなかった。ただ、その箱に入っているのが道具だけではないことを、夫は最後まで知らなかったし、もしかすると最後には知ったのかもしれない。君の心の中には最初から先客がいたんだね、と判を押しながら言ったところを見ると。
私はその箱を寝室の押入れのいちばん上の段に上げた。いちばん下の段と、いちばん上の段。捨てられないものたちの二つの住所。下の段には終わったものを入れ、上の段には終わっていないものを入れる。そんな区分を頭で決めたことはない。ただ、箱を持った手がためらいなく上の段へ上がっていき、私は踏み台の上でその事実に遅れて気づいただけだ。
父の病室は四階だった。
ベッドの父は痩せていた。生涯、判を捺す側だった父。他人の書類に、他人の計画に、そして娘の人生に — 朱肉ひとつで許可と却下を決めていた人。いつも閉ざされた書斎の扉の内側にいた父。その父が今は、患者衣の袖から出た手首が私の手首より細い。床頭台の上には三文判がひとつ置かれていた。書類をいただくことが多いので、と看護師が笑いながら言った。生涯、他人の人生に判を捺してきた人が最後に捺すのは、自分の体に関する同意書たちだ。判というものはそうやって一周まわって、ついには主の体へ帰ってくる。
「……来たか」
「ええ」
それが私たち父娘の会話のすべてだった。三十年前もそうだったし、いまもそうだ。私はベッド脇の椅子に座って林檎を剥いた。しゃり、しゃり。病室にはその音だけがあった。父と私のあいだにはいつも音が足りなくて、林檎はその不足を埋めるための古い道具なのだ。
咲希は戸口で自販機のジュースを手に立っていたが、持ち前の直球を投げた。
「おじいちゃん。この町に伝説がいるの、知ってます? 甲子園に行って、消えて、メジャーリーグの審判になった人。いま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やってるんだって」
林檎を剥く手が止まった。
一秒、二秒。私はまた剥きはじめた。皮は切れなかった。二十数年、事務職で鍛えられた手は、こういうときに有能だ。心と無関係に作業を続ける能力。それで給料をもらってきたのだから。
父は窓の外へ目をそらした。長い間があった。
「……騒がしい町だ」
それが父の答えだった。咲希は肩をすくめてジュースを飲んだ。私はりんごを剥き終えた。何事もなかったかのように。ただ、私は知っていた。父があの名前を覚えているということを。三十年前 — 正確には二十八年前 — 娘がどこかの野球部員と付き合っているという噂をどこかで聞いてきて、夕食の膳で箸を置きながら「くだらないことに気を取られる時期じゃない」と、判を捺すように言ったことを。あのとき私は初めて、その書類の受領人欄に署名しなかった。黙って飯を食うというやり方で。それが私の最大出力だった。
病室を出るとき、父が背中から言った。
「……涼子」
私は振り返った。父は窓の外を見たままだった。
「林檎、置いていけ」
剥いておいた林檎を置いていけ、という意味だった。私は皿を床頭台に置いて出た。廊下を歩きながら考えた。私たち父娘の言語で、それが何に翻訳されるのかを。よく来たな、なのか。また来い、なのか。それとも、ただ林檎が食べたい、なのか。三十年学んでも父語は難しい。ただ、難しいまま、あのひとことが不思議と長く残った。
転校の手続きに行った日、咲希の学校の放送部の話を初めて聞いた。
担任になる先生は若い女性で、咲希の前の学校の記録をめくりながら言った。放送部の活動、熱心だったんですね。うちの放送部は小さいけれど、コンクールの実績があるんですよ。咲希は隣で目を輝かせた。その目を見て、私は安心したのだと思う。この子はどこに植えても根を張る。根を張ることに失敗したことのある人間は、失敗しない人間を見ると畏敬の念を抱く。それが自分の娘であっても。いや、自分の娘だからこそ、なおさら。
帰り道で咲希が訊いた。
「お母さんって、この学校出たんだよね? どうだった?」
「……普通だったよ」
普通だったよ。その答えを口にした瞬間の私の声がどんな角度で揺れたのか、あの子が気づいた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気づいただろう。あの子は揺れを採集する子だから。ただ、そのときは何も訊かなかった。あの子は訊くことを先に選んでおいて、訊く瞬間は別に選ぶ子だ。急ぐということがない。
そして七月のある夕方、咲希が撮影同意書を差し出した。
食卓の上に押しやられた書類の撮影対象者の欄には、娘のきちょうめんな字で、先に名前が書き込まれていた。朝倉悠太。
私はその四文字を見下ろした。ボールペンを握った手が、保護者署名欄の上で止まっていた。何秒だったかはわからない。咲希が「お母さん?」と呼んだのだから、子どもが不審に思うくらいの長さだったのだろう。
「このおじさんなの? あんたが最近毎日行ってるところって」
「うん。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伝説だよ」
「……そうなんだ」
私は署名した。水島涼子。結婚前の姓に戻った署名。その姓を連れてこの町に帰ってきて、二ヶ月になる。署名しながら私は思った。この書類はあの人の手に渡るのだ。この字を見るのだ。いや、もしかすると見ないかもしれない。あの人は書類をろくに見ない人だったから。私はどちらを望んでいるのか、自分に問わなかった。問わないこともまた、畳むことのひとつの形だ。
その夜、私は押し入れの前に立った。いちばん上の段の箱。踏み台に乗って手を伸ばした。指先が段ボールに触れる直前で — 止まった。
こんなふうに説明したらどうだろう。長いあいだ鍵をかけておいた部屋のドアノブに手を置いた瞬間、扉の向こうの空気が先に手のひらに感じられることがある。冷たくて、密度が高くて、十七年間誰も呼吸していない空気。その空気を今夜吸い込むのか、という問題だ。私にはまだ、その準備ができていなかった。
押し入れを閉めて台所へ行き、麦茶を飲んだ。コップを洗い、布巾を畳み、すでに畳んであった布巾をもう一度畳んだ。布巾には申し訳ないけれど、手というものは、心の行き場を失うと、どこへでも立ち寄るものなのだ。
そして土曜の夜 — 再会の夜が来た。
九時近くになっても咲希が帰らないので、私は坂を下って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へ行った。ガラス戸の前に立って、中をのぞく前に、一度息を整えたのを覚えている。あの店に誰がいるのか、私は知っていた。同意書の四文字を見た瞬間から知っていた。知りながら娘を毎日通わせ、知りながら迎えに行く用事を作らず、知りながら — あの日は、ドアの取っ手を握った。
扉を開けた。ベルが鳴った。「咲希、まだなの? 九時過ぎ—」
文章はそこで切れた。用意してきた文章だったのに。九時過ぎてるでしょ、まで、あとほんの数文字だったのに。カウンター前の椅子に座っていた男が、こちらを振り返っていた。
十七年は、人の顔にいろいろなことをする。肉を削ぎ、影を彫り、白いものを植える。けれど目だけはどうにもできないらしい。私を見るその目は、外野でボールを待っていた十八の目のままだった。
「……久しぶり」
先に口を開いたのは私だった。昔からそうだった。畳む人間が先に話すことになる関係、というものも世の中にはある。相手が言葉を呑み込む人間である場合に限って。
「……ああ。久しぶり」
咲希が私たちを交互に見ていた。カムコーダーの赤いランプが点いているのが、視界の端に見えた。子どもが訊いた。ふたりって、知り合いなんですか。
「同級生よ」
半拍早い答えだったことは、自分でもわかっていた。嘘ではない。私たちは同じ高校を出た。ただその言葉は、十八の花火と、神宮球場の歓声と、路地の街灯と、ニューヨークのコインランドリーと、十七年分の太平洋を、全部畳んで作ったひとことだった。広げれば、部屋ひとつが埋まるだろう。
「咲希、帰るよ。遅いから」
背を向ける瞬間まで、私はあの人の顔を二度と見なかった。見れば、何かが畳まれないまま飛び出してしまいそうだったからだ。飛び出したことは、私の人生で二度だけだった。十八の坂道で一度。それから — いや、その話はまだ順番ではない。
家に帰り、咲希が自分の部屋に入ったあと、私は台所にひとりで座っていた。
台所の時計が十二時を回った。娘の部屋からは何の音もしない。咲希は眠ってしまえば、世界の何をもってしても起こせない子だ。その点だけは私に似なくてよかったと思う。私は四十六年間、浅く眠ってきた。畳んだものの多い人間は、眠りも浅くなるものだ。ポケットの中の紙たちが、夜中にかさかさと音を立てるので。
窓の外に坂が見えた。二十八年前と同じ場所に、同じ角度で。
正確に言えば、ここは故郷でさえない。私がこの町に住んだのは人生でたった一年 — 高校最後の一年だけだ。それでも「帰ってきた」という動詞のほかに、使える言葉がない。人の故郷は生まれた場所ではなく、人生の密度がいちばん高かった場所に登記されるものらしい。そして娘はいま、二十八年前の私とまったく同じように、転校生としてこの町の学校に通っている。それを偶然と呼ぶのか遺伝と呼ぶのか、私はまだ決めかねている。
明日からまた、娘はカムコーダーを担いであの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に行くだろう。質問ノートには、ちらりと見ただけで心臓が畳まれるような質問が並んでいる。どうして急にいなくなったんですか。あのボール、本当にストライクだったんですか。
いつかあのカメラは、私にも向けられるだろう。子どものカメラとはそういうものだ。大人たちが互いに見せ合わないと合意したものを、合意した覚えのない存在が、正面から撮るのだ。
そのとき私は、どんな文章を畳むのだろう。それとも —
二十八年目にして初めて、畳まずにいられるのだろうか。
麦茶はぬるくなっていた。私はそれを最後まで飲んだ。そして、二十八年前の春について考えはじめた。転校書類を手にこの町に初めて降り立った日の、十八の私について。
その話は今度にする。長くなるから。人生でいちばん密度の高かった一年の話は、ぬるい麦茶一杯分では終わらない。
— 第3話 終 —
I have a habit of folding my sentences.
A sentence I meant to say gets folded partway through and slipped into a pocket where no one can see. Would you like some coffee gets folded at would you like. Don't go usually gets folded into take care. It's a little like origami. The more folds you make, the harder it is to tell the original shape, until at the end there is only a small wad that even its maker cannot identify — crane or frog, who can say. I have forty-six years' worth of those little wads. Enough to fill a drawer, easily.
That night, too, I folded one.
When I opened the door of the batting center, he was sitting on the stool in front of the counter. It had been seventeen years. Seventeen years and some months, to be exact. I could count those months as well, but I choose not to. The moment I count them, it becomes waiting.
"Do you two know each other?"
When my daughter asked, what came out of my mouth, half a beat too soon, was "We went to school together."
I won't say what the original sentence was. Only that it had been folded over and over, down to those few words. We went to school together. The most accurate and most meaningless words in the world. If nothing else, my folding technique had improved over the seventeen years.
On the hill road home, Saki talked twice as much as usual. The legend this, the interview that, today's answer the other. I walked along answering mm, right, is that so. Half of what she said never reached me. My ears were replaying something else. Yeah. It's been a while. Five words — far too short for seventeen years, and, coming from him, a reply more than long enough.
"Mom, are you listening?"
"I'm listening."
"Then what did I just say?"
"...Something about the legend."
Saki snorted. "Tell me some old stories, then. If you went to school together, you must know plenty."
"...There's nothing to tell. It was a long time ago."
Folded. I didn't count what number that made for the day.
The circumstances of my return to this town can be summed up in three lines.
My father was hospitalized. The ink on the divorce papers dried. My daughter needed to transfer schools. The reasons people return to their old towns are usually clerical like that. Stack up three clerical reasons and you can hide one unclerical reason underneath them.
Moving day was the end of June. One small truck's worth of belongings. About the fact that twelve years of marriage, packed up, comes to a single truckload, I tried my best to feel nothing whatsoever the whole time I packed. Feelings are a thing you can avoid having only while you are trying to avoid having them.
While I was unpacking the living-room boxes, a document envelope turned up. The divorce papers. I put it in the bottom drawer of the chest. The bottom drawer is a strange place. It is where the feelings gather that say: I won't throw this away, but I won't look at it either. Every house has one drawer like that, and the thickness of that drawer is the history of the house.
And there was one box.
The only box I hadn't repacked for the move. The tape had yellowed, and the corners had worn round as knees from enduring seventeen years' worth of moves. When I married, at every move since, when I divorced, I never opened that box; I only carried it. My husband asked once. What's that? I answered: old painting supplies. It wasn't a lie. Only, that the box held more than supplies was something my husband never knew — or perhaps, at the very end, he did. Judging by what he said as he pressed his seal to the papers: there was someone in your heart before I ever arrived.
I put the box on the top shelf of the bedroom closet. The bottom drawer and the top shelf. The two addresses of things that cannot be thrown away. Finished things go in the bottom drawer; unfinished things go on the top shelf. I never worked that distinction out in my head. It was only that the hands holding the box rose to the top shelf without hesitating, and I noticed the fact belatedly, standing on the step stool.
My father's room was on the fourth floor.
In the bed, my father had grown thin. A man who spent his life being the one who stamped the seal. On other people's documents, on other people's plans, and on his daughter's life — a man who decided approval and rejection with a single pad of red ink. A father who was always on the other side of a closed study door. Now the wrist emerging from his hospital gown is thinner than mine. On the bedside table sat a cheap ready-made seal. We have a lot of paperwork for him, the nurse said, smiling. What a man who stamped other people's lives all his life stamps at the end are consent forms about his own body. That is how a seal comes full circle and returns, at last, to its owner's body.
"...So you came."
"Yes."
That was the whole of our conversation, father and daughter. It was that way thirty years ago, and it is that way now. I sat in the chair beside the bed and peeled an apple. The soft rasp of the blade, again and again. It was the only sound in the room. Between my father and me there was never enough sound, and an apple is an old tool for filling the shortage.
Saki stood in the doorway holding a juice from the vending machine, and then threw one of her trademark fastballs.
"Grandpa. Did you know this town has a legend? A guy who went to Koshien, disappeared, and became a major-league umpire. He runs the batting center now."
The hand peeling the apple stopped.
One second, two. I began peeling again. The peel didn't break. Hands trained by twenty-odd years of office work are competent at moments like that. The ability to keep working with no reference to the heart. It is what I'd been paid for, after all.
My father turned his eyes to the window. There was a long pause.
"...Noisy town."
That was my father's answer. Saki shrugged and drank her juice. I finished peeling the apple. As if nothing had happened. But I knew. That my father remembered the name. That thirty years ago — twenty-eight, to be exact — he had heard somewhere a rumor that his daughter was seeing some boy on the baseball team, and at dinner he set down his chopsticks and said, as if stamping a seal: this is no time to be distracted by useless things. That was the first time I did not sign the recipient line of one of his documents. By eating my dinner in silence. It was my maximum output.
As I was leaving the room, my father spoke behind my back.
"...Ryoko."
I turned. He was still facing the window.
"Leave the apple."
He meant the apple I had peeled. I set the plate on the bedside table and left. Walking down the corridor, I wondered what that translated to in the language of our family. Good of you to come. Or: come again. Or maybe simply: I want some apple. Thirty years of study, and my father's language is still difficult. But difficult as it remained, those few words stayed with me strangely long.
The day I went to file the transfer paperwork was the first I heard about the broadcasting club at Saki's school.
The teacher who would take her class was a young woman, and as she leafed through the records from Saki's old school she said: I see she was very active in the broadcasting club. Ours is small, but we've placed in competitions. Beside me, Saki's eyes lit up. Watching those eyes, I think I felt relieved. This child puts down roots wherever she is planted. A person who has failed at putting down roots feels a kind of awe before one who does not fail. Even when it is her own daughter. No — all the more because it is her own daughter.
On the way home, Saki asked,
"You went to this school, right, Mom? What was it like?"
"...It was ordinary."
It was ordinary. Whether she caught the angle at which my voice wavered as I said it, I don't know. She probably did. She is a child who collects tremors. But she asked nothing then. She is a child who chooses her questions in advance and chooses the moment of asking separately. She is never in a hurry.
Then one evening in July, Saki held out a filming consent form.
On the line for subject of filming, on the paper she slid across the dinner table, a name had already been entered in my daughter's careful hand. Asakura Yuta.
I looked down at that name. My hand, holding the ballpoint, had stopped above the guardian's signature line. How many seconds passed, I don't know. Saki said "Mom?" — so it must have been long enough for a child to find it strange.
"Is this the man? The place you've been going every day?"
"Yeah. The batting center. He's the legend."
"...I see."
I signed. Mizushima Ryoko. A signature returned to my maiden name. Two months, now, since I had brought that name back to this town. As I signed, I thought: this paper will pass into his hands. He will see this handwriting. Or perhaps he won't. He was never one to look closely at paperwork. Which of the two I hoped for, I did not ask myself. Not asking is also a form of folding.
That night I stood in front of the closet. The box on the highest shelf. I climbed onto the step stool and reached up. Just before my fingertips touched the cardboard — they stopped.
Let me try to explain it this way. Sometimes, the moment you lay your hand on the knob of a room long kept locked, you feel the air on the other side against your palm before the door ever opens. Air that is cold, and dense, and that no one has breathed for seventeen years. The question is whether you are going to inhale that air tonight. I was not ready yet.
I shut the closet, went to the kitchen, and drank some barley tea. I washed the cup, folded the dish towel, and folded once more the towel that was already folded. My apologies to the towel, but hands, when the heart loses its destination, will stop in anywhere at all.
And then Saturday night — the night of the reunion — came.
It was nearly nine and Saki still wasn't home, so I went down the hill to the batting center. I remember standing at the glass door and, before looking inside, steadying my breath once. I knew who was in that shop. I had known from the moment I saw the name on the consent form. Knowing, I had let my daughter go there every day; knowing, I had made no occasion to go and fetch her; knowing — that day, I took hold of the door handle.
I opened the door. The bell rang. "Saki, aren't you done? It's past ni—"
The sentence broke off there. And it was a sentence I had prepared, too. It's past nine, you know — I was only a few words short of finishing it. The man sitting on the stool in front of the counter had turned to look at me.
Seventeen years does many things to a person's face. It carves away flesh, digs in shadows, plants white hairs. But it seems there is nothing it can do about the eyes. The eyes looking at me were the same eyes of the eighteen-year-old who used to wait for the ball in the outfield.
"...It's been a long time."
I was the one who spoke first. It was always that way. There are relationships in this world in which the one who folds ends up speaking first. Provided the other party is one who swallows words.
"...Yeah. It's been a while."
Saki was looking back and forth between us. At the edge of my vision I could see the camcorder's red light burning. The child asked: do you two know each other?
"We went to school together."
I knew myself that it had come half a beat too soon. It isn't a lie. We did go to the same high school. But those words had been made by folding up the fireworks of eighteen, and the roar of Jingu Stadium, and the streetlight in the alley, and a coin laundry in New York, and seventeen years of the Pacific, all of it. Unfolded, they would fill a room.
"Saki, let's go. It's late."
Until the moment I turned away, I did not look at his face again. If I looked, I felt something would spring out unfolded. Only twice in my life has something sprung out. Once on the hill, at eighteen. And — no, it is not yet that story's turn.
Back home, after Saki had gone into her room, I sat alone in the kitchen.
The kitchen clock passed midnight. Not a sound from my daughter's room. Once Saki is asleep, nothing in this world can wake her. That is one respect in which I'm glad she doesn't take after me. For forty-six years I have slept shallowly. People who have folded away many things sleep shallowly. The papers in their pockets rustle in the night.
Through the window I could see the hill. In the same place as twenty-eight years ago, at the same angle.
Strictly speaking, this is not even my hometown. I lived in this town for exactly one year of my life — the last year of high school, no more. And yet no verb will do but returned. A person's hometown, it seems, is registered not where she was born but where the density of her life ran highest. And my daughter now attends this town's school as a transfer student, exactly as I did twenty-eight years ago. Whether to call that coincidence or heredity, I have not yet decided.
Tomorrow my daughter will shoulder the camcorder and go to that batting center again. In her notebook of questions are questions that fold my heart at a glance. Why did you disappear so suddenly. That pitch — was it really a strike.
Someday that camera will turn toward me as well. That is what a child's camera is. The things adults have agreed never to show one another get filmed, head-on, by someone who never agreed to anything.
What sentence will I fold then? Or —
for the first time in twenty-eight years, will I not fold it at all?
The barley tea had gone lukewarm. I drank it to the last. And I began to think about the spring of twenty-eight years ago. About the eighteen-year-old who stepped off in this town for the first time, transfer papers in hand.
That story I will save for next time. It will be a long one. The story of the densest year of a life does not fit into one cup of lukewarm barley tea.
— End of Ep. 3 —
처음 그 사람을 본 날에 대해 이야기해 두는 편이 좋겠다.
열여덟의 사월, 전학 첫날 아침이었다. 아버지의 전근이 우리를 이 마을에 내려놓았다. 발령 통지가 온 것이 이월이었고, 이사가 삼월이었고, 나의 의견이 청취된 것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결재였다. 졸업까지 일 년 남은 시점의 전학이라는 것은 다 지어진 건물에 마지막으로 끼워 넣는 벽돌 같은 것이어서, 나는 어디에도 힘을 주지 않는 법을 미리 연습해 두고 있었다. 친구는 만들지 않는다. 이름은 외우게 하지 않는다. 일 년 뒤에 아무도 울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으로 지낸다. 그것이 전학 네 번째인 인간의 생존 요령이었다.
담임을 기다리는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교사(校舍) 뒤편을 걷고 있었다. 낯선 교복, 낯선 통학로, 낯선 마을. 다만 낯설다는 것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나는 결재된 서류 같은 얼굴로 걷고 있었다.
운동장 구석, 외야라고 불리는 초록의 구역에 남자아이가 하나 서 있었다.
아침 조례도 시작되기 전인데 유니폼을 입고, 혼자서, 아무도 치지 않는 공을 기다리듯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디선가 공이 떴다 — 나중에 알았지만 담장 너머 그라운드의 아침 연습에서 누군가 쳐 낸 파울 플라이였다 — 그리고 그 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이 저렇게 달릴 수 있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목적지를 의심하지 않는 달리기였다. 나의 인생에는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낙하지점을 몰랐다. 내가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버지의 결재란에 적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등 뒤로 느끼며 걷는 사람이었다.
그 아이는 공을 잡았다. 담장 바로 앞에서, 공중에 뜬 채로.
착지한 그 아이는 공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담장 너머로 가볍게 던져 돌려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하늘을 보았다. 박수도 관중도 없는 완벽한 포구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한 동작을 하는 인간을, 나는 그때 처음 봤다. 아니 —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 명이 보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그 아이는 몰랐고, 모른다는 것이 이상하게 중요했다.
한 시간쯤 뒤에 나는 교실 앞에 서서 자기소개라는 것을 했다.
미즈시마 료코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열 글자짜리 소개였다. 전학 네 번째쯤 되면 자기소개는 그 정도로 압축된다. 교실이 웅성거렸다. 사월에 오는 전학생은 드물고, 고삼 사월에 오는 전학생은 더 드물기 때문이다. 어디서 왔대. 도쿄 쪽이래. 왜 지금. 그런 소곤거림이 파도처럼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나는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창가 뒷자리에서 남자아이가 자고 있었다.
아침의 그 아이였다. 유니폼 대신 교복을 입고, 책상에 엎드려서, 세상에서 제일 성실하게 자고 있었다. 소개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것이 고마웠다. 전학생을 쳐다보지 않는 단 한 명의 인간. 그 교실에서 나를 계량하지 않는 유일한 시선 — 정확히는, 시선의 부재. 나는 그 아이의 옆옆 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날 밤 노트 구석에 아침의 그 장면을 그렸다. 연필로, 아무에게도 보여 줄 생각 없이. 그것이 첫 장이었다.
그 후 일 년 동안 나는 같은 사람을 수백 번 그리게 된다. 수백 번 그리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연필은 눈보다 정직하다는 것. 눈은 좋아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연필은 좋아하는 것 앞에서 반드시 느려진다.
전학 온 지 이 주째에 나는 미술실을 발견했다. 방과 후의 미술실은 대개 비어 있었고, 서향의 창으로 오후의 빛이 통째로 들어왔고, 물감과 테레빈유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 숨이 깊어졌다. 집에서는 얕게 쉬던 숨이었다.
미술부는 부원이 넷뿐인 이름만의 부였고, 미술 선생님은 반쯤 은퇴한 사람처럼 조용한 노인이었다. 내가 매일 오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입부 신청서를 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낡은 이젤 하나를 창가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 거기가 네 자리다, 라는 말도 없이. 어른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그보다 나은 것을 나는 별로 알지 못한다.
창가의 이젤에서는 운동장이 보였다. 정확히는, 외야가 보였다.
나는 그해 봄 내내 그 자리에서 정물을 그렸다. 사과라든가, 석고상이라든가. 다만 정물을 그리는 연필이 자꾸 창밖으로 미끄러졌다. 사과의 윤곽 옆에 작게, 달리는 사람의 등이 그려져 있고는 했다. 나는 그것을 지우개로 지웠다. 지우면서, 다음 날 또 그릴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서는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그림은 결재가 반려된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이학년 때 한 번, 미술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림으로 밥 먹는 사람이 일본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나." 질문의 형태를 한 결재였다. 나는 몇 명인지 알아보지 않았고, 학원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대신 연필 한 자루로 그릴 수 있는 것들만 그리게 되었다. 연필 한 자루는 어느 집에나 있고, 어느 서랍에나 숨길 수 있으니까.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면 이렇게 된다.
야구 특기생이고, 등번호는 8이고, 수업 중에는 대개 잔다. 자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새벽 다섯 시부터 아침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급식은 이 인분을 먹는데 삼 분 만에 먹는다. 웃는 얼굴이 어색하다. 어색해서 잘 웃지 않는데, 그래서 어쩌다 웃으면 주변의 공기가 아주 조금 밝아진다. 글러브는 낡았고, 몇 번이나 꿰맨 자국이 있다. 야구부에서 제일 가난하고 제일 잘한다는 것은 전학생의 귀에도 이 주 만에 들어왔다. 그 꿰맨 자국의 배열을 나는 외우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남들이 세지 않는 것을 세고 있는 상태.
말을 걸게 된 계기는 시시했다. 오월의 어느 날, 옆옆 자리의 그 아이가 지우개를 떨어뜨렸고, 지우개는 바닥을 굴러 내 발밑에 왔고, 나는 그것을 주워서 건넸다. 고마워, 라고 그 아이는 말했다. 아침의 외야를 그리던 손으로, 아침의 외야를 달리던 사람의 지우개를 주웠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의 인연이라는 것은 대개 그 정도로 시시한 사무에서 시작된다. 시시하지 않은 것은 그 다음에 온다.
그 다음이란 이런 것이다. 지우개를 주운 날부터 그 아이는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하게 되었다. 어, 라는 한 글자짜리 인사였다. 나는 안녕, 이라고 두 글자로 답했다. 한 글자와 두 글자의 교환. 그것이 우리의 사월과 오월이었다.
오월 말의 어느 아침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아이가 지각 직전에 교실로 뛰어들어 왔는데, 교복 어깨에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라인 가루였다. 아침 연습에서 그라운드에 선을 긋고 왔을 것이다. 앞자리 아이들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세 번쯤 망설이다가,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작게 말했다. "어깨. 가루."
그 아이는 자기 어깨를 보고, 가루를 털고, 이쪽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미즈시마."
내 성을 부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성이라는 것은 이상한 물건이다. 출석부에서 백 번 불려도 아무렇지 않은데,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 실리는 순간 처음 듣는 단어가 된다. 나는 그날 밤 노트에 그 아이의 어깨를 그렸다. 흰 가루까지 그렸다. 지우지 않았다.
전학 온 지 두 달이 지난 유월, 나는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물건을 건넸다.
자판기 앞에서였다. 연습을 끝낸 그 사람이 동전을 넣으려다 말고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십 엔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나는 마침 캔커피를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방금 뽑은 것, 하나는 삼십 분쯤 전에 뽑아서 미지근해진 것.
왜 두 개를 가지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삼십 분 전에 하나를 뽑아 놓고, 건넬 용기가 없어서 들고만 있다가, 목이 말라서 내 것을 하나 더 뽑으러 온 참이었다. 계획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어긋나고, 어긋난 계획이 가끔 계획보다 나은 결과를 만든다.
나는 미지근한 쪽을 건넸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뜨거운 쪽을 주면 됐을 것을. 그러나 그 삼십 분 동안 내 손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뜨거움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열여덟이란 그런 나이다. 그 사람은 미지근한 커피를 받아 들고, 어색하게 웃고, 고마워, 라고 말했다. 두 번째의 고마워였다. 나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 문장은 도중에 접혔다. 무엇이 접혔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접힌 것들의 문제는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접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 사람은 캔을 단숨에 비우고, 빈 캔을 쓰레기통에 정확히 던져 넣고, 연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자판기 앞에 서서 내 커피를 마셨다. 방금 뽑은 뜨거운 커피였는데, 이상하게 미지근한 쪽이 마시고 싶었다.
칠월의 어느 저녁, 나는 크로키북을 들고 강변에 나가 있었다. 흐르는 물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물이라는 것은 그리기 시작하면 이미 다른 물이 되어 있어서, 나는 몇 번이고 실패하고 있었다. 그때 하류 쪽에서 그 사람이 걸어왔다. 연습이 없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내 옆에 서더니, 강을 향해 돌을 던졌다. 물수제비였다. 돌은 다섯 번 튀고 가라앉았다.
"야구는 왜 해?"
내가 물었다. 별생각 없이 나온 질문이었다. 그림은 왜 그리느냐는 질문을 평생 받아 온 인간의, 일종의 반사였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두 번째 돌을 고르다가 멈췄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말했다.
"……공이 떠 있는 동안은, 세상이 단순해져."
돌이 날아갔다. 네 번 튀었다.
"공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사람보다, 쉬워."
나는 그 말이 야구 이야기인 줄 알았다.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제출한, 가장 긴 자기소개였다는 것을. 사람의 세계가 어렵다는 고백이었고, 그 어려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장소가 공 아래라는 지도였다는 것을.
그때 강 상류 쪽에서 리틀야구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헬멧이 큰 꼬마 하나가 배트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목표는 고시엔이다아—. 아이들이 웃었고, 그 사람도 잠깐 웃었다. 나는 물었다. 아사쿠라도? 노리는 거야?
"……노리는 게 아니라, 꼭 갈 거야. 고시엔."
노리는 게 아니라 꼭 간다. 나는 그 문법을 오래 생각했다. 목표와 약속의 차이였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 고시엔은 과녁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낙하지점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 사람의 옆에 서 있으면 나도 낙하지점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은 대개, 이미 늦은 뒤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이 물었다. "그림은 왜 그려?"
되돌아온 질문이었다. 나는 준비된 대답이 없었다. 평생 받아 온 질문의 화자는 언제나 그리지 말라는 쪽이었으므로, 나의 대답은 언제나 방어였다. 그리면 안 되나요, 폐 안 끼치는데요. 그러나 그 사람의 질문에는 채점표가 없었다. 그냥 알고 싶어서 묻는 얼굴이었다. 나는 강을 보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 보려고 했다.
"……그리고 있는 동안은, 안 없어지니까."
말해 놓고 나 자신이 놀랐다. 그런 문장이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다. 그 사람은 알겠다는 얼굴도, 모르겠다는 얼굴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천천히.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강변을 걸었다. 침묵이 편한 상대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 저녁에 배웠다.
문화제라든가, 그런 것도 있었다.
이 학교의 문화제는 초여름에 열렸다. 유월 말의 문화제에서, 체육관 무대에 같은 학년의 남자애가 기타를 들고 올라갔다. 후지사와라는 성의, 얼굴이 하얀 아이였다. 자작곡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서 '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드물었으므로, 그 애는 조금 유명했다.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후렴 직전에 한 번 뚝 끊기는 이상한 구성이었는데, 미완성이라서 그렇다고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미완성인 채로 무대에 올라오는 용기에 대해서 나는 잠깐 생각했다. 나의 스케치북은 완성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물건이었으므로.
노래가 끝나고 그 애가 무대 위에서 잠깐 이쪽을 본 것 같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나는 그 시간에도 스케치북에 다른 것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제의 인파 속에서도 그릴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사람은 야구부 노점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굽고 있었고, 굽는 자세가 수비 자세와 똑같아서, 나는 웃으면서 그렸다.
후지사와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훨씬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그 애의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다. 좋아한다는 것은 남들이 세지 않는 것을 세는 상태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다. 나는 그 문화제에서 누군가에게 세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는 데 이십팔 년이 걸렸다.
— 4화 끝 —
あの人をはじめて見た日のことを、先に話しておいたほうがいいと思う。
十八の四月、転校初日の朝だった。父の転勤がわたしたちをこの町に降ろした。辞令が来たのが二月で、引っ越しが三月で、わたしの意見が聞かれたことは一度もなかった。うちでは父の言葉は質問ではなく決裁だった。卒業まで一年という時期の転校というのは、できあがった建物に最後にはめ込む煉瓦のようなもので、わたしはどこにも力を入れない方法をあらかじめ練習していた。友達は作らない。名前は覚えさせない。一年後に誰も泣かない程度の存在感で過ごす。それが転校四回目の人間の生き延び方だった。
担任を待つ空白の時間に耐えられず、校舎の裏を歩いていた。見知らぬ制服、見知らぬ通学路、見知らぬ町。ただ、見知らぬということ自体は見知らぬものではなかった。わたしは決裁済みの書類のような顔で歩いていた。
グラウンドの隅、外野と呼ばれる緑の一角に、男の子がひとり立っていた。
朝礼が始まる前だというのにユニフォームを着て、ひとりで、誰も打たないボールを待つように空を見ていた。やがてどこからかボールが上がった — あとで知ったが、フェンスの向こうのグラウンドの朝練で誰かが打ち上げたファウルフライだった — そしてあの子は走り出した。背を向け、落下地点へ、一寸のためらいもなく。
人はあんなふうに走れるのか、とわたしは思った。
目的地を疑わない走り方だった。わたしの人生にはない種類のものだった。わたしはいつも落下地点を知らなかった。自分がどこに落ちるかは父の決裁欄に書かれていて、わたしはそれを背中に感じながら歩く人間だった。
彼はボールを捕った。フェンスの手前で、宙に浮いたまま。
着地したあの子はボールをしばらく見つめると、フェンスの向こうへ軽く投げ返し、何事もなかったかのようにまた空を見上げた。拍手も観客もない完璧な捕球だった。誰も見ていないところで完璧な動作をする人間を、私はそのとき初めて見た。いや — 誰も見てい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ひとりが見ていた。私が。その事実をあの子は知らず、知らないということが不思議に重要だった。
一時間ほどして、わたしは教室の前に立ち、自己紹介というものをした。
水島涼子です、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十文字ほどの紹介だった。転校四回目ともなると、自己紹介はそのくらいまで圧縮される。教室がざわめいた。四月に来る転校生は珍しく、高三の四月に来る転校生はもっと珍しいからだ。どこから来たんだって。東京のほうだって。なんで今ごろ。そんなささやきが波のように過ぎていくのを待ちながら、わたしは教室をぐるりと見回した。
窓際のいちばん後ろの席で、男の子が眠っていた。
朝の彼だった。ユニフォームの代わりに学生服を着て、机に突っ伏して、世界でいちばん真面目に眠っていた。紹介が終わるまで、一度も顔を上げなかった。
おかしな話だが、わたしはそれがありがたかった。転校生を見ない、ただひとりの人間。あの教室でわたしを計量しない唯一の視線——正確には、視線の不在。わたしは彼のふたつ隣の席に座ることになり、その夜、ノートの隅に朝のあの場面を描いた。鉛筆で、誰にも見せるつもりもなく。それが最初の一枚だった。
それから一年のあいだに、わたしは同じ人を何百回も描くことになる。何百回も描くとわかることがある。鉛筆は目より正直だということ。目は好きなものを平気で素通りできるけれど、鉛筆は好きなものの前で必ず遅くなる。
転校して二週目に、わたしは美術室を発見した。放課後の美術室はたいてい空いていて、西向きの窓から午後の光がまるごと入ってきて、絵の具とテレピン油の匂いがした。その匂いを嗅ぐと、わたしは不思議と息が深くなった。家では浅く吸っていた息だった。
美術部は部員が四人だけの名ばかりの部で、美術の先生は半分引退したような静かな老人だった。わたしが毎日来るのを見ても、何も訊かなかった。入部届を出せとも言わなかった。ある日、古いイーゼルをひとつ、窓際に運んでおいてくれただけだ。そこがおまえの場所だ、とも言わずに。大人が子どもにしてやれることのなかで、それより上等なものを、わたしはあまり知らない。
窓際のイーゼルからはグラウンドが見えた。正確には、外野が見えた。
その春のあいだじゅう、わたしはその場所で静物を描いた。林檎だとか、石膏像だとか。ただ、静物を描く鉛筆がしきりに窓の外へ滑っていった。林檎の輪郭の横に小さく、走る人の背中が描かれていたりした。わたしはそれを消しゴムで消した。消しながら、明日また描くことを知っていた。
家では絵の話をしなかった。うちでは、絵は決裁を却下された項目だったからだ。中学二年のとき一度だけ、絵画教室に通いたいと言ったことがある。父は新聞から目を離さずに言った。「絵で飯を食える人間が日本に何人いるか知ってるのか」。質問の形をした決裁だった。わたしは何人いるのか調べず、教室の話を二度と持ち出さず、代わりに鉛筆一本で描けるものだけを描くようになった。鉛筆一本ならどこの家にもあって、どこの引き出しにも隠せるから。
あの人についてわたしが知ったことを目録にすると、こうなる。
野球の特待生で、背番号は8で、授業中はたいてい眠っている。眠るのは怠けているからではなく、朝五時から朝練をしているからだ。給食は二人前を食べるのに、三分で食べ終える。笑った顔がぎこちない。ぎこちないからあまり笑わなくて、だからたまに笑うと、まわりの空気がほんの少し明るくなる。グローブは古びていて、何度も縫い直した跡がある。野球部でいちばん貧乏でいちばんうまい、ということは転校生の耳にも二週間で入ってきた。あの縫い跡の並びを、わたしは覚えていた。好きになるというのは、結局そういうことだ。他人が数えないものを数えている状態。
言葉を交わすきっかけはつまらないものだった。五月のある日、隣の隣の席のあの子が消しゴムを落とし、消しゴムは床を転がって私の足元に来て、私はそれを拾って渡した。ありがとう、とあの子は言った。朝の外野を描いていた手で、朝の外野を走っていた人の消しゴムを拾ったという事実について、私は何も言わなかった。世の中の縁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その程度のつまらない事務から始まる。つまらなくないものは、その次に来る。
そのあととは、こういうことだ。消しゴムを拾った日から、彼はわたしに朝の挨拶をするようになった。おう、という二文字の挨拶だった。わたしは、おはよう、と四文字で答えた。二文字と四文字の交換。それがわたしたちの四月と五月だった。
五月の終わりのある朝には、こんなことがあった。彼が遅刻すれすれで教室に駆け込んできたのだが、学生服の肩に白い粉がついていた。ラインの石灰だった。朝練でグラウンドに線を引いてきたのだろう。前の席の子たちは誰も教えてあげなかった。わたしは三度ほどためらってから、授業が始まる直前に、小さく言った。「肩。粉」
彼は自分の肩を見て、粉を払って、こちらを見た。そして言った。
「……ありがとう。水島」
わたしの苗字を呼んだのは、それが初めてだった。苗字というのは不思議な代物だ。出席簿で百回呼ばれても何ともないのに、ある人の声に載った瞬間、初めて聞く単語になる。その夜、わたしはノートに彼の肩を描いた。白い粉まで描いた。消さなかった。
転校して二か月が過ぎた六月、わたしは初めてあの人に物を渡した。
自動販売機の前でだった。練習を終えたあの人が、小銭を入れかけて、ポケットを探っていた。十円足りないらしかった。わたしはちょうど缶コーヒーを二本持っていた。一本はいま買ったばかりのもの、もう一本は三十分ほど前に買って、ぬるくなったもの。
なぜ二本持っていたのかと訊かれれば、答えは簡単だ。三十分前に一本買っておいて、渡す勇気がなくて持ったままでいて、喉が渇いて自分のぶんをもう一本買いに来たところだった。計画というのはいつもそんなふうに狂って、狂った計画が、ときどき計画よりましな結果を生む。
わたしはぬるいほうを渡した。
ばかみたいな話だ。熱いほうを渡せばよかったのに。けれどその三十分のあいだ、わたしの手の中にあったという事実のほうが、熱さより大事に思えたのだ。十八というのはそういう年齢だ。あの人はぬるいコーヒーを受け取って、ぎこちなく笑って、ありがとう、と言った。二度目のありがとうだった。わたしは何か言おうとした。文章は途中で畳まれた。何を畳んだのかは、もう覚えていない。畳んだものの問題はそこだ。時間が経つと、畳んだという事実だけが残る。
あの人は缶を一息に空けて、空き缶をゴミ箱に正確に投げ入れて、練習に戻っていった。わたしは自動販売機の前に立って、自分のコーヒーを飲んだ。買ったばかりの熱いコーヒーだったのに、不思議と、ぬるいほうが飲みたかった。
七月のある夕方、わたしはクロッキー帳を持って川べりに出ていた。流れる水を描く練習をしていたのだが、水というものは描き始めたときにはもう別の水になっていて、わたしは何度も失敗していた。そこへ、下流のほうからあの人が歩いてきた。練習のない日だったらしい。あの人はわたしの横に立つと、川に向かって石を投げた。水切りだった。石は五回跳ねて沈んだ。
「野球は、どうしてやるの?」
わたしが訊いた。深く考えもせずに出た質問だった。絵はどうして描くのかという質問を一生受けてきた人間の、一種の反射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あの人は二つ目の石を選びかけて、手を止めた。そして、ずいぶん経ってから言った。
「……ボールが浮いてるあいだは、世界が単純になるんだ」
石が飛んだ。四回跳ねた。
「ボールは嘘をつかないから。……人より、簡単だよ」
わたしはそれを野球の話だと思っていた。ずっとあとになってわかった。それはあの人が生涯をかけて提出した、いちばん長い自己紹介だったということが。人の世界は難しいという告白であり、その難しい世界で唯一息のできる場所がボールの下だという、地図だったということが。
そのとき川の上流のほうからリトルリーグの子どもたちがどっと押し寄せてきた。ヘルメットの大きなちびっ子がバットを振り回して叫んだ。目標は甲子園だあ—。子どもたちが笑い、あの人もつかの間笑った。私は訊いた。朝倉も? 狙ってるの?
「……狙うんじゃなくて、絶対に行くんだ。甲子園」
狙うのではなく、絶対に行く。わたしはその文法を長いあいだ考えた。目標と約束の違いだった。あの人の世界では、甲子園は的ではなく、すでに決まった落下地点だった。その日わたしは初めて、この人の横に立っていれば、わたしも落下地点というものを持てるようになるのかもしれない、と思った。危険な考えだった。そして危険な考え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もう手遅れになってから危険だとわかる。
帰り道であの人が訊いた。「絵は、どうして描くの?」
返ってきた質問だった。わたしには用意した答えがなかった。一生受けてきたこの質問の話し手は、いつも描くなという側だったから、わたしの答えはいつも防御だった。描いてはいけませんか、迷惑はかけていません。けれどあの人の質問には採点表がなかった。ただ知りたくて訊く顔だった。わたしは川を見ながら、人生で初めて、その質問に正直に答えてみようとした。
「……描いてるあいだは、なくならないから」
言ってから、自分で驚いた。そんな文章が自分の中にあるとは知らなかった。あの人はわかったという顔も、わからないという顔もせず、ただ二度うなずいた。ゆっくりと。それからわたしたちは何も言わずに川べりを歩いた。沈黙が楽な相手というものがこの世に存在するということを、わたしはその夕方に学んだ。
文化祭とか、そういうものもあった。
この学校の文化祭は初夏に開かれた。六月末の文化祭で、体育館のステージに同学年の男子がギターを持って上がった。藤沢という苗字の、色の白い子だった。自作の曲だと言った。この町で「夢」という単語を口に出す人間は珍しかったから、彼は少し有名だった。歌は悪くなかった。サビの直前で一度ぷつりと切れる妙な構成で、未完成だからだと誰かが笑いながら言った。未完成のままステージに上がる勇気について、わたしはしばらく考えた。わたしのスケッチブックは、完成する前には誰にも見せない代物だったから。
歌が終わって、彼がステージの上から一瞬こちらを見た気がしたが、確かではない。わたしはその時間も、スケッチブックに別のものを描いていたからだ。文化祭の人混みの中でも、描くものはひとつだけだった。あの人は野球部の屋台でフランクフルトを焼いていて、焼く姿勢が守備の姿勢とまったく同じで、わたしは笑いながら描いた。
藤沢という子については、ずっとあとでまた話すことになる。あのときのわたしは、彼の名前さえ正確には知らなかった。好きになるというのは他人が数えないものを数える状態だと前に言ったけれど、裏返すとこうなる。好きではないというのは、数えられていることにさえ気づかない状態だ。あの文化祭で、わたしは誰かに数えられていた。それを知るのに、二十八年かかった。
— 第4話 終 —
I should probably begin with the day I first saw him.
It was an April morning, my first day at the new school; I was eighteen. My father's job transfer had deposited us in this town. The notice came in February, we moved in March, and at no point was my opinion consulted. In our house, my father's word was never a question but a stamped approval. Transferring schools with one year left until graduation is like the last brick forced into a building already finished, so I had rehearsed in advance the art of putting my weight on nothing. Make no friends. Let no one learn your name. Maintain just enough presence that no one would cry a year later. Those were the survival skills of a person on her fourth transfer.
Unable to endure the empty time before homeroom, I was walking behind the school building. An unfamiliar uniform, an unfamiliar route to school, an unfamiliar town. Though unfamiliarity itself was nothing unfamiliar. I walked with the face of a document already approved.
In a corner of the athletic field, in the green zone they call the outfield, a boy was standing alone.
Morning assembly hadn't even begun, and there he was in uniform, alone, looking up at the sky as if waiting for a ball no one had hit. Then, from somewhere, a ball went up — I learned later it was a foul fly someone had hit during morning practice on the field beyond the fence — and the boy started to run. Back turned, toward the landing point, without a moment's hesitation.
So this is how a person can run, I thought.
It was running that never doubted its destination. A kind of thing my life did not contain. I never knew my landing point. Where I would fall was written in my father's approval column, and I was someone who walked feeling it at my back.
He caught the ball. Just short of the fence, suspended in midair.
After landing, the boy peered at the ball for a moment, tossed it lightly back over the fence, and looked up at the sky again as if nothing had happened. A perfect catch, with no applause and no crowd. It was the first time I had seen a human being perform a perfect motion where no one was watching. No — it wasn't that no one was watching. One person was. I was. He didn't know it, and the not-knowing felt strangely important.
An hour or so later, I stood at the front of a classroom and performed what is called a self-introduction.
I'm Mizushima Ryoko. Pleased to meet you. An introduction ten characters long. By your fourth transfer, a self-introduction compresses down to about that. The classroom buzzed. Transfer students in April are rare, and transfer students in April of the final year are rarer still. Where's she from. Tokyo, apparently. Why now. Waiting for the whispers to pass over me like a wave, I looked slowly around the room.
In the back row by the window, a boy was asleep.
It was the boy from that morning. In a school uniform instead of a baseball uniform, slumped over his desk, sleeping more diligently than anyone in the world. Until my introduction was over, he never once raised his head.
It's a strange thing to say, but I was grateful for that. The one human being who did not look at the transfer student. The only gaze in that classroom that did not weigh and measure me — or more precisely, the absence of a gaze. I was given the seat two over from his, and that night I drew the morning's scene in the corner of a notebook. In pencil, with no intention of showing anyone. That was the first page.
Over the following year I would draw the same person hundreds of times. Draw someone hundreds of times and you come to understand certain things. That a pencil is more honest than the eye. The eye can pass over what it loves without giving itself away, but before the thing it loves, a pencil always slows down.
In my second week, I discovered the art room. After school it was usually empty; the afternoon light poured in whole through the west-facing windows, and the room smelled of paint and turpentine. When I breathed that smell, my breath somehow deepened. At home it had always been shallow.
The art club was a club in name only, four members in all, and the art teacher was a quiet old man who seemed half retired. He watched me come every day and asked nothing. Never told me to submit an application form. One day he simply moved an old easel over by the window. Without even saying, that's your place now. Of all the things an adult can do for a child, I know of few better.
From the easel by the window you could see the athletic field. To be exact, you could see the outfield.
All through that spring I sat there drawing still lifes. An apple, a plaster bust. But the pencil that was drawing still lifes kept slipping out the window. Beside the outline of an apple there would appear, in miniature, the back of a running figure. I erased it. And even as I erased it, I knew I would draw it again the next day.
At home I did not speak of drawing. In our house, drawing was an item whose approval had been denied. Once, in my second year of middle school, I said I wanted to attend an art academy. Without lifting his eyes from the newspaper, my father said, "Do you have any idea how many people in Japan feed themselves by painting?" It was an approval-denial in the form of a question. I never looked up how many there were, never raised the subject of lessons again, and instead came to draw only what could be drawn with a single pencil. A single pencil can be found in any house, and hidden in any drawer.
If I made a list of the things I came to know about him, it would go like this.
He was a baseball recruit; his number was 8; he slept through most classes. He slept not because he was lazy but because morning practice began at five. He ate two servings of the school lunch and finished in three minutes. His smile was awkward. Because it was awkward he rarely smiled, and so when he happened to smile, the air around him brightened by some small degree. His glove was worn out, stitched and restitched many times over. That he was the poorest player on the team and the best one reached even a transfer student's ears within two weeks. I had memorized the arrangement of those stitches. That is what liking someone comes down to, in the end. A state of counting what others do not count.
What led us to speak was a trivial thing. One day in May, the boy two seats over dropped his eraser; it rolled across the floor to my feet, and I picked it up and handed it to him. Thanks, he said. About the fact that the hand which had been drawing the morning outfield had just picked up the eraser of the person who ran across it, I said nothing. The world's bonds mostly begin with clerical work of about that caliber. What is not trivial comes after.
And what came after was this. From the day of the eraser, he began greeting me in the morning. Hey — a greeting of one word. Good morning, I would answer, in two. An exchange of one word and two. That was our April and May.
One morning at the end of May, this happened. He came running into the classroom just ahead of the bell, and there was white powder on the shoulder of his uniform. Chalk, from the field lines. He must have been marking the diamond at morning practice. Nobody in the front rows told him. I hesitated about three times, and then, just before class began, said quietly, "Your shoulder. Powder."
He looked at his shoulder, brushed off the powder, and looked over at me. And said,
"...Thanks. Mizushima."
It was the first time he had spoken my family name. A family name is a curious object. It can be called a hundred times off an attendance sheet and mean nothing, but the moment it rides on a certain person's voice, it becomes a word you are hearing for the first time. That night I drew his shoulder in my notebook. I drew the white powder too. I did not erase it.
In June, two months after I transferred, I handed him something for the first time.
It was at the vending machine. He had finished practice and was about to feed in his coins when he stopped and began digging through his pockets. He was ten yen short, it seemed. As it happened, I was holding two cans of coffee. One I had just bought; the other I had bought some thirty minutes earlier, and it had gone lukewarm.
If you ask why I was holding two, the answer is simple. I had bought one thirty minutes before, lacked the courage to hand it over, stood there holding it, got thirsty, and had come to buy another for myself. Plans always go wrong in exactly that way, and a plan gone wrong sometimes produces a better result than the plan.
I handed him the lukewarm one.
It's a foolish story. I could simply have given him the hot one. But the fact that it had spent those thirty minutes in my hand seemed to matter more than its temperature. Eighteen is that kind of age. He took the lukewarm coffee, smiled awkwardly, and said thanks. The second thanks. I tried to say something. The sentence folded partway through. What was folded, I no longer remember. That is the trouble with folded things. Time passes, and only the fact of the folding remains.
He drained the can in one go, tossed the empty into the trash bin with perfect accuracy, and went back to practice. I stood at the vending machine and drank my own coffee. It was hot, just bought — and yet, strangely, it was the lukewarm one I wanted.
One evening in July, I was out on the riverbank with my sketchbook. I was practicing drawing running water, but water, by the time you begin to draw it, is already different water, and I was failing over and over. Then he came walking up from downstream. A day off from practice, apparently. He stopped beside me and threw a stone at the river. Skipping stones. It skipped five times and sank.
"Why do you play baseball?"
I was the one who asked. The question came out without much thought. Perhaps it was a kind of reflex, from a person who had spent her whole life being asked why she drew.
He was choosing his second stone, and stopped. And after a long while he said,
"...While the ball's in the air, the world gets simple."
The stone flew. It skipped four times.
"A ball never lies. ...It's easier than people."
I took it for talk about baseball. Only much later did I understand. That it was the longest self-introduction he would submit in his whole life. That it was a confession that the world of people was difficult, and a map showing the one place in that difficult world where he could breathe: beneath a ball.
Just then a crowd of Little League kids came pouring down from upstream. One small boy in an oversized helmet swung his bat and shouted: Koshien or bust! The kids laughed, and for a moment he laughed too. I asked: You too, Asakura? Are you aiming for it?
"...Not aiming. I'm going. Koshien."
Not aiming — going. I thought about that grammar for a long time. It was the difference between a goal and a promise. In his world, Koshien was not a target but a landing point already fixed. That day, for the first time, I thought that if I stood beside this person, I too might come to have a landing point of my own. It was a dangerous thought. And dangerous thoughts, as a rule, reveal their danger only after it is already too late.
On the way back, he asked, "Why do you draw?"
The question had come back around to me. I had no answer prepared. All my life, the people asking that question had been the ones telling me not to draw, so my answers had always been defenses. Am I not allowed to? I'm not bothering anyone. But his question carried no grading sheet. His was simply the face of someone asking because he wanted to know. Looking at the river, I trie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to answer the question honestly.
"...While I'm drawing it, it doesn't disappear."
Having said it, I surprised myself. I hadn't known such a sentence was in me. He made neither an I-understand face nor an I-don't face; he just nodded, twice. Slowly. And then we walked along the riverbank saying nothing. That there exist people with whom silence is easy — that is what I learned that evening.
There was also the school festival, things like that.
This school held its festival in early summer. At the festival in late June, a boy from our year got up on the gymnasium stage with a guitar. A pale-faced boy whose family name was Fujisawa. An original song, he said. People who spoke the word "dream" out loud were rare in this town, so he was a little famous. The song wasn't bad. It had an odd structure, breaking off abruptly just before the chorus, and someone said, laughing, that this was because it was unfinished. I thought for a moment about the courage it took to stand on a stage unfinished. My sketchbook was a thing I showed no one before it was complete.
When the song ended, I had the impression that he looked my way from the stage for a moment, but I can't be sure. Because even then, I was drawing something else in my sketchbook. Even in the festival crowd, there was only one thing to draw. He was grilling frankfurters at the baseball team's stall, and his grilling stance was exactly his fielding stance, and I laughed as I drew it.
About the boy called Fujisawa, I will come to speak again, much later. At the time, I did not even know his name for certain. I said earlier that liking someone is a state of counting what others do not count; turned inside out, it becomes this. Not liking someone is a state of not even knowing that you are being counted. At that festival, someone was counting me. It took me twenty-eight years to learn it.
— End of Ep. 4 —
열여덟의 팔월에 대해서는, 짧게 말할 수 없다. 짧게 말하려고 삼십 년 가까이 연습했지만 실패했으므로, 이번에는 길게 말해 보겠다.
여름 축제는 팔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다. 마을 전체가 강변에 모이는 밤이다.
약속을 잡은 것은 축제 사흘 전, 방과 후의 미술실에서였다. 그 사람은 창틀에 걸터앉아 붓 씻는 나를 한참 보다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숙제를 제출하는 얼굴로 말했다. 축제……갈 거야? 나는 간다고 했다. 같이, 라는 단어는 어느 쪽도 발음하지 않았다. 발음하지 않아도 이미 문장 안에 들어 있는 단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유카타가 없었다. 이사 올 때 그런 것까지 챙길 생각을 한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었다. 그런데 축제 전날 밤, 어머니가 말없이 옷장 깊은 곳에서 자기 것을 꺼내 왔다. 옅은 물빛 바탕에 흰 꽃이 흐드러지고, 남빛 잎이 세로 줄무늬 사이로 흩어지는 유카타였다. 허리띠는 연분홍. 처녀 때 입던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도장이 닿지 않는 물건이 그 집에도 하나쯤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매듭 매는 법을 두 번 보여 주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그 집 여자들의 응원 방식이었다.
사과엿 가게 앞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짙은 감색 유카타 차림이었다. 소매가 조금 짧았다. 마지막으로 입은 해로부터 키가 자란 모양이었다. 야구부 티셔츠가 아닌 그 사람은 어딘가 낯설었고, 낯선 채로 — 눈이 부셨다. 그 사람도 나의 물빛 유카타를 잠깐 보았다. 잘 어울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반 박자 늦게 시선을 거두는 방식으로 그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사람 많은 데는 좀."
"나도."
그것이 전부였다. 그 여섯 글자의 합의로 우리는 인파를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노점의 불빛이 뜸해지고, 북소리가 등 뒤로 밀려나고, 언덕길이 시작됐다. 언덕을 오르자는 말은 어느 쪽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발이 같은 방향으로 갔다. 몸이 먼저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날 밤 처음 알았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의 불빛이 아래에 깔려 있었고, 강이 그 불빛을 반쯤 접어서 되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풀 위에 앉았다. 적당한 간격이라는 것은 어른의 단어다. 열여덟의 간격은 적당하지 않다. 오십 센티미터가 오 센티미터처럼 뜨겁거나, 오 센티미터가 오십 센티미터처럼 멀다.
"곧 시작한다." 그 사람이 말했다.
이 마을의 불꽃은 매년 정확히 백십육 발이다. 왜 백십육 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공회 예산이라는 설과, 초대 회장의 나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든 마을 사람들은 전부 그 숫자를 알고 있어서, 종반에 가까워지면 다들 마음속으로 남은 발수를 헤아리며 숨을 고른다. 전학생인 나도 그 숫자만은 알고 있었다. 축제 전단의 제일 큰 활자가 그것이었으니까.
불꽃이 올랐다.
첫 발이 오르는 순간의 소리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쿵, 하고 가슴의 빈 곳을 두드리는 소리. 그 사람은 하늘을 보고 있었고, 나는 하늘과 그 사람을 반반으로 보고 있었다. 불꽃의 빛이 그 사람의 옆얼굴에 붉게, 푸르게, 금색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는 사람의 눈은 그런 것을 놓치지 않는다. 놓치지 않아서, 고장 난다.
나는 세기 시작했다. 불꽃을. 세는 것 말고는 심장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 발, 서른 발, 일흔 발. 화면의 절반은 불꽃이고 절반은 옆얼굴이었다. 백 발이 넘어가면서 나는 알았다. 이 불꽃이 끝나면 우리는 언덕을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면 이 밤은 끝나고, 여름도 곧 끝나고, 졸업하면 이 마을도 끝난다. 모든 것이 끝나는 방향으로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백십사 발째가 올랐다.
그리고 다음 불꽃까지의 어둠 — 그 어둠이 유난히 길었다. 장치의 간격이었는지 운명의 간격이었는지는 모른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의 뺨에 입을 맞췄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계획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세계에 속한 단어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접히기 전에 튀어나와 버린 문장이었다.
백십오 발째가 올랐다.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나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심장이 불꽃보다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 시야의 끝에 느껴졌지만, 나는 돌아볼 수 없었다. 백십육 발째 — 마지막 한 발이 올랐다. 제일 큰 놈이었다. 금색 버드나무가 하늘 전체에 드리워졌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어둠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이 말했다.
"……사귀자."
말줄임표까지 포함해서 네 글자였다. 훗날 나는 그 사람이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그저 그 네 글자가 백십육 발의 불꽃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 대신에. 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은 알았던 모양이다. 옆에서 아주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참고 있던 숨이었다. 백십육 발 분량의.
그날 밤부터 우리는 연인이었다.
연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것들의 목록.
그 사람은 문어보다 오징어를 좋아한다. 자전거를 탈 때 오른발부터 페달을 밟는다.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만 문장이 두 개 이상 이어진다. 새벽 연습 전에 아무도 없는 외야의 잔디를 혼자 한 바퀴 걸어 두는 자기만의 의식이 있다. 시험 기간에는 야구 잡지를 읽는다 — 공부가 아니라 휴식으로. 그리고 내가 그림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끝까지 듣는다. 끝까지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열여덟의 나는 백 번이라도 전자를 고른다.
우리는 사귀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야구부의 규율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결재 때문에. 비밀 연애라는 것은 불편하고, 불편한 만큼 밀도가 높다. 방과 후의 미술실에 그 사람이 연습 전 십오 분을 들르는 것. 강변의 둑길을 자전거 두 대로 나란히 달리는 것. 도시락의 계란말이를 하나 건네는 것. 그 정도의 일들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사건이 아니라 상태. 훗날 어떤 사람이 행복은 상태라서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나는 그 말의 뜻을 열여덟에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한 번, 들킬 뻔한 적이 있다. 시월의 저녁, 미술실에서 나오다가 복도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그 사람은 반 박자 빠르게 세 걸음 물러나 게시판을 보는 척했고, 나는 반 박자 늦게 걸음을 늦췄다. 담임이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웃음을 참느라 복도 끝까지 뛰었다. 그런 저녁의 복도 냄새 같은 것을, 사람은 삼십 년쯤 보관할 수 있다. 냄새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고시엔보다 먼저, 지역예선 결승이 있었다. 칠월 말이었다. 나는 그 경기를 학교 응원석에서 봤다. 삼천 명이 들어찬 지방 구장이었다. 구회말, 마지막 타구가 하늘로 떴을 때, 삼천 명이 동시에 숨을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숨을 멈추는 소리라는 것은 실재한다. 소음이 일제히 사라지는 형태로. 그 정적 속에서 등번호 8이 담장을 향해 달렸고, 뛰어올랐고, 공과 함께 착지했다.
삼천 명의 숨이 한꺼번에 터졌다. 나는 그 순간을 그리지 못했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로만 그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도.
다음 날 아침, 자판기 앞에서 그 사람과 마주쳤다. 축하한다는 말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봤어?"
"봤어."
"……약속, 지켰다."
칠월의 강변에서 한 말을 나는 떠올렸다. 노리는 게 아니라, 꼭 갈 거야. 그 사람의 세계에서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약속이었고, 약속은 지켜졌다. 나는 웃었다. 그 사람도 웃었다. 어색하게, 그래서 진짜로. 그 여름 우리 사이에 있었던 것에 이름이 붙는 것은 이 주 뒤의 언덕에서지만, 이름 없는 것에도 온도는 있다. 그 아침의 자판기 앞은, 분명히 따뜻했다.
고시엔은 팔월이었다.
축제의 일주일 뒤였다. 그러니까 나는 여자친구가 된 지 이 주째에 알프스 스탠드에 앉게 된 것이다. 고시엔 구장의 응원석을 왜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 산비탈처럼 높고 가팔라서란다 — 나는 옆자리의 아주머니에게 배웠다. 야구를 모르는 전학생에게 그날의 모든 것은 외국어였고, 나는 그 외국에 온 이유 하나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들썩였고, 상점가에 현수막이 걸렸고, 전세 버스가 다섯 대 떴다. 나는 세 번째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어른들은 그 사람의 이름을 연호했고, 나는 창밖을 보며 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창유리에 비친 내 입꼬리를 단속해야 했다. 비밀 연애의 기술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표정의 관리다.
한여름의 알프스 스탠드는 프라이팬 같았고, 응원단의 함성은 귀가 아니라 갈비뼈로 들어왔다. 팔천 명분의 소음 한가운데에서도 나는 외야의 8번만 보고 있었다. 소음이라는 것은 신기한 물건이다. 충분히 커지면, 오히려 한 사람만 남기고 전부 지워진다.
팀은 이회전에서 졌다. 상대는 우승 후보였고, 점수는 일 대 사였다. 시합이 끝나고 선수들이 홈플레이트 앞에 정렬해서 고개를 숙였을 때, 알프스 스탠드의 어른들은 울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외야에서 모자를 벗고 서 있는 그 사람이, 지고도 등이 굽지 않은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등은 지는 법을 아직 모르는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부러웠고, 아주 조금, 무서웠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크로키북을 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기억만으로, 정렬해서 고개 숙인 아홉 명과 그 가운데 굽지 않은 등 하나를 그렸다.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들여다보고 말했다. 어머, 잘 그린다. 얘. 나는 고맙습니다, 라고 답하고 크로키북을 덮었다. 잘 그린다는 말을 들은 것이 몇 년 만인지 계산하다가 그만두었다.
가을과 겨울은 빨랐다.
그 사람에게는 대학들의 이야기가 오고 있었다. 도쿄의 명문대 야구부, 특기생, 장학금. 프로 지명 확실이라는 활자가 지역 신문에 실렸다. 나에게는 진로 상담이 오고 있었다. 담임은 미대라는 단어를 꺼냈고, 나는 그 단어를 집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서재 앞까지 세 번 갔고, 노크까지 한 것이 한 번이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연습한 문장은 접혔고, 나온 것은 "……아니에요"였다.
결재란에 적힌 것은 취직이었다. 도쿄의 회사. 상업고 출신도 아닌 보통과 여학생을 받아 주는 사무직이 그 시절에는 있었다. 아버지의 지인의 회사였다. 도장은 그렇게, 인맥의 잉크로 찍혔다.
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한 것은 겨울의 미술실에서였다. 그 사람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림은?"
"주말에 그리지, 뭐."
"미대는?"
"……우리 집엔 그런 결재란 없어."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당연하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 가고 싶은 곳은 가는 곳이었다. 노리는 게 아니라 꼭 가는 곳. 나는 그 얼굴이 부러워서 조금 심술궂게 말했다. 다 너 같은 줄 알아? 그 사람은 정말로 미안한 얼굴이 되었고, 나는 곧바로 후회했고,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어색하게 헤어졌다. 사귀고 나서 첫 번째의, 아주 작은 금이었다. 금이라는 것은 대개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사소한 채로 남는 금도 있고, 아닌 금도 있다.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은 자판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캔커피를 두 개 들고. 하나를 건네는데, 미지근했다.
"……일부러 삼십 분 전에 뽑았어."
나는 웃어 버렸다. 접히기 전에 튀어나오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웃음이다. 금은 그렇게 메워졌다. 그 사람의 사과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말이 아니라 온도로 오는 것.
그해 겨울, 나는 그 사람을 그린 그림으로 현(縣)의 미술 공모전에 입선했다.
'외야의 소년'이라는 제목이었다. 담장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등번호 8. 전학 첫날 아침에 본 그 장면을, 반년 동안 수백 번의 데생으로 다듬은 끝에 완성한 그림이었다. 캔버스 속의 그 아이는 영원히 공중에 있다. 낙하도, 충돌도, 그 그림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훗날 나는 그 그림을 그렸을 때의 나를 조금 부러워하게 된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던, 열여덟의 나를.
출품을 권한 것은 미술 선생님이었다. 나는 집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망설였고, 선생님은 딱 한마디 했다. "상장은 학교로 온다." 그 한마디의 뜻을 이해하고 나는 출품했다. 입선 통지가 왔을 때,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미술실 서랍 하나를 비워 주었다. 상장은 그 서랍에 들어갔다. 어른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그보다 나은 것을 나는 별로 알지 못한다.
그 사람에게는 입선을 말하지 않았다.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 제목이 다 말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귀는 사이에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럽다. 아니 — 사귀는 사이라서 부끄러운 것이 있다. 그 사람이 그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은 훨씬 나중, 태평양을 건넌 뒤의 일이다.
겨울이 끝나고, 졸업식이 왔다.
그날 아침, 복도에서 후지사와라는 그 애가 나를 불러 세웠다. 기타 피크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줄게,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나는 왜 나에게 기타 피크를 주는지 묻지 않았다. 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여덟의 나에게 세상의 질문은 하나뿐이었고, 그 질문은 식이 끝나면 교문 밖 자전거 보관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크는 필통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다니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훨씬 나중에, 나는 그 피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야기의 훨씬 뒤에서 할 이야기다.
상경하는 날, 우리는 같은 열차의 같은 칸에 나란히 앉았다.
그 사람은 도쿄의 대학으로, 나는 도쿄의 회사 기숙사로. 행선지의 이름은 달랐지만 열차는 같았다. 두 시간 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이 시골에서 교외로, 교외에서 도시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도중에 그 사람이 한 번 물었다. "자?" 나는 자지 않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그 사람이 편하라고 어깨를 고쳐 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깨가 일 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다.
행복이라는 것은 대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불행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나는 것은 그 둘이 교체되는 순간뿐이다.
도쿄역의 플랫폼에서 우리는 각자의 노선으로 갈라졌다. 헤어지기 전에 그 사람이 말했다. "토요일에. 진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마다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우리는 있었다. 열여덟의 끝은 그러니까, 끝이 아니라 개통이었다. 같은 도시에, 두 사람. 무엇이 잘못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를 세상은 알고 있었고, 서두르지 않았다.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의 제일 아픈 자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를 건드리는 날짜만은 천천히 고른다.
— 5화 끝 —
十八の八月について、短く語ることはできない。短く語ろうと三十年近く練習してきて失敗したのだから、今度は長く語ってみようと思う。
夏祭りは八月第二週の土曜日だった。町じゅうが川辺に集まる夜だ。
約束を交わしたのは祭りの三日前、放課後の美術室でだった。あの人は窓枠に腰かけて、筆を洗う私をしばらく見ていてから、世界でいちばん難しい宿題を提出する顔で言った。祭り……行く? 私は行くと答えた。一緒に、という単語はどちらも発音しなかった。発音しなくても、すでに文章の中に入っている単語というものがある。
私は浴衣を持っていなかった。引っ越しのとき、そんなものまで持ってこようと考えた人間は、うちにはいなかった。ところが祭りの前夜、母が黙って箪笥の奥から自分のものを出してきた。淡い水色の地に白い花が咲きこぼれ、縦縞のあいだに藍色の葉が散る浴衣だった。帯は薄紅。娘のころに着ていたものだという。父の判の届かない品物が、あの家にもひとつくらいはあったのだ。母は帯の結び方を二度見せて、何も訊かなかった。訊かないことが、あの家の女たちの応援のやり方だった。
りんご飴の屋台の前で、あの人と会った。
あの人は濃紺の浴衣姿だった。袖が少し短かった。最後に着た年から背が伸びたらしい。野球部のTシャツではないあの人はどこか見慣れなくて、見慣れないまま — まぶしかった。あの人も私の水色の浴衣をちらりと見た。似合うとは言わなかった。代わりに、半拍遅れて視線を外すというやり方でその言葉を言った。そしてあの人が言った。
「……人の多いとこは、ちょっと」
「私も」
それが全部だった。そのわずか数文字の合意で、私たちは人波に逆らって歩き出した。屋台の明かりがまばらになり、太鼓の音が背中の後ろへ押しやられ、坂道が始まった。坂を上ろうとは、どちらも言わなかった。ただ、足が同じ方向へ進んだ。体が先に動くというのがどういうことか、私はあの夜、初めて知った。
丘の上には誰もいなかった。
町の明かりが眼下に敷きつめられ、川がその明かりを半分に畳んで照り返していた。私たちは適当な間隔を空けて草の上に座った。適当な間隔というのは大人の言葉だ。十八の間隔は適当ではない。五十センチが五センチのように熱いか、五センチが五十センチのように遠い。
「もうすぐ始まる」とあの人が言った。
この町の花火は毎年きっかり百十六発だ。なぜ百十六発なのかは誰も知らない。商工会の予算だという説と、初代会長の歳だという説がある。どちらにせよ町の人間はみなその数字を知っていて、終盤が近づくと誰もが心の中で残りの発数を数えながら息を整える。転校生の私も、その数字だけは知っていた。祭りのチラシのいちばん大きな活字がそれだったから。
花火が上がった。
最初の一発が上がった瞬間の音を、私は今でも覚えている。どん、と胸の空洞を叩く音。あの人は空を見ていて、私は空とあの人を半分ずつ見ていた。花火の光があの人の横顔を赤く、青く、金色に染めては消えるのを繰り返した。絵を描く人間の目は、そういうものを見逃さない。見逃さないから、壊れる。
私は数え始めた。花火を。数えるほかに心臓を鎮める方法がなかったからだ。十発、三十発、七十発。視界の半分は花火で、半分は横顔だった。百発を超えたあたりで私は悟った。この花火が終われば私たちは丘を下りなければならず、下りればこの夜は終わり、夏もじきに終わり、卒業すればこの町も終わる。すべてが終わる方向へだけ、時間は流れていた。
百十四発目が上がった。
そして次の花火までの闇 — その闇がやけに長かった。仕掛けの間隔だったのか、運命の間隔だったのかはわからない。その闇の中で、私はあの人の頬に口づけた。
計画したわけではなかった。計画というのは父の世界に属する言葉だ。それは私の人生で数少ない、畳まれる前に飛び出してしまった文章だった。
百十五発目が上がった。世界がまた明るくなった。私は正面を見ていた。心臓が花火より大きな音を立てていた。あの人がこちらを見ているのが視界の端に感じられたけれど、私は振り向けなかった。百十六発目 — 最後の一発が上がった。いちばん大きなやつだった。金色の柳が空いっぱいに枝垂れて、ゆっくりと、とてもゆっくりと消えていった。
闇が戻ってきたとき、あの人が言った。
「……付き合おう」
省略記号まで入れて六文字だった。のちに私は、あの人が感情がこもるほど言葉が短くなる人間だと知ることになるが、そのときはただ、その六文字が百十六発の花火より大きく聞こえた。私はうなずいた。声の代わりに。闇の中で見えなかったはずなのに、あの人にはわかったらしい。隣で、とても長く息を吐く音が聞こえた。こらえていた息だった。百十六発分の。
その夜から、私たちは恋人だった。
恋人になってから知ったことのリスト。
あの人は蛸より烏賊が好きだ。自転車に乗るとき右足からペダルを踏む。母親の話をするときだけ文章が二つ以上つながる。夜明けの練習の前に、誰もいない外野の芝をひとりで一周歩いておくという自分だけの儀式がある。試験期間には野球雑誌を読む — 勉強ではなく休息として。そして私が絵の話をすると、何の話かわからないという顔で最後まで聞く。最後まで聞くことと理解することのどちらかを選べと言われたら、十八の私は百回でも前者を選ぶ。
付き合っていることは誰にも言わなかった。あの人は野球部の規律のため、私は父の決裁のため。秘密の恋というものは不便で、不便なぶんだけ密度が高い。放課後の美術室に、あの人が練習前の十五分だけ寄ること。川辺の土手道を自転車二台で並んで走ること。弁当の卵焼きをひとつ渡すこと。その程度のことが一日の中心になった。事件ではなく、状態。のちにある人が、幸福は状態だから写真には写らないと言うのを聞くことになるが、私はその言葉の意味を十八ですでに知っていたわけだ。
一度、ばれそうになったことがある。十月の夕方、美術室を出たところで、廊下で担任と出くわした。あの人は半拍早く三歩下がって掲示板を見るふりをし、私は半拍遅れて歩調をゆるめた。担任が通り過ぎてから、私たちは笑いをこらえて廊下の端まで走った。そんな夕方の廊下の匂いのようなものを、人は三十年ほど保管できる。匂いに賞味期限はない。
甲子園より先に、地方予選の決勝があった。七月の末だった。私はその試合を学校の応援席で見た。三千人の入った地方球場だった。九回裏、最後の打球が空に上がったとき、三千人が同時に息を止める音を聞いた。息を止める音というものは実在する。騒音がいっせいに消えるという形で。その静寂の中で背番号8がフェンスに向かって走り、跳び、ボールとともに着地した。
三千人の息がいっぺんに弾けた。私はその瞬間を描けなかった。手が震えたからではなく、目を閉じていたからだ。音だけであの瞬間を覚えている。今でも。
翌朝、自販機の前であの人と出くわした。おめでとうという言葉を用意していた私に、あの人が先に言った。
「見た?」
「見た」
「……約束、守った」
七月の川辺で言われた言葉を私は思い出した。狙うんじゃなくて、必ず行く。あの人の世界でそれは目標ではなく約束であり、約束は守られた。私は笑った。あの人も笑った。ぎこちなく、だから本物だった。あの夏、私たちのあいだにあったものに名前がつくのは二週間後の丘の上でのことだが、名前のないものにも温度はある。あの朝の自販機の前は、確かに温かかった。
甲子園は八月だった。
祭りの一週間後だった。つまり私は、恋人になって二週目にアルプススタンドに座ることになったのだ。甲子園球場の応援席をなぜアルプスと呼ぶのか — 山の斜面のように高くて急だからだそうだ — 私は隣の席のおばさんに教わった。野球を知らない転校生にとってその日のすべては外国語で、私はその外国に来た理由をひとつだけ正確に知っていた。町じゅうが沸き立ち、商店街に横断幕が掛かり、貸切バスが五台出た。私は三台目のバスに乗った。バスの中で大人たちはあの人の名前を連呼し、私は窓の外を見ながら、その名前が呼ばれるたびに窓ガラスに映る自分の口元を取り締ま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秘密の恋の技術でいちばん難しいのは、表情の管理だ。
真夏のアルプススタンドはフライパンのようで、応援団の歓声は耳ではなく肋骨から入ってきた。八千人分の騒音のただ中でも、私は外野の8番だけを見ていた。騒音というのは不思議なものだ。十分に大きくなると、かえって一人だけを残して、全部を消してしまう。
チームは二回戦で負けた。相手は優勝候補で、点数は一対四だった。試合が終わり、選手たちがホームプレートの前に整列して頭を下げたとき、アルプススタンドの大人たちは泣いていた。私は泣かなかった。外野で帽子を脱いで立っているあの人の、負けてもなお曲がらない背中を見ていたからだ。あの背中は負け方をまだ知らないんだな、と私は思った。それが羨ましくて、ほんの少し、怖かった。
帰りのバスで、私はクロッキー帳を開いた。揺れるバスの中で、記憶だけを頼りに、整列して頭を下げる九人と、その真ん中の曲がらない背中ひとつを描いた。隣の席のおばさんが覗き込んで言った。あら、上手ねえ、あなた。私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答えてクロッキー帳を閉じた。上手だと言われたのが何年ぶりか数えかけて、やめた。
秋と冬は早かった。
あの人には大学からの話が来ていた。東京の名門大学の野球部、スポーツ特待、奨学金。プロ指名確実という活字が地元の新聞に載った。私には進路相談が来ていた。担任は美大という単語を口にし、私はその単語を家まで持ち帰れなかった。父の書斎の前まで三度行き、ノックまでしたのが一度。扉が開いて父に何の用だと訊かれたとき、練習した文章は畳まれ、出てきたのは「……何でもありません」だった。
決裁欄に書かれたのは就職だった。東京の会社。商業高校出身でもない普通科の女子生徒を受け入れてくれる事務職が、あの時代にはあった。父の知人の会社だった。判はそうして、人脈というインクで捺された。
あの人にその話をしたのは、冬の美術室でだった。あの人は長いあいだ黙っていて、それから訊いた。
「……絵は?」
「週末に描くわよ、別に」
「美大は?」
「……うちに、そんな決裁欄はないの」
あの人は理解できないという顔をした。当然だ。あの人の世界では、行きたい場所は行く場所だった。狙うのではなく、必ず行く場所。私はその顔が羨ましくて、少し意地悪く言った。みんなあんたみたいだと思ってるの? あの人は本当に申し訳なさそうな顔になり、私はすぐに後悔し、その日私たちは初めてぎこちなく別れた。付き合ってから最初の、ごく小さなひびだった。ひび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そんなふうに些細に始まる。そして些細なまま残るひびもあれば、そうでないひびもある。
翌朝、あの人は自販機の前で私を待っていた。缶コーヒーを二つ持って。ひとつを手渡されると、ぬるかった。
「……わざと三十分前に買っといた」
私は笑ってしまった。畳まれる前に飛び出してしまう数少ないもののひとつが、笑いだ。ひびはそうして埋まった。あの人の謝り方はいつもそんなふうだった。言葉ではなく、温度で来るもの。
その冬、私はあの人を描いた絵で県の美術公募展に入選した。
『外野の少年』という題だった。フェンスの前で宙に浮かぶ背番号8。転校初日の朝に見たあの場面を、半年のあいだ何百枚ものデッサンで磨き上げた末に完成させた絵だった。カンバスの中のあの子は、永遠に宙にいる。落下も、衝突も、あの絵の中では起こらない。のちに私は、あの絵を描いたときの自分を少し羨むようになる。時間を止められると信じていた、十八の私を。
出品を勧めたのは美術の先生だった。私は家に知られるのが怖くてためらい、先生はひとことだけ言った。「賞状は学校に届く」。そのひとことの意味を理解して、私は出品した。入選の通知が来たとき、先生は何も訊かずに、美術室の引き出しをひとつ空けてくれた。賞状はその引き出しに収まった。大人が子どもにしてやれることの中で、あれ以上のものを私はあまり知らない。
あの人には入選のことを言わなかった。絵のモデルが誰なのか、題名が全部言ってしまっていたからだ。付き合っていても、恥ずかしいものは恥ずかしい。いや — 付き合っているからこそ、恥ずかしいものがある。あの人があの絵の存在を知るのはずっと後、太平洋を渡ってからのことだ。
冬が終わり、卒業式が来た。
あの日の朝、廊下で藤沢というあの子に呼び止められた。ギターのピックをひとつ差し出された。これ、あげる、という短い言葉とともに。私はなぜ私にギターのピックをくれるのか訊かなかった。訊くべき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けれど十八の私にとって世界の問いはひとつだけで、その問いは式が終われば校門の外の駐輪場で私を待っていた。ピックは筆箱の底で何年か転がったあと、どこかへ消えた。
ずっと後になって、私はそのピックについてもう一度考えることになる。けれどそれは、この物語のずっと先でする話だ。
上京する日、私たちは同じ列車の同じ車両に並んで座った。
あの人は東京の大学へ、私は東京の会社の寮へ。行き先の名前は違ったが、列車は同じだった。二時間、たいした話はしなかった。あの人の肩にもたれて、窓の外が田舎から郊外へ、郊外から都会へ変わるのを見ていた。途中であの人が一度訊いた。「寝てる?」私は寝ていなかったが、答えなかった。答えれば、あの人が私が楽なようにと肩を座り直す気がしたからだ。私はその肩が一ミリも動かないことを願っていた。
幸福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音を立てない。あとで知ることになるが、不幸も同じだ。音がするのは、その二つが入れ替わる瞬間だけだ。
東京駅のホームで、私たちはそれぞれの路線へ分かれた。別れる前に、あの人が言った。「土曜に。神宮で」。私はうなずいた。週末ごとに会える距離に、私たちはいた。十八の終わりはだから、終わりではなく開通だった。同じ都市に、二人。何がうまくいかないことなど、あるだろうか。
何が間違いうるのかを世界は知っていて、急がなかった。世界というものは、人のいちばん痛い場所を知っていながら、そこに触れる日付だけはゆっくり選ぶのだ。
— 第5話 終 —
About the August I was eighteen, I cannot be brief. I have practiced being brief about it for nearly thirty years and failed, so this time I will try telling it at length.
The summer festival fell on the second Saturday of August. The night the whole town gathers along the river.
We made the promise three days before the festival, in the art room after school. He sat on the windowsill watching me wash my brushes for a long while, and then, with the face of someone turning in the hardest homework in the world, he said: The festival……are you going? I said I was. The word together, neither of us pronounced. There are words that are already inside a sentence whether you pronounce them or not.
I didn't own a yukata. No one in our house had thought to pack such a thing when we moved. But the night before the festival, my mother silently brought out her own from the back of the wardrobe. A yukata of pale water-blue, white flowers in full bloom, indigo leaves scattered between vertical stripes. The sash was a soft pink. She said she had worn it as a girl. So even that house held one thing my father's seal had never touched. My mother showed me twice how to tie the knot, and asked nothing. Not asking was how the women of that house cheered you on.
I met him in front of the candy-apple stall.
He was in a dark navy yukata. The sleeves were a little short. He seemed to have grown since the last year he'd worn it. Not in his baseball team T-shirt, he looked somehow unfamiliar — and, unfamiliar as he was, dazzling. He glanced at my water-blue yukata too. He didn't say it suited me. Instead he said it by taking half a beat too long to look away. And then he said:
"……Not big on crowds."
"Me neither."
That was all. On the strength of that six-word agreement, we began walking against the crowd. The stall lights thinned, the drums fell away behind our backs, and the hill road began. Neither of us said, let's climb the hill. Our feet simply went the same way. What it means for the body to move first — I learned that for the first time that night.
There was no one at the top of the hill.
The lights of the town lay spread out below, and the river folded them in half and gave them back. We sat down on the grass at a reasonable distance. A reasonable distance is a grown-up's term. At eighteen, no distance is reasonable. Fifty centimeters burns like five, or five centimeters is as far away as fifty.
"It'll start soon," he said.
This town's fireworks number exactly one hundred sixteen every year. Why one hundred sixteen, nobody knows. One theory says it's the chamber of commerce budget; another, the age of the chamber's first chairman. Either way, everyone in town knows the number, and as the finale draws near they all catch their breath, counting down the remaining shots in their heads. Even I, the transfer student, knew that one number. It was the biggest type on the festival flyer.
The fireworks went up.
I still remember the sound of the first one rising. A thump, striking the hollow place in the chest. He was watching the sky, and I was watching the sky and him in equal halves. The light of the fireworks dyed his profile red, then blue, then gold, and faded, over and over. The eyes of someone who draws do not miss such things. And because they do not miss them, they break.
I started counting. The fireworks. Counting was the only way I had of quieting my heart. Ten, thirty, seventy. Half the frame was fireworks and half was his profile. Somewhere past a hundred, I understood. When the fireworks ended we would have to go down the hill, and going down meant this night would end, and the summer would soon end, and after graduation this town would end too. Time was flowing only in the direction of endings.
The hundred and fourteenth went up.
And then the dark before the next one — that dark lasted unusually long. Whether it was the interval of the pyrotechnics or the interval of fate, I don't know. In that darkness, I kissed his cheek.
It wasn't planned. Plan is a word that belongs to my father's world. It was one of the few sentences of my life that leapt out before it could be folded.
The hundred and fifteenth went up. The world brightened again. I was facing straight ahead. My heart was making more noise than the fireworks. I could feel, at the edge of my vision, that he was looking at me, but I could not turn. The hundred and sixteenth — the last one — went up. The biggest of them all. A golden willow draped itself across the whole sky and then faded, slowly, very slowly.
When the dark came back, he spoke.
"……Go out with me."
Ellipsis included, it was four words. Later I would learn that he was a person whose sentences grew shorter the more feeling was in them, but at the time those four words simply sounded louder than a hundred and sixteen fireworks. I nodded. In place of a voice. In the dark he couldn't possibly have seen it, but he seemed to know. Beside me I heard a long, long exhale. A breath he had been holding. One hundred and sixteen fireworks' worth.
From that night on, we were together.
A list of things I learned after we became a couple.
He likes squid better than octopus. He starts pedaling with his right foot. Only when he talks about his mother do his sentences run to more than two. He has a private ritual of walking one lap around the empty outfield grass alone before dawn practice. During exams he reads baseball magazines — as rest, not study. And when I talk about drawing, he listens to the end with a face that says he has no idea what I mean. If I had to choose between being heard to the end and being understood, the eighteen-year-old me would choose the former a hundred times over.
We told no one we were seeing each other. He because of the baseball team's discipline, I because of my father's approvals. A secret romance is inconvenient, and dense in proportion to the inconvenience. His stopping by the art room for the fifteen minutes before practice. Riding our two bicycles side by side along the levee path by the river. Handing him one rolled omelet from my lunchbox. Things of that size became the center of a day. Not events — a state. Years later I would hear someone say that happiness is a state, and that is why it never shows up in photographs; it seems I already knew at eighteen what those words meant.
Once, we were nearly found out. An evening in October: coming out of the art room, I met our homeroom teacher in the hallway. Half a beat early, he stepped back three paces and pretended to study the bulletin board; half a beat late, I slowed my steps. After the teacher had passed, we ran to the end of the hallway holding in our laughter. The smell of a hallway on an evening like that — a person can keep such a thing for thirty years or so. Smells have no expiration date.
Before Koshien came the regional final, at the end of July. I watched it from the school's cheering section, in a local stadium packed with three thousand people. In the bottom of the ninth, when the last ball rose into the sky, I heard three thousand people stop breathing at once. The sound of held breath is a real thing. It takes the form of every noise vanishing at once. In that silence, number 8 ran for the fence, leapt, and came down with the ball.
Three thousand breaths burst at once. I could not draw that moment. Not because my hand was shaking, but because my eyes were closed. I remember that moment only as sound. Even now.
The next morning, I ran into him in front of the vending machine. I had a congratulations ready, but he spoke first.
"Did you see?"
"I saw."
"……Kept my promise."
I remembered what he had said by the river in July. Not aiming for it — going, for sure. In his world that had been not a goal but a promise, and the promise had been kept. I smiled. He smiled too. Awkwardly — and therefore for real. It would be two weeks later, on the hill, that the thing between us that summer got its name; but even nameless things have a temperature. That morning, in front of the vending machine, was unmistakably warm.
Koshien was in August.
It was a week after the festival. Which means I found myself sitting in the Alps stands in my second week as his girlfriend. Why the cheering sections at Koshien Stadium are called the Alps — because they're steep and high as a mountainside, apparently — I learned from the woman next to me. To a transfer student who knew nothing of baseball, everything that day was a foreign language, and I knew exactly one reason I had come to that foreign country. The whole town was astir, banners hung in the shopping street, five chartered buses ran. I rode the third. On the bus the grown-ups chanted his name, and I had to police the corners of my mouth reflected in the window every time it was called. The hardest skill in a secret romance is the management of one's face.
The Alps stands in midsummer were like a frying pan, and the cheering squad's roar came in not through the ears but through the ribs. Even in the middle of eight thousand people's noise, I watched only the number 8 in the outfield. Noise is a curious thing. Once it grows loud enough, it erases everything — except one person.
The team lost in the second round. The opponent was a championship favorite; the score was one to four. When the game ended and the players lined up before home plate and bowed their heads, the grown-ups in the Alps stands were crying. I was not. I was watching him standing in the outfield with his cap off, his back unbent even in defeat. That back doesn't know yet how to lose, I thought. I envied it, and, just a little, it frightened me.
On the bus home I opened my sketchbook. In the swaying bus, from memory alone, I drew nine players lined up with their heads bowed, and in the middle of them, one back that would not bend. The woman in the next seat peered over and said, my, aren't you good, dear. I said thank you and closed the sketchbook. I began calculating how many years it had been since anyone told me I was good, and stopped.
Autumn and winter went quickly.
For him, there was talk from universities. A famous Tokyo school's baseball program, an athletic place, a scholarship. Certain to be drafted by the pros, said the print in the local paper. For me, there was career counseling. My homeroom teacher brought out the words art school, and I could not carry those words all the way home. Three times I went as far as the door of my father's study; once I even knocked. When the door opened and my father asked what it was, the sentence I had practiced folded itself, and what came out was "……It's nothing."
What was written in the approval line was employment. A company in Tokyo. In those days there were clerical jobs that would take a girl from an ordinary academic track, not even a commercial high school. It was the company of an acquaintance of my father's. And so the seal was stamped — in the ink of connections.
I told him about it in the art room, in winter. He was silent for a long while, and then he asked.
"……What about your painting?"
"I'll paint on weekends, I guess."
"And art school?"
"……Our house doesn't have an approval line for that."
He made a face that did not understand. Of course he couldn't. In his world, a place you wanted to go was a place you went. Not aimed at — gone to, for sure. I envied that face, and so I said, a little cruelly: You think everyone's like you? He looked genuinely sorry, I regretted it at once, and that day, for the first time, we parted awkwardly. It was the first crack since we had been together, a very small one. Cracks mostly begin that way, trivially. And some cracks stay trivial, and some do not.
The next morning he was waiting for me by the vending machine. Holding two cans of coffee. He handed me one, and it was lukewarm.
"……Bought it thirty minutes early. On purpose."
I laughed despite myself. Laughter is one of the few things that leaps out before it can be folded. The crack was filled in, just like that. His apologies were always of that kind. They arrived not as words but as temperature.
That winter, I won a place in the prefectural art competition with a painting of him.
It was titled Boy in the Outfield. Number 8, suspended in midair before the fence. The scene I had seen on the morning of my first day at that school, refined through hundreds of sketches over half a year until the painting was finished. The boy in that canvas is in the air forever. No fall, no collision, ever happens inside that painting. Later I would come to envy, a little, the girl who painted it. The eighteen-year-old who believed time could be stopped.
It was the art teacher who urged me to enter. I hesitated, afraid my family would find out, and the teacher said exactly one thing: "The certificate comes to the school." I understood what that one sentence meant, and I entered. When the notice of acceptance came, the teacher asked nothing and emptied out one drawer in the art room. The certificate went into that drawer. Among the things an adult can do for a child, I know of few better.
I did not tell him about the prize. The title had already said everything about who the painting's model was. Even when you are together, embarrassing things are embarrassing. No — there are things that are embarrassing precisely because you are together. He would learn of that painting's existence much later, after it had crossed the Pacific.
Winter ended, and graduation day came.
That morning, in the hallway, the one called Fujisawa stopped me, and held out a guitar pick, with only the short words: Here, you can have this. I did not ask why I was being given a guitar pick. Perhaps I should have. But for the eighteen-year-old me, the world held only one question, and that question would be waiting for me at the bicycle racks outside the school gate when the ceremony ended. The pick rolled around the bottom of my pencil case for a few years and then disappeared somewhere.
Much later, I would come to think about that pick again. But that is a story for much further along in this one.
On the day we moved to Tokyo, we sat side by side in the same car of the same train.
He was bound for a Tokyo university, I for a company dormitory in Tokyo. The names of our destinations differed, but the train was the same. For two hours we hardly spoke. I leaned on his shoulder and watched the country turn to suburbs, the suburbs to city. Once, along the way, he asked: "Asleep?" I wasn't, but I didn't answer. Because if I answered, I felt he would shift in his seat to make his shoulder more comfortable for me. I wanted that shoulder not to move a single millimeter.
Happiness, for the most part, makes no sound. Neither, I would learn later, does unhappiness. The only sound comes at the moment the two change places.
On the platform at Tokyo Station, we split off toward our separate lines. Before we parted, he said, "Saturday. Jingu." I nodded. We were within weekend distance of each other. So the end of eighteen was not an ending but an opening of the line. Two people, in the same city. What could possibly go wrong?
What could go wrong, the world already knew, and it was in no hurry. The world knows exactly where a person hurts most — it just takes its time choosing the date on which to touch it.
— End of Ep. 5 —
두 번째 촬영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사키는 삼각대를 지난번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세웠다. 바닥의 흠집을 기준으로 삼는 모양이었다.
촬영 전에 아이는 가방에서 캔커피를 두 개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자판기에서 뽑아 온 모양이었다.
"뇌물이에요. 오늘은 길게 찍을 거라서."
"……미지근하잖아, 이거."
"오다가 좀 걸렸어요. 싫으면 마시지 말든가요."
나는 마셨다. 미지근한 캔커피에 대해서 나는 세상 누구보다 관대한 인간이다. 그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빨간 불이 들어왔고, 아이가 노트를 펼쳤다.
"질문 이 번, 다시요.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프로 간다던 사람이."
지난번에는 이 질문 앞에서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무 종도 울리지 않았다. 세상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구해 주지 않는다.
"……길어질 텐데."
"테이프 세 개 있어요."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만 이름 하나만 빼고 전부 말하기로 했다. 이야기에서 이름 하나를 빼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름이라는 것은 빼내고 나면 그 자리에 이름 크기의 구멍이 남고, 듣는 사람은 대개 구멍부터 알아본다. 특히 그 아이처럼 구멍을 찾는 훈련이 되어 있는 인간은.
스무 살의 도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 도시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부터 말해야 한다.
나는 야구 특기생으로 도쿄의 대학에 갔다. 기숙사는 사 인실이었고, 아침 여섯 시에 기상 나팔 대신 주장의 고함이 있었고, 세탁기는 두 대뿐이었는데 부원은 마흔 명이었다. 세탁의 순번을 둘러싼 분쟁이 리그전보다 치열했다. 일학년의 업무는 공 줍기와 그라운드 정비와 선배들의 빨래였다. 나는 공 줍기가 싫지 않았다. 허리를 굽히고, 줍고, 담는다.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작업. 인간은 자기가 훗날 어떤 노후를 보내게 될지, 스무 살의 사역 속에서 미리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켄지도 같은 팀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좌익수라는 포지션과 수다라는 재능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온 남자다. 녀석은 입학 첫 주에 기숙사 전원의 출신지와 혈액형을 외웠다. 나는 삼 년을 같이 산 룸메이트의 생일도 몰랐다. 세상의 균형이라는 것은 대개 그런 식으로 맞춰져 있다.
'프로 지명 확실'이라는 활자가 이름표처럼 붙어 다녔다. 스포츠 신문이 그렇게 썼고, 스카우트들이 백네트 뒤에 앉기 시작했고, 감독은 나를 부를 때만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공이 떠 있는 동안 세상은 단순했고, 나의 세상에는 언제나 공이 떠 있었으니까.
그리고 주말마다,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대에 가지 못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마루노우치의 회사에서 서류를 만들었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세상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무직 사원이었을 것이다. 물론 회사의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한번은 그 사람의 회사 앞까지 간 적이 있다. 원정 경기가 취소된 평일 오후였다. 퇴근 시간에 맞춰 빌딩 앞에서 기다렸는데, 유리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회색 정장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을 한 번에 찾아냈다. 어떻게 찾았느냐고 물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외야수는 타구음만으로 공의 낙하지점을 아는데, 그것과 비슷한 원리라고밖에. 그 사람은 나를 발견하고 반 박자 멈췄다가, 회사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다음에 웃었다. 회사에서의 그 사람은 웃음도 결재를 받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법을 몰랐다. 말을 삼키는 남자와 말을 접는 여자는 그런 식으로, 서로의 회사 앞에서도 조용했다.
그림은 주말로 밀려났다. 그리고 주말의 그 사람이 그리는 것은, 대개 나였다.
토요일 오후의 진구 구장. 리그전이 있는 날이면 그 사람은 외야 자유석의 왼쪽 구역, 앞에서 여섯 번째 줄에 앉았다. 늘 같은 자리였다. 무릎 위에 스케치북, 옆자리에 회사 가방. 나는 외야 수비 위치에서 그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타구를 쫓을 때는 공만 보였지만, 이닝 사이의 빈 시간에는 그 자리부터 보였다. 사만 명이 들어가는 구장에서 한 자리만 밝기가 다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가이엔의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가을에는 노란 터널이 되는 길이다. 그 사람은 스케치북을 보여 주지 않았다. 다 그려지지 않은 것은 보여 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의 원칙이었다. 다만 한 번, 바람에 페이지가 넘어간 적이 있다. 연필로 그린 내가 거기 있었다. 담장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등번호 8. 고등학교 때의 그림과 같은 구도였는데, 어딘가 달랐다. 어디가 다른지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낙하지점을 아는 사람의 등이 됐어."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지금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이 나를 나보다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것이 무섭지 않고 편안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보인다는 것은 대개 무서운 일이다. 그것이 편안하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그 시선에 채점표가 없을 것.
그 사람의 시선에는 채점표가 없었다. 그 사람은 평생 채점당하며 자란 인간이었고, 그런 인간은 두 종류로 자란다. 채점하는 인간이 되거나, 채점표를 버린 인간이 되거나. 그 사람은 후자였다.
십일월에는 학원제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의 축제다. 야구부는 해마다 야키소바 노점을 냈고, 일학년이 철판 앞에 서고 이학년이 호객을 맡았다. 그해 이학년이던 나는 호객에 재능이 없어서 — 목소리를 내는 모든 업무에 재능이 없어서 — 예외적으로 거스름돈 계산 담당이 되었다. 켄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소리를 질렀다. 세 개 사면 하나 더! 안 사면 후회한다! 녀석의 호객 덕분에 우리 노점은 이틀 연속 완판이었다.
둘째 날 오후에 그 사람이 왔다. 회사가 쉬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거스름돈 계산을 켄지에게 떠넘기고 한 시간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야키소바 하나를 나눠 먹으며 캠퍼스를 걸었다. 미대의 학원제는 어떤 느낌일까, 라고 그 사람이 지나가듯 말했다. 전시가 있겠지, 그림이 걸리고.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야키소바를 먹었다. 지금이라면 안다. 그때 해야 했던 말은 "가 보자, 언젠가 네 전시"였다. 스무 살의 나는 그 문장을 조립하지 못했다. 부품은 전부 있었는데, 설계도가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은 노점에서 유리 세공 금붕어를 하나 샀다. 끈이 달린, 새끼손가락만 한 빨간 놈이었다. 그것을 내 손에 쥐여 주며 그 사람은 말했다. 네 방에 걸어 둬. 서류만 있는 방에, 헤엄치는 게 하나쯤 있어야지.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서류만 있는 방에, 헤엄치는 것 하나.
기숙사에는 통금이 있었다. 밤 아홉 시.
여덟 시 오십 분이 되면 나는 기숙사 뒷담 아래에 서 있었다. 담 너머는 좁은 골목이었고, 골목에는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담의 높이는 일 미터 팔십.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넘어왔다. 우리는 담을 사이에 두고 십 분을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회사의 복사기가 또 고장 났다든가, 오늘 수비에서 한 발 늦게 출발했다든가, 그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밤공기를 나눠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한번은 그 사람이 담 너머로 물었다. "프로 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
나는 생각했다. 일 분쯤 생각했던 것 같다. 담 너머의 그 사람은 일 분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다.
"……계약금으로, 어머니 야간조 그만두게 하고."
"그리고?"
"……글러브 새로 사고."
"그리고?"
그리고, 의 다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미래 설계는 두 항목이 전부였다. 담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바보네, 라고 그 사람은 말했다. 세 번째는 내가 정해 줄게. 세 번째는, 도쿄에서 제일 큰 구장에서 네가 수비하는 걸, 내가 제일 좋은 자리에서 보는 거야. 스케치북 들고.
"……외야 자유석이 제일 좋은 자리야."
"그건 지금이고. 프로 가면 내야석으로 승격해 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십 분이었다. 아홉 시 일 분 전에 그 사람은 말했다. "가."
"어."
"잘 자."
"어."
나는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지는 인간이고, 그 시절의 내 대답은 대부분 한 글자였다. 그 사람은 그것을 불평한 적이 없다. 접는 사람은 삼키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일요일에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기숙사 일 층의 초록색 전화기. 십 엔짜리 동전을 쌓아 놓고 거는 전화였다. 동전 하나에 일 분. 우리는 대개 여섯 개에서 여덟 개 분량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그 사람은 꼭 말했다. "다음 주에 봐." 뚜, 하는 소리로 끊기는 것이 싫어서, 끊기기 전에 자기 손으로 매듭을 짓는 것이다. 그 사람다운 방식이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특별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 하나도 없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행복이라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사진에 찍히지만, 상태는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행복을 늘 뒤늦게, 그것이 끝난 자리에서만 발견한다.
"잠깐만요." 사키가 손을 들었다. "그 여자친구, 이름이 뭐예요?"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예상보다 빨랐다.
"……다음 질문."
"치사하다."
"인터뷰 대상에게는 묵비권이 있어."
"그런 규칙 없어요." 아이는 볼펜 끝을 깨물었다. "그럼 다르게 물을게요. 예뻤어요?"
"……"
"침묵은 긍정으로 편집할 거예요."
"멋대로 해."
"지금 웃었죠. 방금 각도 잡았어요. 됐고 — 그 언니, 그림 그린다고 했잖아요. 어떤 그림이었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담장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의 그림, 이라고. 아이는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적으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이라……" 그 순간 아이의 얼굴에 무언가가 스쳤는데, 나는 그것을 못 본 척했다. 못 본 척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특기이고, 그 특기가 내 인생을 어떻게 망쳤는지는 이 이야기의 뒤에서 밝혀진다.
"계속할게요. 그래서요?"
그리고 삼학년 봄이 왔다.
그해 우리 팀은 강했다. 리그 최종전까지 갔고, 상대와 승률이 같았다. 이기는 쪽이 우승이었다. 오월의 진구 구장, 관중석은 평소의 세 배쯤 찼고, 백네트 뒤에는 스카우트가 일곱 명 앉아 있었다. 켄지가 아침에 그 숫자를 세고 왔다. "일곱이다, 일곱." 녀석은 그 말을 시합 전까지 열한 번쯤 했다. 긴장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켄지의 방식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시합 전 연습 때, 외야에서 나는 관중석을 한 번 보았다. 외야 자유석 왼쪽, 앞에서 여섯 번째 줄. 그 사람이 있었다. 토요일이었으니까. 스케치북은 무릎 위에 있었지만, 그날은 한 장도 그리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그릴 수 없는 날도 있어, 라고 그 사람은 말했다. 너무 보고 싶은 것은 그릴 수 없어. 눈이 연필을 이겨 버리니까.
경기는 팽팽했다. 일 대 일로 칠회까지 갔고, 팔회에 우리가 한 점을 냈다. 이 대 일. 나는 그 경기에서 안타 두 개를 쳤고, 다이빙 캐치를 한 번 했다. 다이빙 캐치를 했을 때 관중석의 한 지점에서 소리가 났다. 삼만 명 분의 함성 속에서 한 사람의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과학은 말할 것이다. 과학은 외야 자유석 앞에서 여섯 번째 줄에 앉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구회말, 투아웃. 스코어는 이 대 일. 우리가 한 점 앞. 상대의 사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배트가 두 번 헛돌았고, 볼이 세 개 지나갔고, 풀카운트가 되었다. 구장 전체가 일어서 있었다. 함성은 소리라기보다 기압이었다. 나는 외야에서 무릎을 낮추고, 스파이크 끝으로 잔디를 한 번 긁었다. 시합 전에 늘 하던 동작이다. 잔디의 결을 발바닥으로 외워 두는 것. 어디로든 최단 거리로 출발하기 위해서.
육구째. 타구음은 정확했다. 금속 배트가 공의 중심을 잡는, 그 건조하고 기분 나쁘게 완벽한 소리. 공은 좌중간으로 떴다. 높게, 깊게. 담장까지 가는 코스였다. 잡으면 우승이고, 빠지면 역전이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이 먼저 갔다. 왼쪽 시야 끝에서 켄지도 달리고 있었다. 좌익수와 중견수, 두 개의 점이 하나의 낙하지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콜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는, 훗날 켄지와 나의 기억이 다르다. 나는 했다고 기억하고, 켄지는 못 들었다고 기억한다. 어쩌면 둘 다 맞을 것이다. 삼만 명의 함성은 소리라기보다 기압이고, 기압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공 하나보다 가볍다.
공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세상은 언제나처럼 단순했다. 공이 있었고, 글러브가 있었고, 그 사이의 줄어드는 거리가 있었다.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공이 글러브에 들어왔다. 잡았다, 고 생각한 것과 거의 동시에 —
왼쪽에서 무언가가 왔다.
"……그래서요?" 사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캠코더의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테이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것을 잠깐 보았다. 편리한 기계다. 끝나는 시점을 스스로 알려 주다니. 인간에게는 그런 기능이 없다. 있었다면 나는 그 오월의 아침에 경보음을 들었을 것이다.
"……테이프, 끝나 간다."
"아직 삼 분 남았어요."
"그 얘기는 삼 분으로는 안 끝나."
아이는 입을 삐죽였지만, 캠코더를 껐다. 끊는 시점을 아는 아이였다. 아이는 삼각대를 접으며 지나가듯 물었다.
"아저씨. 그 공, 잡았어요?"
"……잡았어."
"그럼 우승했네요?"
"우승했지."
"근데 왜 그런 얼굴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도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가방을 메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다음 촬영 때는, 잡은 다음 얘기부터예요."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텅 빈 가게에 한참 앉아 있었다. 카운터 위에는 아이가 놓고 간 캔커피의 빈 캔이 두 개 나란히 서 있었다. 미지근한 커피를 두 개 놓고 가는 열네 살이라니. 유전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잠깐 생각했고, 그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리고는 그만두었다.
오른손이 저절로 왼쪽 어깨로 갔다. 비가 오려면 아직 먼 계절인데, 어깨 속의 낡은 못이 희미하게 울고 있었다. 이십오 년 전에 박힌 못이다. 수술은 두 번 했지만, 못이라는 것은 뽑아도 구멍을 남긴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꿈을 꿨다. 공중에 떠 있는 꿈이었다. 공은 글러브 안에 있었고, 세상은 아직 단순했고, 왼쪽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오지 않고 있었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그 사람이 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야간조에서 도시락을 싸고 있었고, 스카우트 일곱 명은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공중에, 아직 공중에 있었다.
꿈속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영원히 내려가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내려가지만 않으면, 그 다음의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사람은 내려온다. 그것이 낙하지점이라는 말의 뜻이다.
— 6화 끝 —
二度目の撮影は水曜の夕方だった。
咲希は三脚を前回と正確に同じ場所に立てた。床の傷を目印にしているらしかった。
撮影の前に、あの子は鞄から缶コーヒーを二本取り出してカウンターに置いた。自販機で買ってきたらしい。
「賄賂です。今日は長回しになるので」
「……ぬるいぞ、これ」
「来る途中で時間かかったんです。嫌なら飲まなくていいですけど」
私は飲んだ。ぬるい缶コーヒーに対して、私は世界の誰よりも寛大な人間だ。その理由をあの子に説明するつもりはなかった。
赤いランプが点り、あの子はノートを開いた。
「質問二番、もう一度です。どうして急にいなくなったんですか。プロに行くって言ってた人が」
前回はこの質問の前で店の鐘が鳴った。今回は何の鐘も鳴らなかった。世界は同じ場所で二度は助けてくれない。
「……長くなるぞ」
「テープなら三本あります」
私は話し始めた。ただし、名前をひとつだけ抜いて、あとは全部話すことにした。物語から名前をひとつ抜くという作業は、思ったより難しい。名前というものは、抜き取るとその場所に名前の大きさの穴が残り、聞き手はたいてい穴のほうから先に気づく。とりわけあの子のように、穴を探す訓練ができている人間は。
二十歳の東京について語るには、まずあの街がどれほど騒がしかったかから話さなければならない。
私は野球推薦で東京の大学に入った。寮は四人部屋で、朝六時には起床ラッパの代わりに主将の怒鳴り声があり、洗濯機は二台しかないのに部員は四十人いた。洗濯の順番をめぐる争いはリーグ戦より熾烈だった。一年生の仕事は球拾いとグラウンド整備と先輩たちの洗濯だった。私は球拾いが嫌いではなかった。腰をかがめ、拾い、籠に入れる。考えの入り込む余地のない作業。人間は自分がのちにどんな老後を送ることになるのか、二十歳の使役の中であらかじめ練習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健二も同じチームだった。高校から大学まで、レフトというポジションとおしゃべりという才能をそのまま持ち上がってきた男だ。あいつは入学一週目で寮の全員の出身地と血液型を覚えた。私は三年一緒に暮らしたルームメイトの誕生日も知らなかった。世界のバランスというものは、だいたいそんなふうに取られている。
「プロ指名確実」という活字が名札のようについて回った。スポーツ新聞がそう書き、スカウトたちがバックネット裏に座り始め、監督は私を呼ぶときだけ名字ではなく名前で呼んだ。それが何を意味するのか、当時の私は深く考えなかった。ボールが宙にある間、世界は単純で、私の世界にはいつもボールが浮かんでいたから。
そして週末ごとに、あの人がいた。
あの人は美大に行けなかった。あの人の父親が書類に判を押さなかったからだ。代わりに丸の内の会社で書類を作った。朝八時五十分から夕方六時まで。世界でいちばん絵のうまい事務員だっただろう。もちろん、会社の誰もその事実を知らなかった。
一度、あの人の会社の前まで行ったことがある。遠征試合が中止になった平日の午後だった。退勤時間に合わせてビルの前で待っていたのだが、ガラス扉から吐き出されてくる数百人のグレーのスーツの中から、私はあの人を一目で見つけ出した。どうやって見つけたのかと訊かれても、説明のしようがない。外野手は打球音だけでボールの落下地点がわかる。それと似た原理だとしか言えない。あの人は私に気づいて半拍止まり、会社の人たちが全員通り過ぎるのを待ってから、それから笑った。会社でのあの人は、笑顔にも決裁が要るらしかった。私はそれが気に入らなかったが、気に入らないと言う方法を知らなかった。言葉を呑み込む男と文章を畳む女は、そんなふうに、互いの会社の前でも静かだった。
絵は週末に追いやられた。そして週末のあの人が描くのは、たいてい私だった。
土曜午後の神宮球場。リーグ戦のある日、あの人は外野自由席の左側、前から六列目に座った。いつも同じ席だった。膝の上にスケッチブック、隣の席に会社の鞄。私は外野の守備位置からその席を正確に知っていた。打球を追うときはボールしか見えなかったが、イニングの合間の空白の時間には、その席から先に見えた。四万人の入る球場で一席だけ明るさが違うというのは物理的に説明のつかない話だが、事実そうだった。
試合が終わると、私たちは外苑の銀杏並木を歩いた。秋には黄色いトンネルになる道だ。あの人はスケッチブックを見せてくれなかった。描き上がっていないものは見せない、というのがあの人の原則だった。ただ一度だけ、風でページがめくれたことがある。鉛筆で描かれた私がそこにいた。フェンスの前で宙に浮いている、背番号8。高校のころの絵と同じ構図だったのに、どこかが違っていた。どこが違うのかと訊くと、あの人は少し考えて言った。
「落下地点を知っている人の背中になった」
私はその言葉を理解するのに時間がかかった。もしかしたら今も理解しきれていないのかもしれない。ただ、あの人が私を私より正確に見ているということだけはわかった。それが怖くなく、心地よかったということも。誰かに正確に見られるというのは、たいてい怖いことだ。それが心地よくあるためには、条件がひとつ要る。その視線に採点表がないこと。
あの人の視線には採点表がなかった。あの人は生涯採点されながら育った人間で、そういう人間は二種類に育つ。採点する人間になるか、採点表を捨てた人間になるか。あの人は後者だった。
十一月には学園祭というものがあった。
大学の祭りだ。野球部は毎年焼きそばの屋台を出し、一年生が鉄板の前に立ち、二年生が呼び込みを受け持った。その年二年生だった私は呼び込みの才能がなくて――声を出すすべての業務に才能がなくて――例外的に釣り銭計算の係になった。健二は水を得た魚のように叫んだ。三つ買えばもう一つ! 買わなきゃ後悔するぞ! あいつの呼び込みのおかげで、うちの屋台は二日連続で完売した。
二日目の午後にあの人が来た。会社が休みの土曜日だった。私は釣り銭計算を健二に押しつけて一時間抜け出した。私たちは焼きそばを一つ分け合いながらキャンパスを歩いた。美大の学園祭ってどんな感じなんだろうね、とあの人は通りすがりのように言った。展示があるんだろうね、絵が掛かって。私は何と答えていいかわからなくて、焼きそばを食べた。今ならわかる。あのとき言うべきだった言葉は「行こう、いつか、君の展示」だった。二十歳の私はその文章を組み立てられなかった。部品は全部あったのに、設計図がなかった。
帰り道、あの人は露店でガラス細工の金魚をひとつ買った。紐のついた、小指ほどの赤いやつだった。それを私の手に握らせて、あの人は言った。君の部屋に吊るしておいて。書類しかない部屋に、泳ぐものがひとつくらいないと。私はその言葉を長いこと覚えていることになる。書類しかない部屋に、泳ぐものをひとつ。
寮には門限があった。夜九時。
八時五十分になると、私は寮の裏塀の下に立っていた。塀の向こうは狭い路地で、路地にはあの人が立っていた。塀の高さは一メートル八十。顔は見えず、声だけが越えてきた。私たちは塀を挟んで十分話した。何を話したのかはほとんど覚えていない。会社のコピー機がまた壊れたとか、今日の守備で一歩出遅れたとか、そんなことだったはずだ。大事なのは中身ではなかった。塀一枚を挟んで、同じ夜の空気を分け合って吸っているという事実が大事だった。
一度、あの人が塀越しに訊いた。「プロに行ったら、何がいちばんしたい?」
私は考えた。一分ほど考えた気がする。塀の向こうのあの人は、一分待ってくれる人だった。
「……契約金で、母さんの夜勤をやめさせて」
「それから?」
「……グラブを新しく買って」
「それから?」
それから、の続きが出てこなかった。私の未来設計は二項目で全部だった。塀の向こうから笑い声が越えてきた。ばかね、とあの人は言った。三つ目は私が決めてあげる。三つ目はね、東京でいちばん大きい球場であなたが守備してるのを、私がいちばんいい席で見ること。スケッチブックを持って。
「……外野自由席がいちばんいい席だよ」
「それは今の話。プロに行ったら内野席に昇格させて」
そんな話をする十分だった。九時の一分前に、あの人は言った。「行って」
「ああ」
「おやすみ」
「ああ」
私は感情がこもるほど言葉が短くなる人間で、あのころの私の返事はほとんど一言だった。あの人はそれを不満に思ったことがない。畳む人は、呑み込む人がわかるものだから。
日曜日には公衆電話があった。寮の一階の緑色の電話機。十円玉を積み上げてかける電話だった。硬貨一枚で一分。私たちはたいてい六枚から八枚ぶん話した。最後の硬貨が落ちる前に、あの人は必ず言った。「また来週ね」。ツー、という音で切られるのが嫌で、切れる前に自分の手で結び目を作るのだ。あの人らしいやり方だった。
そんな時代だった。特別な出来事はひとつもなかった。特別な出来事がひとつもない時代が、人生でいちばん輝く時代になり得るということを、私はあのときは知らず、今は知っている。幸福というものは出来事ではなく、状態だからだ。出来事は写真に写るが、状態は写らない。だから人は幸福をいつも遅れて、それが終わった場所でしか見つけられない。
「ちょっと待って」咲希が手を挙げた。「その彼女、名前は何ていうんですか」
穴を見つけたのだ。予想より早かった。
「……次の質問」
「ずるい」
「インタビュー対象には黙秘権がある」
「そんなルールありません」あの子はボールペンの先を噛んだ。「じゃあ訊き方を変えます。きれいでした?」
「……」
「沈黙は肯定として編集しますからね」
「勝手にしろ」
「今笑いましたよね。いまの、ちゃんとアングル押さえました。それより――そのお姉さん、絵を描くって言ったじゃないですか。どんな絵だったんですか」
私は少し考えた。そして答えた。フェンスの前で宙に浮いている人の絵だ、と。あの子はノートに何かを書きつけた。書きながら独り言のように言った。「宙に浮いている人か……」その瞬間、あの子の顔を何かがよぎったが、私はそれを見なかったふりをした。見なかったふりは私の古い特技で、その特技が私の人生をどう台無しにしたのかは、この物語の後のほうで明らかになる。
「続けますね。それで?」
そして三年の春が来た。
その年のうちのチームは強かった。リーグ最終戦までもつれ、相手と勝率が並んだ。勝ったほうが優勝だった。五月の神宮球場、観客席はいつもの三倍ほど埋まり、バックネット裏にはスカウトが七人座っていた。健二が朝、その数を数えてきた。「七人だぞ、七人」。あいつはその台詞を試合前までに十一回は言った。緊張すると同じ言葉を繰り返すのが健二のやり方だった。私は何も言わなかった。それが私のやり方だった。
試合前の練習のとき、外野から私は観客席を一度見た。外野自由席の左側、前から六列目。あの人がいた。土曜日だったから。スケッチブックは膝の上にあったが、その日は一枚も描いていなかった。後で聞いた話だ。描けない日もあるの、とあの人は言った。見たくてたまらないものは描けない。目が鉛筆に勝ってしまうから。
試合は拮抗した。一対一のまま七回まで行き、八回にうちが一点を取った。二対一。私はその試合でヒットを二本打ち、ダイビングキャッチを一度した。ダイビングキャッチをしたとき、観客席の一点から声がした。三万人ぶんの歓声の中から一人の声を聞き分けるのは不可能だと科学は言うだろう。科学は外野自由席の前から六列目に座ったことがないのだ。
九回裏、ツーアウト。スコアは二対一。うちが一点リード。相手の四番打者が打席に立った。
バットが二度空を切り、ボールが三つ通り過ぎ、フルカウントになった。球場全体が立ち上がっていた。歓声は音というより気圧だった。私は外野で膝を低くし、スパイクの先で芝を一度掻いた。試合前にいつもやる動作だ。芝の目を足の裏で覚えておくこと。どこへでも最短距離で出発するために。
六球目。打球音は正確だった。金属バットがボールの中心を捉える、あの乾いた、嫌になるほど完璧な音。ボールは左中間に上がった。高く、深く。フェンスまで届くコースだった。捕れば優勝で、抜ければ逆転だった。
私は走り出した。背を向けて、落下地点へ。考えはしなかった。体が先に動いた。左の視界の端で健二も走っていた。レフトとセンター、二つの点が一つの落下地点へ収束していった。
コールをしたかしなかったかについては、後年、健二と私の記憶が食い違っている。私はしたと記憶していて、健二は聞こえなかったと記憶している。たぶん、どちらも正しいのだろう。三万人の歓声は音というより気圧で、気圧の中では人間の声はボール一個より軽い。
ボールが落ち始めた。私は跳んだ。
空中で、世界はいつものように単純だった。ボールがあり、グラブがあり、その間の縮んでいく距離があった。ボールは嘘をつかない。それまでの私の人生において、それは事実だった。
ボールがグラブに入った。捕った、と思ったのとほとんど同時に——
左から、何かが来た。
「……それで?」咲希が身を乗り出した。
カムコーダーの赤いランプが点滅していた。テープが残り少ないという合図だった。私はそれをしばらく見ていた。便利な機械だ。終わる時点を自分で知らせてくれるとは。人間にはそんな機能がない。あったなら、私はあの五月の朝に警報音を聞いていただろう。
「……テープ、終わるぞ」
「まだ三分あります」
「その話は三分じゃ終わらない」
あの子は口を尖らせたが、カムコーダーを切った。切りどきを知っている子だった。あの子は三脚を畳みながら、通りすがりのように訊いた。
「おじさん。そのボール、捕ったんですか」
「……捕った」
「じゃあ優勝したんですね」
「優勝したさ」
「なのに、どうしてそんな顔なんですか」
私は答えなかった。あの子もそれ以上訊かなかった。ただ、鞄を背負いながら一言だけ残していった。
「次の撮影は、捕ったあとの話からですからね」
鐘の音が鳴って、扉が閉まった。私はがらんとした店に長いこと座っていた。カウンターの上には、あの子が置いていった缶コーヒーの空き缶が二つ、並んで立っていた。ぬるいコーヒーを二本置いていく十四歳とは。遺伝というものについて私はしばらく考え、その考えがどこへ向かうのかに気づいて、やめた。
右手が勝手に左肩へ行った。雨にはまだ遠い季節なのに、肩の中の古い釘がかすかに鳴いていた。二十五年前に打ち込まれた釘だ。手術は二度したが、釘というものは抜いても穴を残す。
その夜、私は久しぶりに夢を見た。宙に浮いている夢だった。ボールはグラブの中にあり、世界はまだ単純で、左からはまだ何も来ていなかった。観客席のどこかであの人が見ていて、母は夜勤で弁当を詰めていて、スカウト七人は手帳に何かを書きつけていた。すべてが宙に、まだ宙にあった。
夢の中の私は知っていた。このまま永遠に降りなければいいのだということを。降りさえしなければ、その先のすべては起こらないのだということを。
もちろん、人は降りてくる。それが落下地点という言葉の意味だ。
— 第6話 終 —
The second filming session was on a Wednesday evening.
Saki set up the tripod in exactly the same spot as last time. She seemed to be using a scratch on the floor as her mark.
Before filming, she took two cans of coffee out of her bag and set them on the counter. From a vending machine, apparently.
"It's a bribe. We're going long today."
"...This is lukewarm."
"It took me a while to get here. Don't drink it if you don't want it."
I drank it. When it comes to lukewarm canned coffee, I am the most forgiving man in the world. I had no intention of explaining why to her.
The red light came on, and she opened her notebook.
"Question two, one more time. Why did you disappear all of a sudden? You, the one who was supposed to go pro."
Last time, the shop bell had rung just before this question. This time no bell rang. The world doesn't save you twice in the same place.
"...It's going to be a long story."
"I have three tapes."
I began to talk. Except that I decided to leave out exactly one name and tell everything else. Removing one name from a story is harder than you'd think. Take a name out and it leaves a hole the size of the name, and the listener usually notices the hole first. Especially someone like her, trained to look for holes.
To talk about Tokyo at twenty, you have to start with how loud that city was.
I went to a university in Tokyo on a baseball scholarship. The dorm rooms slept four; at six in the morning there was the captain's shouting instead of a bugle; and there were two washing machines for forty players. The disputes over laundry order were fiercer than the league games. A freshman's duties were shagging balls, grooming the field, and doing the upperclassmen's laundry. I didn't mind shagging balls. Bend down, pick up, drop it in the basket. Work that leaves no room for thought. Maybe a man rehearses, in the drudgery of being twenty, the old age he will someday live out.
Kenji was on the same team. A man who had carried his position in left field and his talent for talking straight up from high school to college. In his first week he memorized the hometown and blood type of everyone in the dorm. I didn't know the birthday of the roommate I lived with for three years. That is generally how the world keeps its balance.
The words "sure draft pick" followed me around like a name tag. The sports papers wrote it, scouts began sitting behind the backstop, and the coach called me — only me — by my first name instead of my last. What that meant, I didn't think about very deeply at the time. As long as a ball was in the air the world was simple, and in my world there was always a ball in the air.
And every weekend, she was there.
She never got to art school. Her father wouldn't put his seal on the paperwork. Instead she made paperwork at a company in Marunouchi. Eight-fifty in the morning to six in the evening. She must have been the finest painter among office clerks anywhere in the world. Of course, no one at the company knew it.
Once, I went as far as the front of her office building. A weekday afternoon; an away game had been called off. I waited outside at quitting time, and out of the hundreds of gray suits pouring through the glass doors I found her at a glance. If you ask how, I have no way to explain it. An outfielder knows the landing point of a ball from the sound off the bat alone — it works on a similar principle, is all I can say. She spotted me and stopped for half a beat, waited until everyone from her company had passed, and then smiled. At the office, it seemed, even her smile needed approval. I didn't like that, but I didn't know how to say I didn't like it. A man who swallows his words and a woman who folds her sentences are quiet in just that way, even outside each other's offices.
Painting got pushed to the weekends. And on weekends, what she painted was, for the most part, me.
Jingu Stadium on Saturday afternoons. On league game days she sat in the left section of the outfield general seating, sixth row from the front. Always the same seat. Sketchbook on her knees, work bag on the seat beside her. From my position in the outfield I knew that seat exactly. When I chased a fly ball I saw only the ball, but in the empty time between innings, that seat was the first thing I saw. That one seat out of forty thousand should have a different brightness is not something physics can explain, but it was so.
After the games we walked the ginkgo avenue at the Gaien. In autumn the road becomes a yellow tunnel. She wouldn't show me the sketchbook. Never showing anything unfinished was her rule. Only once, the wind turned a page. There I was, in pencil. Number 8, suspended in midair in front of the wall. The same composition as the drawing from high school, but something was different. When I asked what, she thought for a moment and said,
"It's become the back of someone who knows the landing point."
It took me time to understand those words. Maybe I still haven't understood them completely. But I knew this much: she saw me more accurately than I saw myself. And that it didn't frighten me — it put me at ease. To be seen accurately by someone is, as a rule, a frightening thing. For it to be a comfort, one condition must be met: there must be no scorecard in the gaze.
There was no scorecard in hers. She had grown up being graded all her life, and people like that grow up into one of two kinds: those who grade, and those who throw the scorecard away. She was the latter.
In November there was a thing called the campus festival.
The university's fair. Every year the baseball team ran a yakisoba stall — freshmen at the griddle, sophomores barking for customers. A sophomore that year, I had no talent for barking — no talent for any duty that required using my voice — so by special exception I was put in charge of counting change. Kenji shouted like a fish returned to water. Buy three, get one free! You'll regret it if you don't! Thanks to his barking, our stall sold out two days running.
On the afternoon of the second day, she came. It was a Saturday, her day off. I dumped the change-counting on Kenji and slipped away for an hour. We walked the campus sharing one order of yakisoba. I wonder what an art school festival is like, she said, as if in passing. There'd be an exhibition, wouldn't there — paintings on the walls. I didn't know what to say, so I ate yakisoba. Now I know. What I should have said then was, "Let's go someday — to your exhibition." At twenty, I couldn't assemble that sentence. I had all the parts. I just had no blueprint.
On the way back she bought a little glass goldfish at one of the stalls. A red one the size of a pinky finger, on a string. She pressed it into my hand and said: hang it in your room. A room with nothing but paperwork needs at least one thing that swims. I would remember those words for a long time. In a room of nothing but paperwork, one thing that swims.
The dorm had a curfew. Nine at night.
At eight-fifty I would be standing under the wall behind the dorm. On the other side was a narrow alley, and in the alley she would be standing. The wall was a meter eighty high. I couldn't see her face; only her voice came over. We talked for ten minutes with the wall between us. I remember almost nothing of what we talked about. The office copier had broken down again, or I'd gotten a late jump on a ball that day — things like that, it must have been. What mattered wasn't the content. What mattered was the fact that, with one wall between us, we were sharing the same night air.
Once, she asked over the wall, "When you go pro, what do you want to do most?"
I thought about it. For about a minute, I think. She was the kind of person who would wait a minute, on the other side of a wall.
"...With the signing bonus, get my mother off the night shift."
"And then?"
"...Buy a new glove."
"And then?"
Nothing came after and then. My blueprint for the future ran to exactly two items. Laughter came over the wall. You idiot, she said. I'll decide the third one for you. The third is this: in the biggest stadium in Tokyo, you out there playing the outfield, and me watching from the best seat in the house. Sketchbook in hand.
"...The outfield general seating is the best seat in the house."
"That's for now. When you go pro, promote me to the infield."
That was the kind of ten minutes it was. At one minute to nine she said, "Go."
"Yeah."
"Good night."
"Yeah."
I am a man whose words grow shorter the more feeling is in them, and in those days most of my answers were a single syllable. She never once complained. The one who folds recognizes the one who swallows.
On Sundays there was the pay phone. The green telephone on the first floor of the dorm. The kind of call you made with a stack of ten-yen coins. One coin, one minute. We usually talked six to eight coins' worth. Before the last coin dropped, she always said it: "See you next week." She hated being cut off by the dial tone, so before the line could cut her off she tied the knot with her own hands. It was very like her.
That's the kind of time it was. Not a single special thing happened. That a time in which not a single special thing happens can turn out to be the brightest time of a life — I didn't know it then, and I know it now. Because happiness is not an event but a state. Events show up in photographs; states do not. Which is why people always discover happiness late, and only in the place where it ended.
"Hold on." Saki raised her hand. "This girlfriend — what was her name?"
She had found the hole. Faster than I expected.
"...Next question."
"That's cheating."
"The interviewee has the right to remain silent."
"No such rule." She bit the end of her ballpoint. "Fine, I'll ask it differently. Was she pretty?"
"..."
"Silence gets edited as a yes."
"Suit yourself."
"You just smiled. Got the angle on that, by the way. Anyway — that lady, you said she painted. What kind of paintings?"
I thought for a moment. Then I answered: a picture of a person suspended in midair, in front of a wall. She wrote something in her notebook. As she wrote, she murmured, as if to herself, "A person floating in midair..." In that instant something crossed her face, and I pretended not to see it. Pretending not to see is an old specialty of mine, and how that specialty ruined my life will come out later in this story.
"Okay, continuing. And then?"
And then came the spring of my third year.
Our team was strong that year. It came down to the final game of the league season, our winning percentage tied with theirs. Winner took the championship. Jingu Stadium in May; the stands were about three times fuller than usual, and seven scouts sat behind the backstop. Kenji had counted them that morning. "Seven. Seven of them." He must have said it eleven times before the game. Repeating the same words when nervous was Kenji's way. I said nothing. That was mine.
During pregame practice, from the outfield, I looked at the stands once. Left section of the outfield general seating, sixth row from the front. She was there. It was a Saturday, after all. The sketchbook was on her knees, but that day she wasn't drawing a single page. I heard about it later. There are days I can't draw, she said. What I want too badly to watch, I can't draw. The eyes defeat the pencil.
The game was tight. One to one through seven innings; in the eighth we scored a run. Two to one. I had two hits in that game and made one diving catch. When I made the diving catch, a sound came from one point in the stands. Science will tell you it's impossible to pick out one person's voice from the roar of thirty thousand. Science has never sat in the sixth row from the front of the outfield general seating.
Bottom of the ninth, two outs. The score two to one, us up by a run. Their cleanup hitter stepped to the plate.
The bat came around empty twice, three balls went by, and the count ran full. The whole stadium was on its feet. The roar was less a sound than an air pressure. Out in the outfield I lowered my hips and raked the grass once with the tip of my spikes. The gesture I always made before games. Memorizing the grain of the grass through the soles of my feet. So I could break in any direction by the shortest line.
The sixth pitch. The sound off the bat was exact. That dry, unpleasantly perfect sound of a metal bat finding the center of the ball. The ball rose toward left-center. High and deep. On a line for the wall. Catch it and we were champions; miss it and the game was flipped.
I started to run. Back turned, toward the landing point. I didn't think. The body moved first. At the left edge of my vision Kenji was running too. Left fielder and center fielder, two points converging on a single landing point.
Whether I called for it or not — on that, Kenji's memory and mine differ to this day. I remember calling; Kenji remembers hearing nothing. Probably both of us are right. The roar of thirty thousand is less a sound than an air pressure, and inside that pressure a human voice weighs less than one ball.
The ball began to come down. I jumped.
In midair, the world was as simple as it had always been. There was the ball, there was the glove, and there was the shrinking distance between them. A ball never lies. In my life up to that point, that had been the truth.
The ball came into the glove. Almost in the same instant I thought I've got it —
something came from the left.
"...And then?" Saki leaned forward.
The camcorder's red light was blinking. The signal that the tape was running out. I looked at it for a moment. A convenient machine — it tells you, on its own, when it's about to end. Humans don't come with that feature. If we did, I would have heard the alarm that May morning.
"...The tape's almost done."
"There's still three minutes."
"That story doesn't end in three minutes."
She pouted, but she turned off the camcorder. A child who knew when to cut. Folding up the tripod, she asked, as if in passing:
"Mister. That ball — did you catch it?"
"...I caught it."
"So you won the championship?"
"We won it."
"Then why do you have that look on your face?"
I didn't answer. She didn't ask again. Only, shouldering her bag, she left one line behind.
"Next session, we start from what happened after you caught it."
The bell rang and the door closed. I sat in the empty shop for a long time. On the counter, the two empty coffee cans she'd left stood side by side. A fourteen-year-old who leaves you two cans of lukewarm coffee. I thought for a moment about the thing called heredity, then noticed where the thought was headed, and stopped.
My right hand went to my left shoulder on its own. The season of rain was still a long way off, yet the old nail in my shoulder was faintly keening. A nail driven in twenty-five years ago. There were two surgeries, but a nail leaves a hole even after it's pulled.
That night,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while, I dreamed. A dream of floating in midair. The ball was in the glove, the world was still simple, and nothing was coming from the left yet. Somewhere in the stands she was watching, my mother was packing box lunches on the night shift, and seven scouts were writing something in their notebooks. Everything was in the air — still in the air.
In the dream, I knew. All I had to do was never come down. As long as I didn't come down, none of what came after would ever happen.
Of course, a person comes down. That is what the words landing point mean.
— End of Ep. 6 —
세 번째 촬영 날, 사키는 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잡은 다음 얘기부터예요."
인사도 없었다. 훌륭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인터뷰가 대부분 시시해지는 것은 본론 앞에 인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캠코더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나는 잡은 다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왼쪽에서 온 것은 켄지였다.
시속으로 치면 둘 다 이십 킬로미터를 넘었을 것이다. 인간 두 명분의 질량이 하나의 낙하지점에서 만났다. 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관중석에서는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듣지 못했다. 몸의 안쪽에서 나는 소리는 몸의 주인에게 제일 늦게 도착하는 모양이다.
하늘이 보였다. 오월의 하늘이었다. 구름이 두 개 떠 있었고, 나는 누운 채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평화로운 몇 초였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세상의 온도가 바뀌었다.
글러브 안에는 공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구급차 안에서도, 엑스레이실 앞 복도에서도. 간호사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 줄 때까지 쥐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몸이라는 것은 주인이 정신을 놓아도 마지막 업무를 계속하는 성실한 조직이다. 그날 내 몸의 마지막 업무는 아웃 카운트 하나였고, 그것은 우승이 걸린 아웃이었고, 몸은 그 업무를 완수했다.
팀은 우승했다. 나는 그 순간을 병원 천장을 보며 라디오로 들었다.
진단명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깨 속의 어떤 것들이 부서졌고, 부서진 것들 중 몇 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며 말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일상생활. 나는 그 단어를 오래 생각했다. 의사에게 야구는 일상생활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야구가 일상생활이었고, 나머지 전부가 예외였다. 같은 단어가 사람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된다. 언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공정한 심판이 아니다.
수술은 두 번 했다. 어깨에는 금속 못이 들어갔다. 첫 수술과 두 번째 수술 사이에 여름이 하나 통째로 들어 있었다. 병실의 여름은 이상한 계절이다. 창밖에서는 매미가 울고, 텔레비전에서는 고시엔 중계가 나오고, 복도에서는 슬리퍼 소리가 나고, 그 모든 것이 자기와 무관하게 진행된다. 세상의 여름과 나의 여름이 처음으로 분리된 해였다.
켄지에 대해 말해 두어야겠다.
녀석은 매일 왔다. 문자 그대로 매일. 연습이 끝나면 전철을 사십 분 타고 와서, 면회 시간 마지막 삼십 분을 채우고 갔다. 그리고 그 삼십 분 동안, 인생에서 처음으로, 켄지는 말이 없었다.
말 많은 인간의 침묵은 시끄러운 인간의 고함보다 크다. 나는 그것을 견디는 것이 어깨보다 아팠다. 열흘쯤 지난 어느 저녁, 나는 천장을 본 채로 말했다.
"……사고였어."
켄지는 한참 있다가, 물었다. "……콜, 했었냐?"
"했어."
"……난 못 들었어."
"관중이 삼만이었어."
그것이 우리가 그 충돌에 대해 나눈 대화의 전부다.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고의 당사자 두 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리였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합의하는 데에, 남자 둘은 대화 네 마디가 필요했다.
다만 그날부터 켄지는 다시 말이 많아졌고, 대신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올 때마다 뭔가를 사 오는 것이다. 푸딩이라든가, 만화 잡지라든가, 멜론빵이라든가. 한번은 삶은 계란을 열 개 사 왔다. 병문안에 삶은 계란 열 개를 사 오는 인간은 세상에 켄지뿐일 것이다. 단백질이다, 단백질, 이라고 녀석은 말했다. 어깨는 단백질로 낫는다. 의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사흘에 걸쳐 다 먹었다.
이십오 년 뒤에 내가 매일 아침 켄지에게 계란을 사다 주는 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상환이다. 이자까지 쳐서, 아주 천천히 갚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알 것이다. 알면서 계란값을 안 주는 것이다. 그것이 켄지식의 영수증 처리다.
그 사람은 병원에 매일 왔다.
회사가 끝나면 전철을 갈아타고 와서, 면회 시간이 끝나는 여덟 시까지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스케치북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는 대신 내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부서지지 않은 쪽 손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말을 접는 사람이고 나는 말을 삼키는 사람이라, 병실은 대체로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힘들지 않은 상대는 인생에 몇 명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훗날 그 몇 명 중 한 명을 십 초 만에 버리게 된다.
한 번, 그 사람이 운 적이 있다. 정확히는, 울지 않으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두 번째 수술 전날이었다. 그 사람은 여느 때처럼 오른손을 잡고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커튼을 정리하는 척했다. 정리할 필요가 없는 커튼을, 두 번. 나는 못 본 척했다. 못 본 척하는 것은 나의 특기니까. 다만 그날은 그 특기가 배려였는지 회피였는지, 지금도 판정하지 못하고 있다. 배려와 회피는 동작이 같다. 다른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것뿐이다. 배려에는 다음이 있고, 회피에는 없다.
퇴원하는 날, 그 사람은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생각 중이야."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야구를 빼면 나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의 재료가 없었다. 이십일 년 동안 낙하지점 하나만 보고 달려온 인간이 낙하지점을 잃으면, 남는 것은 달리는 법뿐이다. 방향 없이 달리는 법.
재활은 아홉 달 했다.
고무 밴드를 당기고, 도르래를 돌리고, 벽에 손가락을 짚고 기어오르게 했다. 물리치료사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라서 정직했다. 넉 달째에 그는 말했다. 일상 동작은 다 돌아올 겁니다. 나는 물었다. 던지는 건. 그는 차트를 보며 대답을 골랐고, 대답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아홉 달 뒤에 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시속 백 킬로미터로.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의 나보다 느린 공이었다.
스카우트는 일곱 명이었다. 부상 전에는, 이라는 뜻이다. 부상 후의 숫자는 세지 않았다. 영은 세는 숫자가 아니니까. 전화는 그냥, 오지 않았다. 벨이 울리지 않았을 뿐인데 — 그것이 그해의 나에게 일어난 제일 큰 사건이었다.
특기생 장학금은 다음 학기부터 없어졌다. 학비를 낼 방법이 나에게는 없었다. 어머니는 야간조를 늘리겠다고 했다. 나는 자퇴서를 냈다. 어머니에게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말했다. 순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우리 집은 중요한 것일수록 말하지 않는 것으로 지키는 집이었고, 나는 그 집의 아들이었다.
자퇴서를 낸 날 저녁, 어머니와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딱 한마디 했다. "몸은." 나는 대답했다. "……어." 그것이 우리 모자가 그 일에 대해 나눈 대화의 전부다. 어머니는 내 밥그릇에 생선의 큰 쪽을 올려놓았고, 나는 그것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우리 집의 언어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밥그릇 위에서.
나는 해상자위대에 지원했다.
왜 하필 바다였느냐고 사키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바다에는 외야가 없으니까."
농담이 아니었다. 야구가 보이는 곳, 야구가 들리는 곳, 야구의 냄새가 나는 곳에서 최대한 먼 장소가 필요했다. 일본에서 그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바다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계산은 틀렸다. 함내 라디오에서는 야구 중계가 나왔다. 도망이라는 것은 대개 그런 식으로 실패한다. 사람은 장소에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자기가 사랑했던 것의 전파 범위에서는 도망치지 못한다.
지원을 결정하고 나서 그 사람에게 말한 것은 일주일 뒤였다. 가이엔의 은행나무 길에서였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의 은행나무는 노란 터널이었던 계절과 같은 나무라고 믿기 어렵다. 나는 걸으면서, 삼킬 수 있는 데까지 삼키다가, 더 삼킬 수 없게 되었을 때 말했다.
"……배 탄다. 자위대."
그 사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 걸음, 네 걸음. 그리고 물었다.
"언제."
"사월."
"얼마나."
"……몰라. 일단은, 몇 년."
그 사람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천천히. 그리고 말했다. "그렇구나." 그 세 글자에 무엇이 접혀 들어갔는지, 나는 헤아리지 않았다.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 침몰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갔고, 남의 침몰을 —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남이라 해도 — 볼 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안다. 침몰하는 배가 두 척일 때,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 제일 빨리 가라앉는 방법이라는 것을.
입대하는 날, 그 사람은 역까지 왔다. 그리고 개찰구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입장권을 한 장 사서, 나와 나란히 개찰구를 통과했다. 플랫폼까지 배웅할게, 라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했다. 그 사람다운 방식이었다. 플랫폼에서 우리는 악수를 했다. 연인이 악수를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그것이 최대 출력이었다. 포옹은 너무 컸고, 말은 너무 작았고, 악수가 그 중간에 있었다.
"편지 쓸게." 그 사람이 말했다.
"어."
"몸 조심해."
"어."
한 글자짜리 대답 두 개를 남기고, 나는 들어온 열차에 올라탔다. 문가에 선 채로 돌아봤다. 그 사람은 플랫폼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손을 흔들지도, 울지도 않고, 그냥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넣었다. 문이 닫히고 플랫폼이 뒤로 흐르기 시작한 뒤에도, 그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그것이 스물두 살의 봄이었다. 우리의 연애는 오 년째에 접어들고 있었고, 오 년째의 연애가 편지라는 가장 얇은 형태로 압축되려 하고 있었다. 압축이라는 것은 무손실이 아니다. 압축할 때마다 무언가가 조금씩 깎여 나간다. 깎여 나간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전부 잃고 나서야 목록이 만들어진다.
"질문 있어요." 사키가 손을 들었다. "그 여자친구는요? 배 타러 갈 때."
"……역까지 왔어."
"울었어요?"
"안 울었어."
"아저씨는요?"
"안 울었어."
"둘 다 이상해요." 아이는 노트에 뭔가를 적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도 그래. 안 우는 사람이 제일 이상해. 참는 게 버릇 되면 나중에 어디서 우는지도 까먹는대요. 할머니가 그랬어요."
나는 그 열네 살의 할머니가 한 말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어디서 우는지도 까먹는다. 정확한 진단이었다. 나는 마흔여섯이고, 마지막으로 운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까먹었다는 것이다. 장소도, 방법도.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아이는 캠코더를 껐다. "다음번엔 배 탄 얘기랑 — 그 언니랑 어떻게 됐는지."
"……그 얘기는."
"알아요. 길어지겠죠." 아이는 삼각대를 접으며 나를 봤다. "긴 얘기 하라고 테이프가 있는 거예요."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텅 빈 가게에 앉아, 방금 한 이야기와 하지 않은 이야기의 목록을 만들었다. 한 이야기 — 충돌, 병원, 자퇴, 입대. 하지 않은 이야기 — 커튼을 두 번 정리하던 등, 악수, 계단에서의 마지막 돌아봄.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이야기가 하나. 시월의 골목.
테이프에 담기는 인생과 담기지 않는 인생이 있다. 담기지 않는 쪽이 대개 진짜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아이의 테이프가 다 차기 전에, 담기지 않는 쪽을 한 번은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 예감은 두려움과 아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조금 달랐다. 두려움은 피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은 —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 기다려지는 두려움이었다.
— 7화 끝 —
三度目の撮影の日、咲希はドアを開けるなり言った。
「捕ったあとの話からです」
挨拶もなかった。立派な態度だと私は思った。世の中のインタビューの大半がつまらなくなるのは、本題の前に挨拶が多すぎるからだ。
カムコーダーに赤いランプが灯り、私は捕ったあとの話を始めた。
左から来たのは健二だった。
時速にすれば、二人とも二十キロは超えていただろう。人間二人分の質量が、ひとつの落下地点で出会った。音は覚えていない。観客席では何かの折れる音が聞こえたというが、当の私には聞こえなかった。体の内側で鳴る音は、体の持ち主にいちばん遅く届くものらしい。
空が見えた。五月の空だった。雲がふたつ浮かんでいて、私は仰向けのままそれを見ていた。妙に平和な数秒だった。それから左肩で、世界の温度が変わった。
グラブの中には、ボールがあった。
私はそれを離さなかった。担架で運び出されるあいだも、救急車の中でも、レントゲン室の前の廊下でも。看護師が指を一本ずつ開いてくれるまで握っていたそうだ。本人は覚えていない。体というものは、持ち主が気を失っても最後の業務を続ける、誠実な組織だ。あの日の私の体の最後の業務はアウトカウントひとつで、それは優勝のかかったアウトで、体はその業務を全うした。
チームは優勝した。私はその瞬間を、病院の天井を見ながらラジオで聴いた。
診断名は正確に覚えているが、ここでは省く。要約すればこうだ。肩の中のいくつかのものが壊れ、壊れたもののうちいくつかは、元の場所には戻らない。医者はレントゲンを見ながら言った。「日常生活には支障ありません」
日常生活。私はその言葉を長いこと考えた。医者にとって、野球は日常生活ではなかった。私にとっては野球が日常生活で、残りの全部が例外だった。同じ言葉が、人によって正反対の判決になる。言葉というものは、その意味で、あまり公正な審判ではない。
手術は二度した。肩には金属のピンが入った。一度目の手術と二度目の手術のあいだに、夏がひとつ丸ごと挟まっていた。病室の夏は奇妙な季節だ。窓の外では蝉が鳴き、テレビでは甲子園の中継が流れ、廊下ではスリッパの音がして、そのすべてが自分と無関係に進んでいく。世界の夏と私の夏が、初めて切り離された年だった。
健二について、言っ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あいつは毎日来た。文字どおり毎日。練習が終わると電車に四十分乗って来て、面会時間の最後の三十分を埋めて帰った。そしてその三十分のあいだ、人生で初めて、健二は無口だった。
口数の多い人間の沈黙は、うるさい人間の怒鳴り声より大きい。私はそれに耐えるほうが、肩より痛かった。十日ほど過ぎたある夕方、私は天井を見たまま言った。
「……事故だった」
健二はしばらくしてから、訊いた。「……コール、してたか?」
「した」
「……俺は聞こえなかった」
「観客が三万人いた」
それが、あの衝突について私たちが交わした会話のすべてだ。二十五年経った今でも。事故の当事者二人にできる最善の整理だったと、私は今でも思う。誰のせいでもないことを誰のせいでもないと合意するのに、男二人には四つの台詞が必要だった。
ただ、その日から健二はまたよく喋るようになり、代わりに妙な癖がついた。来るたびに何か買ってくるのだ。プリンとか、漫画雑誌とか、メロンパンとか。一度など、ゆで卵を十個買ってきた。見舞いにゆで卵を十個買ってくる人間は、世界に健二だけだろう。タンパク質だ、タンパク質、とあいつは言った。肩はタンパク質で治る。医学的根拠はなかったが、私はそれを三日かけて食べきった。
二十五年後、私が毎朝健二に卵を買っていってやるのは、つまり一種の返済だ。利子をつけて、ごくゆっくり返しているのだ。あいつがそれを知っているの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たぶん知っている。知っていて卵代を払わないのだ。それが健二式の領収書処理だ。
あの人は、病院に毎日来た。
会社が終わると電車を乗り継いで来て、面会時間の終わる八時までいた。絵を描く人が、スケッチブックを一度も出さなかった。描く代わりに、私の右手を握っていた。壊れなかったほうの手を。何を話したかは覚えていない。たぶん、たいした話はしなかったのだろう。あの人は言葉を畳む人で、私は言葉を呑み込む人だから、病室はおおむね静かだった。静かでいることが苦にならない相手は、人生に何人も現れない。私はそれを知りながら、のちにその何人かのうちの一人を、十秒で捨てることになる。
一度、あの人が泣いたことがある。正確には、泣くまいとするのを見たことがある。二度目の手術の前日だった。あの人はいつものように右手を握っていて、ふいに立ち上がって窓辺へ行った。カーテンを直すふりをした。直す必要のないカーテンを、二度。私は見ないふりをした。見ないふりは私の特技だから。ただ、あの日のあの特技が思いやりだったのか回避だったのか、いまだに判定できずにいる。思いやりと回避は、動作が同じだ。違うのは、そのあとに来るものだけだ。思いやりには次があり、回避にはない。
退院の日、あの人は訊いた。「これからどうするの?」
「……考えてる」
嘘だった。私は何も考えていなかった。野球を除けば、私には考えというものの材料がなかった。二十一年間、落下地点ひとつだけを見て走ってきた人間が落下地点を失えば、残るのは走り方だけだ。方向のない走り方。
リハビリは九か月やった。
ゴムバンドを引き、滑車を回し、壁に指をついて這い上がらせられた。理学療法士はいい人で、いい人だから正直だった。四か月目に彼は言った。日常の動作は全部戻りますよ。私は訊いた。投げるのは。彼はカルテを見ながら答えを選び、答えを選ぶということ自体が答えだった。
九か月後、私はボールを投げられるようになった。時速百キロで。高校一年の夏の私より遅いボールだった。
スカウトは七人だった。怪我の前は、という意味だ。怪我のあとの数字は数えなかった。零は数える数字ではないから。電話はただ、来なかった。ベルが鳴らなかっただけなのに — それがその年の私に起きた、いちばん大きな事件だった。
特待生の奨学金は、次の学期からなくなった。学費を払う方法は私にはなかった。母は夜勤を増やすと言った。私は退学届を出した。母には、学校を辞めてから言った。順序が間違っていることはわかっていた。ただ、うちは大事なことほど口にしないことで守る家で、私はその家の息子だった。
退学届を出した日の夕方、母と飯を食った。母はひとことだけ言った。「体は」私は答えた。「……ああ」それが、あ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母子が交わした会話のすべてだ。母は私の茶碗に魚の大きいほうをのせ、私はそれを残さず食べた。うちの言語はそういうふうに作動する。茶碗の上で。
私は海上自衛隊に志願した。
どうしてよりによって海だったのか、と咲希が訊いた。私は少し考えて答えた。
「……海には、外野がないから」
冗談ではなかった。野球が見える場所、野球が聞こえる場所、野球の匂いのする場所から、できるだけ遠い場所が必要だった。日本でその条件を満たすのは海だけだった。あとでわかることだが、その計算は間違っていた。艦内のラジオでは野球中継が流れた。逃亡というものは、たいていそういうふうに失敗する。人は場所からは逃げられても、自分が愛したものの電波の届く範囲からは逃げられない。
志願を決めてからあの人に言ったのは、一週間後だった。外苑のいちょう並木でだった。葉のすっかり落ちた冬のいちょうが、黄色いトンネルだった季節と同じ木だとは信じがたい。私は歩きながら、呑み込めるところまで呑み込み、それ以上呑み込めなくなったとき、言った。
「……船に乗る。自衛隊だ」
あの人は歩みを止めなかった。三歩、四歩。それから訊いた。
「いつ」
「四月」
「どれくらい」
「……わからない。とりあえず、数年」
あの人は二度うなずいた。ゆっくりと。そして言った。「そっか」その三文字に何が畳み込まれていたのか、私は数えなかった。数える余裕がなかった。あのころの私は自分の沈没を管理するだけで一日が終わり、他人の沈没を——それが世界でいちばん大切な他人であっても——見る目が残っていなかった。今ならわかる。沈んでいく船が二隻あるとき、互いを見ないことが、いちばん早く沈む方法だということを。
入隊の日、あの人は駅まで来た。そして改札で帰らなかった。入場券を一枚買って、私と並んで改札を通った。ホームまで見送るね、という言葉もなく、ただそうした。あの人らしいやり方だった。ホームで私たちは握手をした。恋人同士が握手だなんて、今思えばおかしな話だが、あのときの私たちにはそれが最大出力だった。抱擁は大きすぎて、言葉は小さすぎて、握手がその中間にあった。
「手紙、書くね」あの人は言った。
「ああ」
「体に気をつけて」
「ああ」
一文字の返事を二つ残して、私は入ってきた列車に乗り込んだ。扉のそばに立ったまま振り返った。あの人はホームにそのまま立っていた。手を振りもせず、泣きもせず、ただ立ってこちらを見ていた。私はその姿を目に収めた。扉が閉まり、ホームが後ろへ流れはじめたあとも、あの人は同じ場所に立っていた。窓の外に見えなくなるまで、ずっと。
それが二十二歳の春だった。私たちの恋愛は五年目に入っていて、五年目の恋愛が、手紙といういちばん薄い形式に圧縮されようとしていた。圧縮というものは無損失ではない。圧縮するたびに、何かが少しずつ削られていく。削られたものが何だったのかは、すべてを失ってから目録ができあがる。
「質問があります」咲希が手を挙げた。「その彼女は? 船に乗りに行くとき」
「……駅まで来た」
「泣きました?」
「泣かなかった」
「おじさんは?」
「泣かなかった」
「ふたりとも変です」子どもはノートに何か書きつけながら言った。「うちのお母さんもそう。泣かない人がいちばん変。我慢が癖になると、あとでどこで泣くのかも忘れちゃうんだって。おばあちゃんが言ってました」
私はその十四歳のおばあちゃんが言ったことについて、少し考えた。どこで泣くのかも忘れる。正確な診断だった。私は四十六で、最後に泣いたのがいつだったか思い出せない。思い出せないというのは、忘れたということだ。場所も、方法も。
「今日はここまでにします」子どもはカムコーダーを切った。「次は船の話と——あのお姉さんとどうなったか」
「……その話は」
「わかってます。長くなるんでしょ」子どもは三脚を畳みながら私を見た。「長い話をするために、テープはあるんです」
ベルが鳴り、ドアが閉まった。私はがらんとした店に座って、いま話した話と、話さなかった話の目録を作った。話した話——衝突、病院、退学、入隊。話さなかった話——カーテンを二度直していた背中、握手、階段での最後の振り返り。そして、これからも話さないだろう話がひとつ。十月の路地。
テープに収まる人生と、収まらない人生がある。収まらないほうが、たいてい本物だ。けれどその夜、私は初めてこんなことを考えた。あの子のテープがいっぱいになる前に、収まらないほうを一度は話すこと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その予感は恐れとよく似た形をしていたが、よく見ると少し違っていた。恐れは避けたいものであり、それは——なんと呼べばいいのだろう——待ち遠しい恐れだった。
— 第7話 終 —
On the third day of filming, Saki spoke the moment she opened the door.
"Start from after you caught it."
No greeting. An admirable attitude, I thought. Most interviews in this world turn dull because there are too many greetings before the main subject.
The red light came on the camcorder, and I began the story of what came after the catch.
What came from the left was Kenji.
In terms of speed, we must both have been doing over twenty kilometers an hour. The mass of two human beings met at a single landing point. I don't remember the sound. People in the stands said they heard something break, but I myself never heard it. A sound made inside the body, it seems, reaches the body's owner last of all.
I saw the sky. A May sky. Two clouds were drifting in it, and I lay on my back watching them. It was a strangely peaceful few seconds. And then, in my left shoulder, the temperature of the world changed.
Inside the glove was the ball.
I never let go of it. Not while they carried me off on the stretcher, not in the ambulance, not in the corridor outside the X-ray room. They say I held on until a nurse pried my fingers open one by one. I don't remember it myself. The body is a diligent organization that carries on with its final task even after its owner has lost consciousness. That day, my body's final task was a single out — the out that decided the championship — and the body saw the task through.
The team won the title. I heard the moment on the radio, staring at a hospital ceiling.
I remember the diagnosis precisely, but I will omit it here. In summary: certain things inside the shoulder broke, and some of the broken things do not go back where they belong. The doctor looked at the X-ray and said, "There will be no impact on daily life."
Daily life. I thought about those words for a long time. To the doctor, baseball was not daily life. To me, baseball was daily life, and everything else was the exception. The same words become opposite verdicts depending on the person. In that sense, language is not an especially fair umpire.
There were two surgeries. A metal pin went into the shoulder. Between the first surgery and the second, an entire summer sat wedged. Summer in a hospital room is a strange season. Outside the window the cicadas cry, on the television the Koshien broadcast plays, in the corridor slippers shuffle past, and all of it proceeds without the slightest relation to you. It was the year the world's summer and my summer first came apart.
I should say something about Kenji.
He came every day. Literally every day. When practice ended he rode the train forty minutes, filled the last thirty minutes of visiting hours, and went home. And for those thirty minutes,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Kenji had nothing to say.
The silence of a talkative man is louder than the shouting of a loud one. Enduring it hurt more than the shoulder did. One evening, ten days or so in, I spoke with my eyes on the ceiling.
"...It was an accident."
Kenji waited a long while, then asked, "...Did you make the call?"
"I did."
"...I never heard it."
"There were thirty thousand people in the stands."
That is the whole of the conversation we ever had about the collision. Even now, twenty-five years on. It was the best settlement two parties to an accident could have managed, and I still think so. To agree that a thing that was no one's fault was no one's fault, two men needed four lines.
Only, from that day on Kenji was talkative again, and in exchange he developed a strange habit. Every time he came, he brought something. Pudding, or manga magazines, or melon bread. Once he brought ten boiled eggs. Kenji must be the only human being alive who brings ten boiled eggs to a hospital visit. Protein, he said. Protein. Shoulders heal on protein. There was no medical basis for it, but I ate every one of them over three days.
Twenty-five years later, when I bring Kenji eggs every morning, it is, in other words, a kind of repayment. With interest, paid back very slowly. Whether he knows this, I cannot say. He probably knows. He knows, and that is why he never pays for the eggs. That is Kenji's way of settling a receipt.
She came to the hospital every day.
When work ended she changed trains to get there and stayed until visiting hours closed at eight. A person who drew, and she never once took out her sketchbook. Instead of drawing, she held my right hand. The hand that hadn't broken. What we talked about, I don't remember. Probably nothing much. She was a person who folds her words and I am a person who swallows mine, so the hospital room was mostly quiet. People with whom quiet is no burden appear only a few times in a life. I knew that, and later I would throw one of those few away in ten seconds.
Once, she cried. To be precise, I saw her trying not to. It was the day before the second surgery. She was holding my right hand as always when she suddenly rose and went to the window. She pretended to fix the curtains. Curtains that needed no fixing, twice. I pretended not to see. Pretending not to see is my specialty, after all. Only, whether that specialty was consideration or evasion that day, I have yet to rule. Consideration and evasion are the same motion. What differs is only what comes after. Consideration has a next; evasion has none.
The day I was discharged, she asked, "What will you do now?"
"...I'm thinking about it."
It was a lie. I was thinking about nothing. Take away baseball and I had no material for the thing called thought. When a man who has spent twenty-one years running with his eyes on a single landing point loses the landing point, all that remains is the way of running. Running with no direction.
Rehabilitation took nine months.
I pulled rubber bands, turned pulleys, walked my fingers up a wall. The physical therapist was a good man, and being a good man, he was honest. In the fourth month he said, your everyday movements will all come back. I asked, and throwing? He looked at the chart and chose his answer, and the choosing of an answer was itself an answer.
Nine months later I could throw a ball again. At a hundred kilometers an hour. A slower ball than I had thrown in the summer of my first year of high school.
There were seven scouts. Before the injury, that is. The number after the injury I did not count. Zero is not a number you count. The phone simply did not ring. Nothing happened but a bell not ringing — and that was the biggest event of my year.
The athletic scholarship ended with the next term. I had no way to pay tuition. My mother said she would take on more night shifts. I submitted my withdrawal. I told my mother only after I had left the school. I knew the order was wrong. But ours was a house that protected its most important things by not speaking them, and I was that house's son.
The evening I submitted the withdrawal, I ate dinner with my mother. She said exactly one thing: "Your body." I answered, "...Yeah." That is the whole of the conversation mother and son ever had on the matter. She laid the larger half of the fish on my rice, and I ate all of it. That is how the language of our house operates. Over rice bowls.
I applied to the Maritime Self-Defense Force.
Why the sea, of all places, Saki asked. I thought a moment and answered.
"...Because the sea has no outfield."
It was not a joke. I needed a place as far as possible from anywhere baseball could be seen, heard, or smelled. In Japan, the only place that met the condition was the sea. As I would learn later, the calculation was wrong. The ship's radio carried baseball broadcasts. That is generally how escape fails. A person can flee a place, but not the broadcast range of the thing he loved.
It was a week after deciding that I told her. On the ginkgo avenue at the Gaien. The winter ginkgos, their leaves all fallen, are hard to believe the same trees that had once been a yellow tunnel. Walking, I swallowed as much as could be swallowed, and when I could swallow no more, I said it.
"...I'm getting on a ship. The Self-Defense Force."
She did not stop walking. Three steps, four. Then she asked,
"When."
"April."
"How long."
"...I don't know. A few years, for now."
She nodded twice. Slowly. And she said, "I see." What had been folded into those two small words, I did not count. I had no room to count. In those days, managing my own sinking took the whole of every day, and I had no eyes left for anyone else's sinking — even when that someone was the most precious someone in the world. I understand it now. When two ships are going down, not looking at each other is the fastest way to sink.
The day I enlisted, she came to the station. And at the ticket gate, she did not turn back. She bought a platform ticket and passed through the gate beside me. Without so much as an I'll-see-you-to-the-platform — she simply did it. It was her way. On the platform, we shook hands. Lovers shaking hands — it sounds absurd now, but for us then, that was maximum output. A hug was too much, words were too small, and a handshake sat somewhere in between.
"I'll write," she said.
"Yeah."
"Take care of yourself."
"Yeah."
Leaving behind two one-syllable answers, I boarded the train that had pulled in. Standing by the door, I looked back. She was still on the platform. Not waving, not crying — just standing there, looking this way. I took the sight of her into my eyes. Even after the doors closed and the platform began to slide away, she stood in the same spot. Until she passed out of sight beyond the window. The whole time.
That was the spring of my twenty-second year. Our love was entering its fifth year, and a fifth-year love was about to be compressed into its thinnest possible format: letters. Compression is not lossless. Each time you compress, something is shaved away, little by little. What was shaved away — the list gets drawn up only after you have lost everything.
"I have a question." Saki raised her hand. "The girlfriend? When you left for the ship."
"...She came to the station."
"Did she cry?"
"She didn't."
"Did you?"
"I didn't."
"You're both weird." The girl spoke while writing something in her notebook. "My mom's like that too. The people who don't cry are the weirdest. If holding it in becomes a habit, later you forget even where to cry. My grandma said so."
I thought for a moment about what that fourteen-year-old's grandmother had said. You forget even where to cry. An accurate diagnosis. I am forty-six, and I cannot remember the last time I cried. Not remembering means having forgotten. The place, and the way.
"That's it for today." The girl switched off the camcorder. "Next time, the ship — and what happened with her."
"...That story is."
"I know. It'll be a long one." Folding the tripod, she looked at me. "Long stories are what the tape is for."
The bell rang and the door closed. I sat in the empty shop and made a list of the stories I had told and the stories I had not. Told — the collision, the hospital, the withdrawal, the enlistment. Not told — a back fixing curtains twice, a handshake, a last look back from the stairs. And one story I would never tell. An alley in October.
There are lives that fit on tape and lives that do not. The ones that do not fit are usually the real ones. But that night, for the first time, a thought came to me: before that child's tapes ran out, I might, just once, speak the side that does not fit. The premonition had a shape very much like fear, but looked at closely, it was slightly different. Fear is a thing you want to avoid, and this was — what should I call it — a fear worth waiting for.
— End of Ep. 7 —
"엄마. 전설 아저씨, 대학 때 여자친구 있었대."
사키가 식탁에서 편집 노트를 넘기며 말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접시를 헹구던 손이 반 박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수돗물 소리가 그 반 박자를 덮어 주었다. 물소리라는 것은 그런 용도로 꽤 쓸 만하다.
"……그렇구나."
"이름은 안 가르쳐 줘. 묵비권이래. 그런 게 어디 있어. 근데 그림 그리는 언니였대. 공중에 떠 있는 사람 그림을 그렸다는데 — 엄마, 그거 좀 낭만적이지 않아?"
"……그러네."
"엄마도 옛날에 그림 그렸잖아. 벽장에 있는 그 상자, 그림 도구라며."
접시가 손안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고쳐 잡고, 선반에 올리고, 수도를 잠갔다. 부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물소리라는 방패가 사라진 부엌에서, 나는 등을 보인 채 대답했다.
"……옛날 일이야."
"흐음." 사키는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아이는 급소의 위치를 아는 채로,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노트 넘기는 소리가 다시 났고, 나는 행주를 갰다. 이미 개어져 있었지만, 한 번 더.
그 여자친구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무도 인터뷰하러 오지 않는다. 버려진 쪽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다. 극적인 데가 없기 때문이다. 버려진 쪽은 그저 어제와 같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와 같은 전철을 타고, 어제와 같은 서류를 만들 뿐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방음이 잘되어 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이것은, 아무도 찍으러 오지 않는 쪽의 기록이다.
그 사람이 배를 타러 간 뒤에도, 도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제일 이상했다. 전철은 같은 시간에 왔고, 회사의 복사기는 여전히 자주 고장 났고, 점심의 정식집은 같은 된장국을 냈다. 한 사람이 통째로 빠져나갔는데 도시의 질량은 그대로였다. 도쿄라는 도시의 가장 잔인한 점은 크기다. 누가 없어져도 밀도가 유지된다.
나의 일주일은 우편함을 중심으로 재편성되었다.
편지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통 왔다. 나는 우편함을 하루 두 번 확인하는 사람이 되었다. 출근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 우편함이라는 것은 이상한 상자다.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데도 매번 같은 크기의 용기가 든다.
답장은 그날 밤에 썼다. 쓰고, 하루 재우고, 다음 날 다시 읽고 부쳤다. 하루 재우는 것은 지나치게 긴 문장들을 접기 위해서였다. 보고 싶다는 말을 세 번 쓰면 두 번을 지웠다. 무겁지 않게. 부담되지 않게. 훈련 중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게. 나의 배려는 언제나 그런 문법이었다. 훨씬 나중에 나는 알게 된다. 배려의 문법으로 쓰인 편지는, 받는 쪽에서 읽으면 거리의 문법이 된다는 것을. 무겁지 않은 편지는, 가벼운 편지가 된다는 것을.
편지의 주기가 늘어난다는 것을 나는 소인으로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통이 이 주에 한 통이 되고, 이 주가 한 달이 되었다. 편지의 내용도 얇아졌다. 훈련을 했다, 밥을 먹었다, 바다는 넓다. 나는 그 세 문장 사이의 여백을 읽으려고 애썼다. 여백을 읽는 것은 나의 특기였어야 했다. 접는 사람은 접힌 것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여백만은, 읽으려고 하면 눈이 미끄러졌다. 무서운 것 위에서 눈은 스케이트를 탄다.
어깨는 이제 안 아프냐고 두 번 물었다. 두 번 다 답장에 그 부분만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아프다는 뜻으로 읽었다. 틀린 독해였다는 것을 아는 데 이십삼 년이 걸렸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그 사람의 상처였다는 것을. 아프지 않은 어깨로도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그때의 나는 그 문법을 몰랐고, 모르는 채로 자꾸 어깨의 안부만 물었다. 상처의 주소를 잘못 알고 부친 위문편지가, 그 사람의 우편함에 몇 통이나 쌓였을 것이다.
면회는 세 번 갔다.
기지가 있는 항구 도시까지는 전철과 버스로 네 시간이 걸렸다. 첫 면회 때 그 사람은 머리를 짧게 깎았고, 얼굴이 조금 탔고, 낯선 제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항구가 보이는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다. 그 사람은 옛날처럼 삼 분 만에 먹지 않았다. 천천히, 오래 먹었다.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두 번째 면회는 겨울이었다. 바닷바람이 칼 같았다. 우리는 방파제를 걸었고, 그 사람은 배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개 했다. 항해가 어떻고, 훈련이 어떻고. 야구의 야 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금지어가 있는 대화는 금지어를 중심으로 도는 법이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두 시간 내내 야구 이야기를 한 셈이었다.
세 번째 면회 때, 부두 끝까지 배웅을 나갔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말하려고 했다.
돌아오면, 그때는 네가 먼저 말해 줘. 우리 다음 얘기.
문장은 부두의 바람 속에서 접혔다. "……아니야. 몸 조심해."
그 사람은 어, 라고 대답하고 배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등이 작아지는 것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끝까지 보지 말 걸 그랬다.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눈에 박혀서 평생 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 등을 그 후로 수백 번 그리게 된다. 한 번도 종이 위에서가 아니라, 전부 눈꺼풀 안쪽에서.
그 무렵의 도쿄에는 히가시노의 동창이 몇 명 나와 있었다.
가끔 모임이 있었다. 이자카야에 예닐곱이 모여서 고향의 축제가 어땠다느니, 누가 결혼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잘 나가지 않았지만, 나가면 반드시 있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후지사와 케이. 문화제 무대의 그 애. 졸업식 날 나에게 피크를 준 그 애.
케이는 도쿄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지 않고, 라이브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이 마을 — 아니, 그 마을 출신 중에 그런 진로를 고른 것은 케이뿐이었고, 동창들은 케이를 반쯤은 놀리고 반쯤은 부러워했다. 나는 부러워하는 쪽이었다. 결재란 없이 사는 인간을 나는 그때까지 두 명 알았다. 한 명은 바다에 있었고, 한 명은 눈앞에서 하이볼을 마시고 있었다.
한 번, 케이의 라이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동창 셋과 함께였다. 시모키타자와의 지하, 손님이 스무 명쯤 들어가는 가게였다. 케이는 세 곡을 불렀다. 두 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고, 마지막 한 곡은 — 어딘가 낯익었다. 후렴 직전에 뚝 끊기는 구성. 문화제의 그 곡이었다.
"이 곡은 아직 미완성이라." 케이는 마이크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 "후렴이 안 나와요. 몇 년째."
객석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몇 년째 미완성인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는 용기에 대해, 나는 문화제 때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나의 스케치북은 완성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물건이었으므로. 다만 그날은 한 가지 생각이 더해졌다. 저 노래는 왜 후렴이 안 나올까. 곡의 앞부분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마치 후렴에 도착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쓴 곡 같았다.
그 노래가 누구에 대한 곡인지, 그때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월의 그 밤이 왔다.
동창 모임이 있었다. 나는 그날따라 나갔다. 방에 혼자 있으면 우편함 생각만 하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편지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나 있었다.
모임이 파하고, 케이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방향이 같았고, 케이는 취해 있었고, 나는 취하지 않았다. 취하지 않은 사람이 취한 사람을 바래다주는 것 같은 밤길이었다. 케이는 걸으면서 오디션 이야기를 했다.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진 이야기. 심사위원이 한 말. 언젠가 완성할 거라는 그 노래 이야기.
집 앞 골목 — 내가 세 들어 살던 오래된 일본식 주택 앞의 좁은 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케이가 갑자기 나를 안았다.
나는 화가 났다. 놀랐고, 그다음에 화가 났다. 두 손으로 가슴을 밀어냈다. 케이는 서너 걸음 물러나서, 취한 얼굴 그대로 사과했다. 미안, 미안. 진짜 미안. 나는 됐으니까 가, 라고 말했고, 케이는 기타 케이스를 챙겨서 골목을 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시간으로 치면 이십 초쯤. 불쾌하고, 시시하고, 다음 날이면 잊을 종류의 사건이었다.
나는 방에 올라가 세수를 했다. 화가 가라앉는 데는 세수 두 번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꺼냈다. 한 달 반의 침묵에 대한 나의 대답을, 이번에는 접지 않고 쓰기로 결심한 밤이었다. 이상한 밤의 힘이라는 것이 있다. 불쾌한 일 하나가 오히려 등을 미는 밤이. 보고 싶다는 말을 첫 줄에 쓰자. 지우지 말자. 어깨 이야기는 묻지 말고, 대신 이렇게 쓰자 — 네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어. 외야수든, 자위관이든, 아무것도 아니든. 나는 네가 되는 것을 좋아한 게 아니라 너를 좋아하니까.
편지는 새벽 두 시에 완성되었다. 다섯 장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접히지 않은 다섯 장. 나는 그것을 봉투에 넣고, 풀로 붙이고, 우표까지 붙여서 가방에 넣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부치자. 그렇게 생각하며 잤다. 오래간만에 깊이 잤다.
그 편지는 부치지 못했다.
부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부쳤는데 — 아니, 순서대로 말하겠다. 나는 다음 날 아침 그 편지를 부쳤다. 우체통 앞에서 삼십 초쯤 서 있다가, 넣었다. 편지는 바다를 향해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주 뒤, 답장 대신, 내가 그 전에 보낸 편지가 돌아왔다. 그다음에는 새벽 두 시의 다섯 장도 돌아왔다. 봉투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수취인 불명.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잔인한 네 글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부대 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이동하면 우편물은 전송되는 것이 보통이다. 전송이 되지 않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본인이 전송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즉 그 사람은 어딘가로 옮겨 가면서, 나의 편지가 도착할 주소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전화도 끊겼다. 기지의 대표번호에 걸어 면회 신청을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한 번 하고 그만두었다. 전화기 너머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본인이 면회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데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이유를 아는 데 이십삼 년이 걸렸다. 그 골목의 이십 초와, 그 시월의 어느 밤이 같은 밤이었다는 것을. 내가 세수 두 번으로 씻어 낸 이십 초가,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십 초짜리 최종 판결이었다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카메라는 한 대뿐이고, 앵글은 하나뿐이고, 다른 앵글의 존재는 아주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밝혀진다.
버려진 쪽은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이유를 만든다.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내가 잘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의 목록. 답장이 늦었던 것. 면회를 세 번밖에 못 간 것. 부두에서 접은 문장. 어깨 얘기를 두 번이나 물은 것 — 어쩌면 그것이 상처였을까. 무겁지 않게 쓰느라 가볍게 읽힌 편지들. 목록은 밤마다 길어졌다. 버려진 쪽의 상상력은 검사보다 유능하다. 증거 없이도 기소할 수 있고, 피고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제일 긴 밤에는 목록이 서른일곱 항목까지 갔다. 서른일곱 개의 가설 중에 정답은 없었다. 정답은 목록 바깥에 있었다. 시월의 골목, 가로등, 이십 초.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은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자책이라는 재판의 구조적 결함이다. 피고인석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서, 진범이 딴 데 있으면 재판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부엌의 시계가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키는 어느새 방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식탁에 혼자 앉아, 미지근해진 보리차를 마셨다.
내일 딸은 또 캠코더를 메고 그 배팅센터에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그 시월의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기 앵글의 이야기를.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서른일곱 개의 가설을 세우던 그 계절에, 진범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아니 — 사실은, 그날 밤 조금 무서운 예감이 있었다. 진범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내가 화를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십 초 만에 돌아선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이십 초를 세수로 씻어 버린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밤에, 같은 골목에서, 각자의 몇 초 사이에 서로를 놓쳤다. 나는 이십 초 만에 씻어 냈고, 그 사람은 십 초 만에 돌아섰다.
보리차를 다 마시고 컵을 씻었다. 행주는, 그날 밤은, 한 번만 갰다.
— 8화 끝 —
「ママ。レジェンドのおじさん、大学のとき彼女いたんだって」
咲希が食卓で編集ノートをめくりながら言った。私は皿を洗っていて、すすいでいた手が半拍止まり、また動いた。水道の音がその半拍を覆ってくれた。水音というものは、そういう用途にけっこう使える。
「……そうなんだ」
「名前は教えてくれないの。黙秘権だって。何それ。でもね、絵を描くお姉さんだったらしいよ。宙に浮かんでる人の絵を描いてたって——ママ、それってちょっとロマンチックじゃない?」
「……そうね」
「ママも昔、絵を描いてたじゃない。押し入れのあの箱、絵の道具だって言ってたよね」
皿が手の中で滑りそうになった。私はそれを両手で持ち直し、棚に置き、水道を止めた。台所が急に静かになった。水音という盾が消えた台所で、私は背中を向けたまま答えた。
「……昔のことよ」
「ふうん」咲希はそれ以上突っ込んでこなかった。あの子は急所の位置を知ったまま、急いでいなかった。ノートをめくる音がまた聞こえ、私は布巾を畳んだ。もう畳んであったけれど、もう一度。
その彼女がその後どうなったかについては、もちろん誰もインタビューに来ない。捨てられた側の話はドキュメンタリーにならない。劇的なところがないからだ。捨てられた側はただ、昨日と同じ朝に起きて、昨日と同じ電車に乗り、昨日と同じ書類を作るだけだ。世界が崩れる音は外に漏れない。防音がよくできているのだ。人の体というものは。
だからこれは、誰も撮りに来ない側の記録である。
あの人が船に乗りに行ったあとも、街は何ひとつ変わらなかった。それがいちばん不思議だった。電車は同じ時間に来たし、会社のコピー機は相変わらずよく壊れたし、昼の定食屋は同じ味噌汁を出した。人がひとり丸ごと抜けたのに、街の質量はそのままだった。東京という街のいちばん残酷なところは大きさだ。誰がいなくなっても密度が保たれる。
私の一週間は、郵便受けを中心に再編成された。
手紙は最初、週に一通来た。私は郵便受けを一日二回確かめる人間になった。出勤前に一回、帰宅後に一回。郵便受けというのは不思議な箱だ。空っぽであることを確かめるのにも、毎回同じ大きさの勇気がいる。
返事はその夜のうちに書いた。書いて、一日寝かせて、翌日読み返してから出した。一日寝かせるのは、長すぎる文章を畳むためだった。会いたいと三回書けば、二回は消した。重くならないように。負担にならないように。訓練中の人の荷物にならないように。私の気遣いはいつもそういう文法だった。ずっとあとになって私は知ることになる。気遣いの文法で書かれた手紙は、受け取る側が読めば距離の文法になるということを。重くない手紙は、軽い手紙になるということを。
手紙の間隔が延びていくのを、私は消印で知っていた。
週に一通が二週に一通になり、二週がひと月になった。手紙の中身も薄くなった。訓練をした、飯を食った、海は広い。私はその三つの文の間の余白を読もうと努めた。余白を読むのは私の特技のはずだった。畳む人間は、畳まれたものを見分けるものだから。けれど自分の愛する人の余白だけは、読もうとすると目が滑った。怖いものの上で、目はスケートをする。
肩はもう痛くないのかと二度訊いた。二度とも、返事にはそこだけがなかった。私はそれを、痛いという意味に読んだ。間違った読解だったと知るのに二十三年かかった。痛くないことこそが、あの人の傷だったということを。痛くない肩でも、自分が何者でも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が。あのころの私はその文法を知らず、知らないまま何度も肩の安否ばかり訊いた。傷の住所を間違えて出した見舞いの手紙が、あの人の郵便受けに何通も積もっていたことだろう。
面会には三度行った。
基地のある港町までは、電車とバスで四時間かかった。最初の面会のとき、あの人は髪を短く刈っていて、顔が少し焼けていて、見慣れない制服を着ていた。私たちは港の見える食堂で定食を食べた。あの人は昔のように三分で食べたりしなかった。ゆっくり、長く食べた。時間を引き延ばす方法がそれしかない人のように。
二度目の面会は冬だった。海風が刃物のようだった。私たちは防波堤を歩き、あの人は船と海の話をいくつかした。航海がどうとか、訓練がどうとか。野球の「や」の字も出てこない話ばかりだった。私はそれが何を意味するのか分かっていた。禁句のある会話は、禁句を中心に回るものだ。私たちは二時間、野球の話をしないことで、二時間ずっと野球の話をしていたことになる。
三度目の面会のとき、埠頭の端まで見送りに出た。別れる前に、私は言おうとした。
帰ってきたら、今度はあなたから言って。私たちの、その先の話。
文章は埠頭の風の中で畳まれた。「……ううん。体に気をつけてね」
あの人は、ああ、と答えて船のほうへ歩いていった。私はその背中が小さくなるのを最後まで見ていた。あれが最後になると知っていたら、最後まで見なければよかった。最後の場面というものは目に刺さって、一生抜けない。私はその背中を、それから何百回も描くことになる。一度も紙の上でではなく、全部まぶたの裏側で。
そのころの東京には、東野の同級生が何人か出てきていた。
ときどき集まりがあった。居酒屋に六、七人が集まって、地元の祭りがどうだったとか、誰が結婚するとかいう話をした。私はそういう席にはあまり出なかったが、出れば必ずいる顔がひとつあった。藤沢慧。文化祭のステージのあの子。卒業式の日、私にピックをくれたあの子。
慧は東京で音楽をやっていた。大学には行かず、ライブハウスでアルバイトをしながらオーディションを受けて回っているという。この町——いや、あの町の出身でそんな進路を選んだのは慧だけで、同級生たちは慧を半分からかい、半分うらやんでいた。私はうらやむほうだった。決裁欄なしで生きる人間を、私はそれまでに二人知っていた。ひとりは海にいて、ひとりは目の前でハイボールを飲んでいた。
一度、慧のライブを観に行ったことがある。同級生三人と一緒だった。下北沢の地下、客が二十人ほど入る店だった。慧は三曲歌った。二曲は初めて聴く曲で、最後の一曲は——どこか聴き覚えがあった。サビの直前でぷつりと切れる構成。文化祭のあの曲だった。
「この曲はまだ未完成でして」慧はマイクに向かって笑いながら言った。「サビが出てこないんです。何年も」
客席が笑った。私も笑った。何年も未完成の歌をステージで歌う勇気について、私は文化祭のときと同じことを思った。私のスケッチブックは、完成するまでは誰にも見せない代物だったから。ただ、その日はひとつ考えが加わった。あの歌はどうしてサビが出てこないんだろう。曲の前半はもう完成しているのに。まるで、サビに辿り着くのが怖い人が書いた曲のようだった。
あの歌が誰についての曲なのか、あのときの私は想像もしていなかった。
そして、十月のあの夜が来た。
同級生の集まりがあった。私はその日に限って出かけた。部屋にひとりでいると、郵便受けのことばかり考えてしまう時期だったからだ。最後の手紙から一か月半が経っていた。
会がお開きになると、慧が送っていくと言った。方向が同じで、慧は酔っていて、私は酔っていなかった。酔っていない人間が酔った人間を送るような夜道だった。慧は歩きながらオーディションの話をした。最終まで行って落ちた話。審査員に言われたこと。いつか完成させるという、あの歌の話。
家の前の路地——私が間借りしていた古い日本家屋の前の狭い路地、その街灯の下で、慧が突然、私を抱きしめた。
私は腹が立った。驚いて、それから腹が立った。両手で胸を押し返した。慧は三、四歩下がって、酔った顔のまま謝った。ごめん、ごめん。ほんとにごめん。私は、いいから帰って、と言い、慧はギターケースを抱えて路地を出ていった。それだけだった。時間にすれば二十秒ほど。不快で、くだらなくて、翌日には忘れる類いの出来事だった。
私は部屋に上がって顔を洗った。怒りが収まるには、洗顔二回で足りた。それから机の前に座り、便箋を出した。一か月半の沈黙への私の答えを、今度は畳まずに書こうと決めた夜だった。不思議な夜の力というものがある。不快な出来事ひとつが、かえって背中を押してくれる夜が。会いたいと最初の行に書こう。消さないでおこう。肩のことは訊かず、代わりにこう書こう——あなたが何になっても構わない。外野手でも、自衛官でも、何者でもなくても。私はあなたがなる何かを好きだったんじゃなくて、あなたが好きなんだから。
手紙は午前二時に完成した。五枚だった。私の人生でいちばん畳まれなかった五枚。私はそれを封筒に入れ、糊で貼り、切手まで貼って鞄にしまった。明日の朝、出勤の途中で出そう。そう思って眠った。久しぶりに深く眠った。
その手紙は出せなかった。
出せなかったのではなく、出したのだが——いや、順番に話そう。私は翌朝、その手紙を出した。ポストの前で三十秒ほど立っていて、それから入れた。手紙は海に向かっていったはずだ。そして二週間後、返事の代わりに、私がその前に出した手紙が戻ってきた。その次には、午前二時の五枚も戻ってきた。封筒に判が押されていた。
受取人不明。
世界でいちばん正確で、いちばん残酷な五文字だった。あとで知ったところでは、部隊の異動があったらしい。異動すれば、郵便物は転送されるのが普通だ。転送されない場合はひとつしかない。本人が転送の届けを出さなかった場合。つまりあの人は、どこかへ移りながら、私の手紙が届く住所を残さなかったのだ。
電話も途絶えた。基地の代表番号にかけて面会を申し込む方法はあったが、私はそれを一度やって、やめた。電話の向こうの事務的な声が「本人が面会を望んでいません」と言うのを聞くのは、一度で十分だった。
理由を知るのに二十三年かかった。あの路地の二十秒と、あの十月のある夜が、同じ夜だったということを。私が洗顔二回で洗い流した二十秒が、誰かの人生では十秒の最終判決だったということを。人生の重要な場面はたいてい、そういうふうに設計されている。カメラは一台きりで、アングルはひとつきりで、別のアングルの存在はずっとあとに、すべてが終わってから明かされる。
捨てられた側は、理由を知らない。だから理由を作る。
私はリストを作った。私が間違えた可能性のあることのリスト。返事が遅かったこと。面会に三度しか行けなかったこと。埠頭で畳んだ文章。肩のことを二度も訊いたこと——もしかしたら、それが傷だったのか。重くならないように書いたせいで、軽く読まれた手紙たち。リストは夜ごとに長くなった。捨てられた側の想像力は検事より有能だ。証拠がなくても起訴できるし、被告はいつも自分自身だ。
いちばん長い夜には、リストは三十七項目まで行った。三十七の仮説の中に正解はなかった。正解はリストの外にあった。十月の路地、街灯、二十秒。自分がしていないことは、リストには載らない。それが自責という裁判の構造的欠陥だ。被告席に座れるのは自分だけだから、真犯人がよそにいれば、裁判は永遠に終わらない。
台所の時計が十一時を回っていた。咲希はいつの間にか部屋に入っていた。私は食卓にひとりで座り、ぬるくなった麦茶を飲んだ。
明日も娘はカムコーダーを担いで、あのバッティングセンターに行くだろう。そしていつか、あの人はカメラの前で、あの十月の話をすることになるかもしれない。自分のアングルの話を。私はそのとき初めて知ることになるだろう。私が三十七の仮説を立てていたあの季節に、真犯人がどこに立っていたのかを。
いや——本当は、その夜、少し怖い予感があった。真犯人の話を聞かされたとき、私は怒れないだろうという予感。十秒で背を向けた人を恨むことは、二十秒を洗顔で洗い流した人間には、許されないことなのかもしれない。私たちは同じ夜に、同じ路地で、それぞれの数秒のあいだに互いを見失った。私は二十秒で洗い流し、あの人は十秒で背を向けた。
麦茶を飲み終えて、コップを洗った。布巾は、その夜は、一度だけ畳んだ。
— 第8話 終 —
"Mom. Mr. Legend had a girlfriend back in college."
Saki said it from the kitchen table, flipping through her editing notebook. I was doing the dishes; the hand rinsing a plate stopped for half a beat, then moved again. The sound of running water covered that half beat. Running water is rather useful for such purposes.
"...Is that so."
"He won't tell me her name. Says he's exercising his right to silence. Who does that? But she painted, apparently — an older girl who made pictures of people floating in midair. Mom, isn't that kind of romantic?"
"...I suppose."
"You used to paint too, didn't you? That box in the closet — you said it was art supplies."
The plate nearly slipped from my hands. I caught it with both, set it on the shelf, and turned off the tap. The kitchen went suddenly quiet. In a kitchen stripped of its shield of running water, I answered with my back turned.
"...That was a long time ago."
"Hmm." Saki didn't push any further. The child knew exactly where the vital point was, and was in no hurry. The sound of turning pages resumed, and I folded the dish towel. It was already folded, but once more.
As for what became of that girlfriend afterward — no one, of course, comes to interview her. The story of the one who was left never becomes a documentary. There is nothing dramatic in it. The one who was left simply wakes to the same morning as yesterday, rides the same train as yesterday, prepares the same paperwork as yesterday. The sound of a world collapsing does not leak outside. It is remarkably well soundproofed, the human body.
So this, then, is the record of the side no one comes to film.
After he went off to his ship, the city changed nothing at all. That was the strangest part. The trains came at the same times, the office copier still broke down as often as ever, the lunch place served the same miso soup. An entire person had dropped out, and the city's mass stayed the same. The cruelest thing about Tokyo is its size. Whoever disappears, the density holds.
My week reorganized itself around the mailbox.
At first the letters came once a week. I became a person who checked the mailbox twice a day. Once before work, once after. A mailbox is a strange sort of box. Even confirming that it is empty takes the same measure of courage every time.
I wrote my replies that same night. Wrote them, let them rest a day, reread them the next day, and mailed them. The day of rest was for folding the sentences that ran too long. If I wrote I miss you three times, I erased it twice. Not too heavy. Not a burden. Nothing to weigh down a man in training. My consideration always followed that grammar. Much later I would come to learn: a letter written in the grammar of consideration, read on the receiving end, becomes the grammar of distance. A letter that is not heavy becomes a light one.
I knew from the postmarks that the letters were stretching further apart.
Once a week became once every two weeks, and two weeks became a month. The letters thinned as well. Did training. Ate meals. The ocean is vast. I strained to read the blank space between those three sentences. Reading blank space should have been my specialty — one who folds can recognize a folded thing. But only over the blank spaces of the person I loved, my eyes slid whenever I tried to read. Over frightening things, the eye skates.
Twice I asked whether his shoulder still hurt. Twice the reply was missing only that part. I read it to mean that it hurt. It took me twenty-three years to learn that this was a misreading. That not hurting was his wound. That even with a shoulder free of pain, he had become nothing at all. I did not know that grammar then, and not knowing, I kept asking after his shoulder. The get-well letters I addressed to the wrong location of his wound must have piled up in his mailbox, one after another.
I visited him three times.
The port town where the base was took four hours by train and bus. At the first visit his hair was cropped short, his face was a little tanned, and he wore an unfamiliar uniform. We ate set meals at a diner overlooking the harbor. He no longer ate in three minutes the way he used to. He ate slowly, at length. Like a man who had no other way of stretching time.
The second visit was in winter. The sea wind was like a blade. We walked along the breakwater, and he told a few stories about ships and the sea. How the voyages were, how the training went. Stories without so much as the first syllable of baseball in them. I knew what that meant. A conversation with a forbidden word revolves around the forbidden word. By not talking about baseball for two hours, we had talked about baseball the whole two hours.
At the third visit, I walked him out to the end of the pier. Before we parted, I meant to say it.
When you come back, this time you say it first. About what comes next for us.
The sentence folded itself in the wind off the pier. "...It's nothing. Take care of yourself."
He answered, yeah, and walked toward the ship. I watched his back grow smaller until the very end. Had I known it would be the last time, I should not have watched to the end. A final scene lodges itself in the eye and never comes out, not in a lifetime. I would go on to draw that back hundreds of times afterward. Never once on paper — always on the inside of my eyelids.
In the Tokyo of those days, a handful of Higashino classmates had come out to the city.
Now and then there were gatherings. Six or seven of us would crowd into an izakaya and talk about how the hometown festival had gone, or who was getting married. I rarely went to those, but whenever I did, there was one face that was always there. Fujisawa Kei. The one from the culture festival stage. The one who gave me a guitar pick on graduation day.
Kei was doing music in Tokyo. He had skipped college, worked part-time at a live house, and made the rounds of auditions. He was the only one from this town — no, that town — who had chosen such a path, and our classmates half teased him, half envied him. I was on the envying side. People who lived without an approval box on their paperwork: until then I had known two. One was out at sea, and one was in front of me, drinking a highball.
Once, I went to see Kei play. Three classmates came along. A basement in Shimokitazawa, a room that held maybe twenty people. Kei sang three songs. Two I was hearing for the first time, and the last one — was familiar from somewhere. The structure that cut off abruptly just before the chorus. It was the song from the culture festival.
"This one's still unfinished," Kei said into the microphone, smiling. "The chorus won't come. It's been years."
The audience laughed. I laughed too. About the courage it takes to sing a years-unfinished song on a stage, I thought the same thing I had thought at the culture festival — my sketchbook was a thing no one got to see before it was done. Only, that day, one more thought was added. Why won't that song's chorus come? The front of the song has long been finished. It was like a song written by someone afraid of arriving at the chorus.
Who that song was about, I could not have imagined then.
And then that October night came.
There was a class gathering. That day, of all days, I went. It was a period when being alone in my room meant thinking of nothing but the mailbox. A month and a half had passed since the last letter.
When the party broke up, Kei offered to see me home. We were headed the same way; Kei was drunk, and I was not. It was the kind of night road where the sober one walks the drunk one home. As we walked, Kei talked about auditions. About making the finals and falling short. What the judges had said. About the song he would finish someday.
In the alley in front of my place — the narrow alley before the old Japanese house where I rented a room, under the streetlight — Kei suddenly put his arms around me.
I was angry. Startled, and then angry. I pushed him back with both hands against his chest. Kei stepped back three or four paces and apologized, drunk face and all. Sorry, sorry. Really, I'm sorry. I said, just go, and Kei gathered up his guitar case and left the alley. That was all of it. Twenty seconds, if you measured it in time. Unpleasant, trivial, the kind of incident you forget by the next day.
I went up to my room and washed my face. Two washings were enough for the anger to settle. Then I sat at my desk and took out letter paper. It was the night I resolved that my answer to a month and a half of silence would, this time, go unfolded. There is such a thing as the strange power of a night — a night when one unpleasant incident pushes you forward instead. Write I miss you in the very first line. Don't erase it. Don't ask about the shoulder; write this instead — I don't care what you become. An outfielder, a sailor, nothing at all. It was never what you would become that I loved. It was you.
The letter was finished at two in the morning. Five pages. The five least folded pages of my life. I put them in an envelope, sealed it, even stamped it, and slid it into my bag. I would mail it on the way to work. So thinking, I slept. Deeply,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while.
I never got that letter to him.
Not that I failed to mail it — I mailed it, and — no, let me tell this in order. The next morning I mailed the letter. I stood in front of the postbox for some thirty seconds, then dropped it in. The letter must have set off toward the sea. And two weeks later, in place of a reply, the letter I had sent before it came back. Then the five pages from two in the morning came back too. There was a stamp on the envelope.
Addressee Unknown.
The most precise, most cruel two words in the world. As I later learned, there had been a unit transfer. When you transfer, your mail is ordinarily forwarded. There is only one case in which it is not: when the man himself files no forwarding request. Which is to say, he had moved on to somewhere, leaving behind no address where my letters could reach him.
The phone went dead as well. There remained the method of calling the base's main number to request a visit; I tried it once and stopped. Hearing the businesslike voice on the other end say, "The individual does not wish to receive visitors" — once was enough.
It took twenty-three years to learn the reason. That the twenty seconds in that alley and that certain October night were the same night. That the twenty seconds I had rinsed away with two washings of my face had been, in someone else's life, a ten-second final verdict. The important scenes of a life are usually designed this way. There is one camera, there is one angle, and the existence of another angle comes to light only much later, after everything is over.
The one who is left does not know the reason. So she manufactures one.
I made a list. A list of everything I might have done wrong. Being slow to reply. Managing only three visits. The sentence I folded on the pier. Asking twice about the shoulder — perhaps that had been the wound. The letters written so as not to be heavy, and therefore read as light. The list grew longer night by night. The imagination of the one left behind is more capable than any prosecutor. It can indict without evidence, and the defendant is always oneself.
On the longest night, the list ran to thirty-seven items. Among the thirty-seven hypotheses there was no correct answer. The correct answer lay outside the list. An October alley, a streetlight, twenty seconds. What you did not do never makes the list. That is the structural defect of the trial called self-blame. The only one who can sit in the defendant's chair is yourself, so if the true culprit is elsewhere, the trial never ends.
The kitchen clock had passed eleven. Saki had slipped off to her room at some point. I sat alone at the table and drank the barley tea gone lukewarm.
Tomorrow my daughter will shoulder her camcorder and head to that batting center again. And someday, he may end up telling the story of that October in front of her camera. The story from his angle. That is when I will learn, for the first time, where the true culprit was standing during the season I spent building thirty-seven hypotheses.
No — the truth is, that night, I had a slightly frightening premonition. A premonition that when I am finally told the true culprit's story, I will not be able to be angry. Resenting a man who turned away in ten seconds may not be permitted to a woman who washed away twenty seconds at the sink. On the same night, in the same alley, in our respective few seconds, we lost each other. I rinsed mine away in twenty; he turned away in ten.
I finished the barley tea and washed the cup. The dish towel, that night, I folded only once.
— End of Ep. 8 —
여기서부터는, 테이프에 없는 이야기다.
네 번째 촬영에서 나는 자위대 시절을 이야기했다. 함정의 하루, 훈련, 바다의 색. 사키는 성실하게 찍었고, 성실하게 지루해했다. 아이가 기다리는 것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아이는 캠코더를 끄면서 말했다. "그 언니 얘기, 언젠가는 해 주실 거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다. 기다리지 않는 것이 그 아이의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빨간 불이 꺼진 뒤의 이야기다. 열네 살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마흔여섯에게도.
스물셋의 시월, 나는 나흘짜리 휴가를 받았다.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놀라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 연락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해질 만큼 뜸해져 있었다는 사실이 절반. 그 비율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번 다시 계산해 봤지만, 지금도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편지가 가늘어져 간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몇 달의 나는 편지를 쓰다 만 것이 여러 장이었다. 훈련을 했다, 밥을 먹었다, 까지 쓰고 나면 그다음 줄이 나오지 않았다. 쓰고 싶은 문장은 따로 있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문장이었다. 외야수도 아니고, 프로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그냥 바다 위의 인원수 일(一). 그 문장을 쓸 수 없어서 편지 전체가 얇아졌다. 사람은 제일 무거운 한 문장을 빼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가볍게 만든다.
그 사람의 편지는 꾸준히 왔다. 꾸준히, 그리고 상냥하게. 어깨는 이제 안 아파? 나는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프지 않은 어깨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상냥함이라는 것은 조준이 어긋나면 오히려 상처의 위치를 알려 주는 조명이 된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상처의 주소를 한 번도 알려 준 적이 없었다. 주소를 숨긴 것은 나였고, 편지가 오배송된 책임을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인간의 비열함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조용하게 작동한다.
도쿄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그 사람이 세 들어 사는 오래된 목조 주택은 역에서 걸어서 십이 분. 나는 그 길을 외우고 있었다. 편의점을 지나고, 세탁소를 지나고, 자판기 두 대를 지나면, 가로등이 하나 있는 좁은 골목.
가로등 아래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남자였다. 남자가 그 사람을 안고 있었다. 남자의 등이 이쪽을 향하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등에 기타 케이스 같은 것이 메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기억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것은 현장검증에 응하지 않는다.
나는 십 초를 서 있었다.
십 초는 길다. 심판은 그것을 안다. 투구 하나의 판정에 주어지는 시간은 영점 몇 초다. 십 초면 판정을 백 번 할 수 있다. 아니면 — 세 발짝 걸어가서, 목소리 한 번 내면 되는 시간이다. 어이, 라든가. 뭐 해, 라든가. 두 글자면 충분했다. 두 글자에 인생 전체가 걸려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왜 걸어가지 않았는가. 이 질문을 나는 이십삼 년 동안 받아 왔다. 질문자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대답은 그동안 여러 판본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라는 판본. 배신감이었다, 라는 판본. 그러나 제일 정직한 판본은 이것이다 — 안도였다. 십 초의 어딘가에, 아주 가늘게, 안도가 있었다. 이제 저 사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언젠가 버려질 것을 기다리느니 오늘 버림받은 것으로 처리하는 쪽이 서류가 간단하다는, 파산 직전의 인간이 하는 종류의 계산. 나는 그 안도를 인정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분노는 하루면 인정할 수 있다. 슬픔은 일 년이면 된다. 안도는 — 자기 안의 제일 작고 비열한 안도는, 이십 년짜리다.
나는 돌아섰다.
돌아서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역까지의 십이 분을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걸었다. 그날 밤 안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다음 편지를 쓰지 않았고,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부대가 옮겨질 때 우편물 전송 신청서를 백지로 냈다. 백지의 서류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소리가 안 나는 이별 통보다.
훗날 나는 심판이 되어 배웠다. 구심의 판정에는 철칙이 하나 있다. 끝까지 보고 나서 콜을 한다. 공이 미트에 들어가기 전에 콜을 하는 심판은 심판이 아니다. 그날 골목의 나는 공이 아직 공중에 있는데 콜을 했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에서.
십 초만 더 봤다면 무엇이 보였을지, 나는 이십삼 년 뒤에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한참 뒤의 이야기다.
바다의 나머지 시간은 빨리 흘렀다.
배 위의 일 년은 지상의 일 년보다 짧다. 풍경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수평선은 매일 같은 높이에 있었고,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갑판을 닦았다. 어깨는 그 무렵에는 거의 완치라고 불러도 좋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완치라는 말의 공허함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백 킬로미터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완치였다.
소등 후의 함내에서는 라디오가 있었다. 담당 하사가 야구 중계를 틀었다. 나는 처음에는 침상에서 귀를 막았다. 다음에는 막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 이것이 문제인데 — 듣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고. 구질을 예상하고. 심판의 콜에 혼자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면서.
어느 밤,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좌중간, 큽니다, 큽니다 — 중견수 달린다, 잡았습니다! 다이빙 캐치! 함내의 몇 명이 환호했고, 나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몸이 뜨거웠다. 그 뜨거움은 그리움이라는 한가한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장기 하나가 통째로 없는 인간이, 남의 몸에 든 같은 장기를 보는 뜨거움이었다.
도망은 그 밤에 공식적으로 실패했다. 장소에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전파는 수평선 너머까지 따라온다. 그리고 도망에 실패한 인간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남는다. 더 멀리 도망치거나, 돌아서서 다른 문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문의 존재를 알려 준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전역하고 반년쯤, 나는 항구 도시의 창고에서 지게차를 몰았다.
어느 토요일, 창고 근처의 풀밭에서 소년야구 시합을 봤다.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발이 멈춘 것이다. 발이라는 것은 가끔, 벤치의 사인 없이 저 혼자 움직인다. 철망 너머로 구 회를 다 봤다. 그리고 철망 이쪽에, 나처럼 서서 보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사쿠라 — 맞지?"
옛 스카우트였다. 부상 전에 백네트 뒤에 앉아 있던 일곱 명 중 한 명. 지금은 지방을 돌며 아이들을 본다고 했다. 우리는 철망 앞에서 한 시간을 서서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그가 오십오 분을 말하고 내가 오 분을 말했다. 헤어지기 전에 그는 명함을 주며 말했다.
"어깨는 부서졌어도, 네 눈은 안 부서졌잖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명함을 받았다. 이해는 사흘 뒤의 새벽에 왔다. 잠이 안 와서 천장을 보다가, 문득. 눈. 낙하지점을 읽는 눈. 스트라이크와 볼을 가르는 눈.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재능이었다면 — 그 재능에는 어깨가 필요 없었다.
심판. 그 두 글자를 나는 새벽 부엌에서 소리 내어 발음해 봤다. 남을 판정하는 직업. 세상을 두 쪽으로 가르고 자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직업. 사람에게 버림받고 — 버림받았다고 믿고 — 사람보다 쉬운 공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남자에게, 그보다 맞는 문은 없었다.
미국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제일 멀었기 때문이다. 야구로 돌아가되, 나를 아는 야구에서는 제일 먼 곳. 도망과 귀환을 한 장의 표로 해결할 수 있는 목적지는 지도에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플로리다로 갔다.
심판학교의 수강생은 이백 명이었고, 그중 마이너리그와 계약할 수 있는 것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십 대 일의 경쟁. 수강생의 대부분은 미국인이었고, 아시아인은 나를 포함해 셋이었고, 영어를 제일 못하는 것은 확실하게 나였다.
훈련은 새벽부터 밤까지였다. 자세, 위치 선정, 규칙, 그리고 콜. 콜이라는 것은 소리다. 스트라이크! 아웃! 세이프! 배에서부터 끌어올려서, 구장 전체에 들리도록,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것이 제일 어려웠다.
낙하지점을 읽는 눈은 이백 명 중에 첫 손가락에 꼽혔다. 자세도 위치 선정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소리였다. 목소리를 내는 훈련에서 나는 매번 지적을 받았다. 더 크게. 더 확실하게. 넌 확신이 없나? 확신은 있었다. 소리로 바꾸는 회로가 없었을 뿐이다. 평생 말을 삼켜 온 인간이,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단언하는 직업을 골랐다는 것의 우스움에 대해, 기숙사의 밤마다 나는 생각했다.
늙은 교관이 어느 날 나를 남게 했다. 완벽한 판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첫날 말했던 그 교관이다. 그는 홈플레이트 뒤에 나를 세우고, 자기가 공을 던지며 말했다.
"콜은 보고(報告)가 아니다. 선언이다. 네가 본 것을 세상에 믿게 만드는 것이다. 목소리가 작은 심판은 자기가 본 것을 자기도 안 믿는 놈이다."
공이 왔다. 바깥쪽 낮게, 존의 구석. 나는 배에서부터 끌어올렸다. 스트라이크! 창고 같은 훈련장에 내 목소리가 울렸고, 그 울림이 돌아와 내 몸을 통과했을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내가 소리를 질렀다는 것. 삼만 명의 함성 속에서 삼켜진 그 오월의 콜 이후로,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목소리라는 것은 쓰지 않으면 몸 안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날 판정의 형태로 인양된다.
수료 성적은 이백 명 중 여섯 번째였다. 나는 스무 명 안에 들어 마이너리그와 계약했다.
첫 시합은 플로리다의 낡은 구장이었다. 루키 리그. 관중은 이백 명쯤이었고, 그중 절반은 선수의 가족이었다.
시합 전, 나는 홈플레이트 뒤에 처음으로 섰다. 마스크를 쓰고, 무릎을 굽히고, 등을 낮췄다. 포수의 등 너머로 투수가 보였고, 그 너머로 외야가 보였다. 십몇 년 동안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처음으로 정면에서 보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외야수는 공을 쫓는 자리다. 심판은 공을 기다리는 자리다. 쫓는 인생에서 기다리는 인생으로. 나는 무릎의 각도를 잡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쫓는 것은 실패했다. 이번에는 기다려 보자. 공이든, 뭐든. 오는 것을 끝까지 보고, 그다음에 소리를 내자.
플레이 볼.
나의 첫 콜이 이백 명의 관중석에 울렸다. 크고, 확실하게. 교관이 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소리였다. 그날 나는 백사십 몇 개의 투구를 판정했고, 항의는 두 번 받았고, 판정을 바꾸지 않았다. 시합 후의 라커에서 늙은 구장 관리인이 지나가며 말했다. 새 심판, 목소리 좋네.
목소리 좋네. 나는 그 말을 오래 간직했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못하던 것에 대한 칭찬을 제일 오래 간직한다.
그 무렵의 나는 알지 못했다. 몇 해 뒤, 태평양 이쪽으로 한 사람이 건너오게 된다는 것을.
회사를 그만두고, 결재란 없는 인생의 첫 서류를 스스로 결재하고, 모아 둔 돈과 크로키북을 들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도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어느 토요일, 과제를 위해 마이너리그 구장의 삼루 쪽 관중석에 앉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홈플레이트 뒤에 웅크린 한 심판의 자세 위에서, 연필이 느려지게 된다는 것을.
운명이라는 단어를 나는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심판은 운명이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직업이다. 다만 사실로서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지구는 둥글고, 도망은 직선이다. 직선으로 계속 도망친 인간은 언젠가 출발점의 뒤통수에 도착한다. 나는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쳤고, 그곳은 — 측량해 보면 — 그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 지점이 아니라, 그 사람이 평생 미뤄 온 꿈의 바로 옆자리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 9화 끝 —
ここから先は、テープにない話だ。
四度目の撮影で、私は自衛隊時代のことを話した。艦の一日、訓練、海の色。咲希は真面目に撮り、真面目に退屈していた。あの子が待っているのはその話ではないと、二人ともわかっていた。撮影が終わると、あの子はカメラを止めながら言った。「あのお姉さんの話、いつかはしてくれるんですよね?」私は答えず、あの子は答えを待たずに帰っていった。待たないことが、あの子の待ち方だった。
だから、これから話すのは、赤いランプが消えたあとの話だ。十四歳にする話ではない。もしかすると、四十六歳にも。
二十三の十月、私は四日間の休暇をもらった。
前もって連絡はしなかった。驚かせてやりたいという気持ちが半分、連絡するという行為そのものがぎこちなくなるほど間遠になっていたという事実が半分。その比率については、これまで何度も計算し直してきたが、正確な数字はいまだにわからない。
手紙が細っていったことは前に話した。付け加えるなら、最後の数か月の私は、書きかけの手紙が何枚もあった。訓練をした、飯を食った、まで書くと、その先の行が出てこなかった。書きたい文章は別にあった。私はいま何者でもない、という文章だった。外野手でもなく、プロでもなく、学生でもなく、ただの海の上の頭数の一。その文章が書けなくて、手紙全体が薄くなった。人はいちばん重い一文を抜くために、残りのすべてを軽くする。
あの人の手紙は変わらず届いた。変わらず、そして優しく。肩はもう痛まない? 私はその文章を読むたびに、妙な気持ちになった。痛まなかった。痛まないことが問題だった。痛まない肩でも、私は何者でもなかったのだから。優しさというものは、照準がずれると、かえって傷の在り処を照らし出す明かりになる。あの人のせいではない。私は傷の住所を一度も教えたことがなかった。住所を隠したのは私で、手紙が誤配された責任を、私は心のどこかであの人に問うていた。人間の卑しさというものは、それくらい静かに作動する。
東京に着いたのは夕方だった。あの人が間借りしている古い木造の家は、駅から歩いて十二分。私はその道を覚えていた。コンビニを過ぎ、クリーニング屋を過ぎ、自動販売機を二台過ぎると、街灯がひとつある狭い路地。
街灯の下に、二人の人間が立っていた。
ひとりはあの人だった。もうひとりは男だった。男があの人を抱いていた。男の背中がこちらを向いていて、顔は見えなかった。その背中にギターケースのようなものが背負われていた気もするが、その記憶はあとから作られたものかもしれない。記憶というものは現場検証に応じない。
私は十秒、立っていた。
十秒は長い。審判はそれを知っている。一球の判定に与えられる時間はコンマ何秒だ。十秒あれば判定を百回できる。あるいは——三歩歩いて、一度声を出せる時間だ。おい、とか。何してる、とか。二文字で足りた。二文字に人生の全部が懸か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あのときの私は知らなかった。
なぜ歩いていかなかったのか。この問いを私は二十三年間、受け続けてきた。問う者はいつも私自身だった。答えにはこれまで、いくつもの版があった。衝撃だった、という版。裏切られたと思った、という版。だがいちばん正直な版はこれだ——安堵だった。十秒のどこかに、ごく細く、安堵があった。もうあの人の前で、何者でもない自分を説明しなくていいという安堵。いつか捨てられるのを待つより、今日捨てられたことにして処理するほうが書類が簡単だという、破産寸前の人間がする種類の計算。私はその安堵を認めるのに二十年かかった。怒りは一日で認められる。悲しみは一年あればいい。安堵は——自分の中のいちばん小さく卑しい安堵は、二十年ものだ。
私は踵を返した。
踵を返すのに一秒もかからなかった。駅までの十二分を、私は何も見ずに歩いた。その夜のうちに部隊に戻り、次の手紙を書かず、かかってきた電話に出ず、部隊が移るとき、郵便物の転送届を白紙で出した。白紙の書類というものは、世界でいちばん音のしない別れの通告だ。
のちに私は審判になって学んだ。球審の判定には鉄則がひとつある。最後まで見てから、コールする。ボールがミットに収まる前にコールする審判は、審判ではない。あの日の路地の私は、ボールがまだ空中にあるうちにコールをした。それも、人生でいちばん大きな試合で。
あと十秒見ていたら何が見えたのか、私は二十三年後に知ることになる。だがそれは、まだずっと先の話だ。
海の残りの時間は、早く流れた。
船の上の一年は、地上の一年より短い。風景が変わらないからだ。水平線は毎日同じ高さにあり、私は毎日同じ時間に甲板を磨いた。肩はそのころには、ほぼ完治と呼んでいい状態になっていた。完治という言葉の空虚さについては、すでに話した。百キロのボールを投げられる完治だった。
消灯後の艦内には、ラジオがあった。担当の海曹が野球中継をつけた。私は最初、寝床で耳をふさいだ。次はふさがなかった。その次には——これが問題なのだが——聴いていた。手に汗を握って。球種を予想して。審判のコールに、ひとりでうなずいたり、首を振ったりしながら。
ある夜、アナウンサーが興奮して叫んだ。左中間、大きい、大きい——センター走る、捕った! ダイビングキャッチ! 艦内の何人かが歓声を上げ、私は暗闇の中で天井を見ていた。体が熱かった。その熱さは、懐かしさという暇な言葉では足りなかった。それは、臓器をひとつ丸ごと失った人間が、他人の体に収まった同じ臓器を見るときの熱さだった。
逃亡はその夜、公式に失敗した。場所からは逃げられても、電波は水平線の向こうまで追ってくる。そして逃亡に失敗した人間には、二つの選択肢が残る。もっと遠くへ逃げるか、向き直って別の扉から入るか。
別の扉の存在を教えてくれたのは、思いがけない人物だった。
除隊して半年ほど、私は港町の倉庫でフォークリフトに乗っていた。
ある土曜日、倉庫の近くの草地で少年野球の試合を見た。見に行ったのではなく、通りかかって足が止まったのだ。足というものはときどき、ベンチのサインなしにひとりでに動く。金網越しに九回まで全部見た。すると金網のこちら側で、私と同じように立って見ていた男が声をかけてきた。
「朝倉——だよな?」
昔のスカウトだった。怪我の前、バックネット裏に座っていた七人のうちの一人。いまは地方を回って子どもたちを見ているという。私たちは金網の前で一時間、立ち話をした。正確には、彼が五十五分話し、私が五分話した。別れ際、彼は名刺を差し出して言った。
「肩は壊れても、おまえの眼は壊れてないだろう」
私はその言葉を理解しないまま、名刺を受け取った。理解は三日後の明け方に来た。眠れずに天井を見ていて、ふと。眼。落下地点を読む眼。ストライクとボールを分ける眼。ボールは嘘をつかず、そのボールを最後まで見ることが私の唯一の才能だったなら——その才能に、肩は要らなかった。
審判。その二文字を、私は明け方の台所で声に出して発音してみた。他人を判定する職業。世界を二つに分け、自分はどちらにも属さない職業。人に捨てられ——捨てられたと信じ——人より簡単なボールの世界へ戻ろうとする男に、これほど合う扉はなかった。
アメリカを選んだ理由は簡単だ。いちばん遠かったからだ。野球には戻るが、私を知っている野球からはいちばん遠い場所。逃亡と帰還を一枚の切符で解決できる目的地は、地図に一つしかなかった。
そうして私はフロリダへ行った。
審判学校の受講生は二百人で、そのうちマイナーリーグと契約できるのは二十人あまり。十倍の競争だった。受講生の大半はアメリカ人で、アジア人は私を入れて三人、英語がいちばん下手なのは、間違いなく私だった。
訓練は夜明けから夜までだった。姿勢、位置取り、ルール、そしてコール。コールというのは声だ。ストライク! アウト! セーフ! 腹から引き上げて、球場全体に届くように、一点の迷いもなく。
私には、それがいちばん難しかった。
落下地点を読む眼は、二百人の中で指折りだった。姿勢も位置取りも問題なかった。問題は声だった。声を出す訓練で、私は毎回指摘を受けた。もっと大きく。もっとはっきり。おまえは確信がないのか? 確信はあった。声に変える回路がなかっただけだ。生涯、言葉を呑み込んできた人間が、よりによって世界でいちばん大きな声で断言する職業を選んだことの可笑しさについて、寮の夜ごとに私は考えた。
老教官がある日、私を残らせた。完璧な判定など存在しない、と初日に言ったあの教官だ。彼はホームプレートの後ろに私を立たせ、自分でボールを投げながら言った。
「コールは報告じゃない。宣言だ。おまえが見たものを、世界に信じさせることだ。声の小さい審判は、自分の見たものを自分でも信じていない奴だ」
ボールが来た。外角低め、ゾーンの隅。私は腹から引き上げた。ストライク! 倉庫のような練習場に私の声が響き、その響きが戻ってきて体を通り抜けたとき、私は妙なものを感じた。自分が、声を張り上げたということ。三万人の歓声に呑まれたあの五月のコール以来、何年ぶりかのことだった。声というものは、使わずにいると体のどこかに沈んでいて、ある日、判定の形で引き揚げられる。
修了成績は二百人中六番だった。私は二十人に入り、マイナーリーグと契約した。
初めての試合は、フロリダの古びた球場だった。ルーキーリーグ。観客は二百人ほどで、その半分は選手の家族だった。
試合前、私は初めてホームプレートの後ろに立った。マスクをかぶり、膝を曲げ、背を低くした。捕手の背中越しに投手が見え、その向こうに外野が見えた。十何年ものあいだ私が立っていた場所が、初めて正面から見えた。
妙な気持ちだった。外野手はボールを追う場所だ。審判はボールを待つ場所だ。追う人生から、待つ人生へ。私は膝の角度を決めながら考えた。もしかすると、これが正しいのかもしれない。追うことには失敗した。今度は待ってみよう。ボールでも、何でも。来るものを最後まで見て、それから声を出そう。
プレイボール。
私の最初のコールが、二百人の観客席に響いた。大きく、はっきりと。教官が聞いたらうなずいただろう声だった。その日、私は百四十いくつの投球を判定し、抗議を二度受け、判定を変えなかった。試合後のロッカーで、年老いた球場の管理人が通りすがりに言った。新しい審判、いい声だな。
いい声だな。私はその言葉を長く持ち続けた。人は、自分がいちばん下手だったことへの褒め言葉を、いちばん長く持ち続ける。
そのころの私は知らなかった。何年か後、太平洋のこちら側へ、一人の人間が渡ってくることを。
会社を辞め、決裁欄のない人生の最初の書類を自分で決裁し、貯めた金とクロッキー帳を持って、ニューヨークという街に着いた人がいるということを。その人がある土曜日、課題のために、マイナーリーグの球場の三塁側スタンドに座る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を。そして、ホームプレートの後ろにうずくまる一人の審判の姿勢の上で、鉛筆が遅くなるということを。
運命という言葉を、私はあまり信用していない。審判は運命ではなく、事実を扱う職業だ。ただ、事実としてこう言うことはできる。地球は丸く、逃亡は直線だ。直線で逃げ続けた人間は、いつか出発点の後頭部に到着する。私は地球の反対側まで逃げ、そこは——測量してみれば——あの人からいちばん遠い地点ではなく、あの人が生涯先延ばしにしてきた夢の、すぐ隣の席だった。
その話は、次にしよう。
— 第9話 終 —
What follows is not on the tape.
In our fourth session, I talked about my years in the Maritime Self-Defense Force. A day aboard ship, the training, the color of the sea. Saki filmed dutifully, and was dutifully bored. We both knew that this was not the story she was waiting for. When the session ended, she said, switching off the camcorder, "The story about that woman—you'll tell it someday, right?" I didn't answer, and she left without waiting for one. Not waiting was her way of waiting.
So the story I am about to tell is the story that comes after the red light goes out. It is not a story for a fourteen-year-old. Perhaps not for a forty-six-year-old, either.
In October of the year I turned twenty-three, I was given four days' leave.
I didn't write ahead. Half of it was wanting to surprise her; half was the fact that we had drifted so far apart that the very act of getting in touch had become awkward. I have recalculated that ratio many times since, and I still don't know the exact figures.
I've already told you how the letters grew thin. Let me add this: in those last few months, I left letter after letter half-written. I would get as far as we trained, we ate, and the next line would not come. The sentence I wanted to write was a different one. Right now I am nothing. Not an outfielder, not a pro, not a student—just a headcount of one on the open sea. Because I could not write that sentence, the whole letter went thin. A person lightens everything else in order to leave out the one heaviest sentence.
Her letters kept coming. Steadily, and kindly. Does your shoulder still hurt? Every time I read that line, a strange feeling came over me. It didn't hurt. That it didn't hurt was the problem. Even with a shoulder that didn't hurt, I was nothing. Kindness, when its aim is off, becomes a lamp that only shows you where the wound is. It was not her fault. I had never once given her the wound's address. I was the one who hid the address, and somewhere in my heart I held her responsible for the letters that went astray. Human meanness operates that quietly.
I reached Tokyo in the evening. The old wooden house where she rented a room was a twelve-minute walk from the station. I knew the way by heart. Past the convenience store, past the cleaners, past two vending machines, and then a narrow alley with a single streetlamp.
Under the streetlamp stood two people.
One of them was her. The other was a man. The man was holding her. His back was to me, so I couldn't see his face. I have a feeling something like a guitar case was slung across that back, but that memory may have been manufactured later. Memory does not submit to reenactment.
I stood there for ten seconds.
Ten seconds is a long time. An umpire knows this. The time allotted to call a single pitch is a fraction of a second. In ten seconds you could make a hundred calls. Or—it is enough time to take three steps and speak once. Hey, say. Or, what's going on. One word would have been enough. That an entire life could hang on one word was something I did not yet know.
Why didn't I walk over? I have been asked that question for twenty-three years. The questioner has always been myself. Over the years, the answer has existed in several versions. The version that says: shock. The version that says: betrayal. But the most honest version is this one—relief. Somewhere inside those ten seconds, thin as a thread, there was relief. Relief that I would no longer have to stand before her and explain the nothing I had become. The kind of arithmetic a man on the verge of bankruptcy does: rather than wait to be abandoned someday, file it today as abandonment already served—the paperwork is simpler. It took me twenty years to admit that relief. Anger you can admit in a day. Grief takes a year. But relief—the smallest, meanest relief inside you—is a twenty-year term.
I turned around.
Turning took less than a second. I walked the twelve minutes back to the station seeing nothing. I returned to base that same night, did not write the next letter, did not answer the phone when it rang, and when the unit was transferred, I submitted the mail-forwarding form blank. A blank form is the quietest notice of farewell in the world.
Later, as an umpire, I learned this. There is one iron rule for calling pitches behind the plate. Watch it all the way, then make the call. An umpire who makes the call before the ball reaches the mitt is no umpire. That day in the alley, I made the call while the ball was still in the air. And in the biggest game of my life.
What I would have seen had I watched ten seconds longer, I would learn twenty-three years later. But that is still a long way off.
The rest of my time at sea passed quickly.
A year aboard ship is shorter than a year on land. Because the scenery does not change. The horizon sat at the same height every day, and every day at the same hour I swabbed the deck. By then the shoulder had reached a state you could almost call fully healed. I have already spoken of the hollowness of that phrase. It was the kind of healed that could throw a hundred-kilometer-an-hour fastball.
After lights-out, there was a radio belowdecks. The petty officer in charge would tune it to the baseball broadcasts. At first I covered my ears in my bunk. The next time I didn't. The time after that—and this was the problem—I was listening. Palms sweating. Guessing the next pitch. Nodding or shaking my head, alone, at the umpire's calls.
One night, the announcer's voice rose to a shout. Deep to left-center, it's carrying, it's carrying—the center fielder is on the run, he's got it! A diving catch! A few men in the compartment cheered, and I lay in the dark, looking at the ceiling. My body was hot. That heat was more than an idle word like nostalgia could hold. It was the heat of a man missing an entire organ, watching that same organ at work inside another man's body.
That night, the escape officially failed. You can run from a place, but radio waves follow you past the horizon. And a man whose escape has failed is left with two choices. Run farther, or turn around and enter through a different door.
The one who told me the other door existed was someone I never expected.
For about six months after my discharge, I drove a forklift at a warehouse in a port town.
One Saturday, I watched a youth baseball game on a patch of grass near the warehouse. I hadn't gone to watch; I was passing by and my feet stopped. Feet will sometimes move on their own, without a sign from the bench. I watched all nine innings through the chain-link fence. Then a man who had been standing and watching just as I was, on my side of the fence, spoke to me.
"Asakura—am I right?"
He was a scout from the old days. One of the seven who had sat behind the backstop before the injury. Now he traveled the countryside looking at kids, he said. We stood talking in front of the fence for an hour. To be exact, he talked for fifty-five minutes and I talked for five. Before we parted, he handed me his card and said,
"Your shoulder may be broken, but your eyes aren't."
I took the card without understanding what he meant. Understanding came three days later, at dawn. I was staring at the ceiling, unable to sleep, when it arrived. The eyes. The eyes that read the landing point. The eyes that divide strikes from balls. A ball never lies, and if watching that ball all the way had been my one and only talent—then that talent had no need of a shoulder.
Umpire. I stood in the kitchen at dawn and said the word out loud. A profession that passes judgment on others. A profession that splits the world in two and belongs to neither side. For a man abandoned by people—a man who believed he had been abandoned—trying to return to the world of the ball, which is easier than people, there was no door that fit better.
The reason I chose America is simple. It was the farthest away. A way back into baseball, but as far as possible from any baseball that knew me. There was only one destination on the map that could settle escape and return with a single ticket.
And so I went to Florida.
The umpire school had two hundred students, and only twenty or so of them would sign with the minor leagues. Ten-to-one odds. Most of the students were American; counting me, there were three Asians; and the worst English in the school was, beyond any question, mine.
Training ran from dawn until night. Stance, positioning, the rulebook, and the call. A call is a sound. Strike! Out! Safe! Pulled up from the belly, loud enough to carry through the whole ballpark, without a particle of hesitation.
For me, that was the hardest part.
My eyes for the landing point ranked at the top of the two hundred. Stance and positioning gave me no trouble. The trouble was the voice. In voice training I was corrected every time. Louder. Cleaner. Aren't you sure of what you saw? I was sure. I simply had no circuit for converting certainty into sound. On dormitory nights I thought about the comedy of it: a man who had spent his whole life swallowing words had chosen, of all professions, the one that declares things in the loudest voice in the world.
One day the old instructor kept me after training. The same instructor who had said, on the first day, that no such thing as a perfect call exists. He stood me behind home plate and threw the balls himself, talking as he threw.
"A call is not a report. It's a declaration. It's making the world believe what you saw. An umpire with a small voice is a man who doesn't believe his own eyes."
The ball came. Low and away, on the corner of the zone. I pulled it up from the belly. Strike! My voice rang through that warehouse of a training hall, and when the echo came back and passed through my body, I felt something strange. I had shouted. For the first time in years—since that call in May, swallowed by thirty thousand voices. A voice, left unused, sinks somewhere inside the body, until one day it is salvaged in the form of a call.
I finished sixth out of two hundred. I made the twenty and signed with the minor leagues.
My first game was in a worn-out ballpark in Florida. Rookie league. There were maybe two hundred people in the stands, and half of them were players' families.
Before the game, I stood behind home plate for the first time. I put on the mask, bent my knees, lowered my back. Over the catcher's shoulder I could see the pitcher, and beyond him, the outfield. The spot where I had stood for a dozen years was, for the first time, right in front of me.
It was a strange feeling. The outfield is a place for chasing the ball. The umpire's is a place for waiting for it. From a life of chasing to a life of waiting. Setting the angle of my knees, I thought: maybe this is the right way after all. Chasing had failed. This time, wait. For the ball, for anything. Watch what comes all the way in, and then make the sound.
Play ball.
My first call rang out over two hundred spectators. Loud, and clean. A voice the old instructor would have nodded at. That day I called a hundred and forty-some pitches, was argued with twice, and reversed nothing. In the locker room afterward, the elderly groundskeeper said in passing: nice voice, new ump.
Nice voice. I kept those words for a long time. A person keeps praise longest for the thing he was worst at.
What I did not know then was that a few years later, one person would cross to this side of the Pacific.
That there was someone who had quit her company, signed off—herself—on the first document of a life that had no approval line, and arrived, with her savings and her sketchbooks, in a city called New York. That one Saturday, for a class assignment, she would sit in the third-base stands of a minor-league ballpark. And that over the posture of an umpire crouched behind home plate, her pencil would slow.
I don't put much faith in the word fate. An umpire is in the business not of fate but of fact. But as a matter of fact, I can say this much. The earth is round, and escape is a straight line. A man who keeps fleeing in a straight line arrives, eventually, at the back of his own starting point. I fled to the opposite side of the earth, and that spot—survey it and you will find—was not the point farthest from her, but the seat right beside the dream she had postponed all her life.
That story, I will tell next time.
— End of Ep. 9 —
CHARACTERS
야구부 중견수, 등번호 8. 마을이 아는 천재 외야수
새벽 다섯 시부터 아침 연습을 하기 때문에 수업 중에는 대개 잔다. 급식은 이 인분을 삼 분 만에 먹는다. 빚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 도시락 공장 야간조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 중요한 것일수록 말하지 않는 것으로 지키는 집의 아들이다. 글러브는 낡았고 몇 번이나 꿰맨 자국이 있다. 야구부에서 제일 가난하고, 제일 잘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아침의 외야에서 완벽한 포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을 보는 아이. 말을 삼키는 사람이라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진다 — 대답은 대부분 한 글자다. 고시엔은 그에게 목표가 아니라 약속이다. 노리는 게 아니라, 꼭 가는 곳.
"공이 떠 있는 동안은 세상이 단순해져. 공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사람보다 쉬워." — 방파제에서, 미지근한 캔커피를 쥐고
고3 봄의 전학생. 미술실 창가의 소녀
전학 네 번째. 친구는 만들지 않는다, 이름은 외우게 하지 않는다, 일 년 뒤에 아무도 울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으로 지낸다 — 그것이 이 아이의 생존 요령이다. 아버지의 말이 질문이 아니라 결재인 집에서 자랐고, 어디로 떨어질지는 언제나 결재란에 적혀 있었다. 그림은 결재가 반려된 항목이라, 어느 서랍에나 숨길 수 있는 연필 한 자루로만 그린다. 방과 후에는 미술실 창가의 이젤 — 창은 외야를 향해 나 있다. 말하려던 문장을 도중에 접어 주머니에 넣는 버릇이 있고, 좋아한다는 말 대신 스케치북이 말한다. 한 해 동안 같은 사람을 수백 번 그렸고, 그중 한 장 '외야의 소년'이 공모전에 입선했다. 집에는 비밀이다. 상장은 미술실 서랍에 있다.
"……그리고 있는 동안은, 안 없어지니까." —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처음 말한 저녁
문화제 무대의 소년. 마을에서 제일 먼저 '꿈'을 입 밖에 낸 아이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 —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 이 마을에서 '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드물었으므로, 그 애는 조금 유명하다. 문화제 무대에서 부른 자작곡은 후렴 직전에 뚝 끊기는 이상한 구성이었다. 미완성이라서 그렇다고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미완성인 채로 무대에 올라오는 용기가 있는 아이 —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수백 명 앞에 서면서, 정작 한 사람 앞에서는 말을 걸지 못한다. 그의 짝사랑은 처음부터 삼각형이었다. 봄에 전학 온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외야의 등번호 8을 향해 있었고, 그는 '외야를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냈다. 노래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 잠깐 이쪽을 본 것 같았지만 — 그녀는 그 시간에도 스케치북에 다른 것을 그리고 있었다.
"이거, 줄게." — 졸업식 날 복도에서, 기타 피크 하나와 함께. 그녀는 그것이 고백인 줄 몰랐다
LOCATION
열여덟의 사월, 전학 첫날의 료코가 유타를 처음 본 곳. 조례가 시작되기도 전의 외야에서, 소년은 홀로 파울 플라이를 쫓아 완벽한 포구를 해 보였다 — 박수도 관중도 없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한 사람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