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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판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심판학교의 늙은 교관이 첫날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일종의 격려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격려가 아니라 예언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말이 있다. 받아들인 순간에는 하나의 의미였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 청구서처럼 도착하는 말.
청구서는 시월의 어느 밤에 도착했다.
구회말 투아웃, 풀카운트. 사만 명의 함성은 부풀어 오를 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런 함성은 소리라기보다 기압에 가깝다.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공이 그의 손끝을 떠났고 —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사라진다. 이십 년 동안 홈플레이트 뒤에 서 본 인간만이 아는 종류의 정적이다. 세상에 공 하나만 남는다. 하얗고, 둥글고, 시속 백사십몇 킬로미터로 날아오는, 완벽하게 무의미하고 완벽하게 절대적인 물체.
공이 미트에 꽂혔고, 나는 오른팔을 뽑았다.
스트라이크 스리. 게임 오버.
세상은 이 초쯤 조용했다. 그리고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쪽 더그아웃은 샴페인 마개처럼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고, 반대쪽은 오래된 사진 속 사람들처럼 굳었다. 나는 마스크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심판이라는 직업이다. 세상을 두 쪽으로 가르고, 자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 방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모든 채널에 같은 그래픽이 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나타내는 흰 네모, 그리고 그 바깥에 찍힌 빨간 점 하나. 공 반 개 분량의 바깥. 아나운서는 '세기의 오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커피를 끝까지 마셨다. 그런 순간에도 커피 맛은 제대로 느껴진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시스템의 기묘한 점이다.
볼·스트라이크 판정은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다. 번복할 제도도 없고, 사과할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나는 시즌이 끝나고 조용히 마스크를 반납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열세 시간 타고, 완행열차를 두 시간 타고, 태어난 마을로 돌아왔다.
그것이 대략적인 경위다. 대략적이지 않은 경위를 이야기하자면 — 그것은 훨씬 긴 이야기가 된다.
히가시노는 강과 언덕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특징을 꼽자면 편의점보다 자판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자판기의 절반쯤이 아직도 백 엔대의 캔커피를 판다는 것 정도다. 도쿄의 시간이 급행이라면 이곳의 시간은 완행이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마을 초입의 배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남긴 건물이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 것이 없다. 빚과 함께 사라졌고, 건물 하나가 남았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란 대개 그런 식으로 정리된다.
매일 아침 다섯 시 사십 분에 눈을 뜬다. 알람은 필요 없다. 이십 년 동안 시차와 싸워 온 인간의 몸에는 어딘가에 독자적인 시계가 내장되어 있고, 그 시계는 은퇴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레인에 흩어진 공을 줍는다. 어제저녁 손님들이 쳐 낸 공들이다. 보통 백이십 개에서 백사십 개 사이. 나는 그것을 하나씩 주워 바구니에 담는다. 허리를 굽히고, 줍고, 담는다. 생각이라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작업이고, 바로 그 점이 이 작업의 미덕이다.
그다음 피칭 머신 세 대에 기름을 치고, 동전함을 비우고, 장부를 쓴다. 천장의 형광등은 세 개 중 하나가 나가 있다. 갈아 끼우는 데 오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다리도 있고, 새 형광등도 창고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아침 그것을 올려다보고, 매일 그냥 지나친다. 마흔을 넘기면 인생에는 그런 품목이 하나둘 늘어 간다. 고칠 수 있지만 고치지 않는 것들. 그것들은 서랍 깊숙한 곳의 영수증처럼 조용히 쌓여서, 어느 날 문득 세어 보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있다.
점심에는 대개 상점가의 식당에서 정식을 먹는다. 가는 길에 채소 가게 앞을 지나면 아주머니들이 목소리를 낮춘다. 낮춘 목소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보통 목소리보다 잘 들린다.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마을은 나를 두 가지 항목으로 기억하고 있다. 학교를 처음으로 고시엔에 데려간 여름, 그리고 그 콜. 전설과 오심. 어느 쪽도 정정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정정 기사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 계란 좀 사다 줘. 열 개짜리."
철물점의 켄지는 셔터를 올리다 말고 그렇게 말한다. 거의 매일 아침 같은 대사를, 같은 억양으로. 고등학교 때 좌익수였고, 지금은 삼대째 철물점 주인이다. 이 마을에서 나를 흘긋거리지 않는 유일한 인간이기도 하다.
"내가 왜." 나는 말한다.
"가는 길이잖아." 그가 말한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계란을 사서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켄지는 씩 웃고, 계란값을 주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오심에 대해서도, 사라졌던 이십 년에 대해서도. 그 침묵의 대가로 치면 계란 한 팩은 터무니없이 싼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밤에는 이층의 방에서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대개는 간단한 것들이다. 파를 잔뜩 넣은 된장국, 생선 한 토막, 밥.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도마 소리와 된장 냄새에는 사람을 오늘이라는 날짜에 붙들어 매어 주는 효능이 있다. 선풍기가 고개를 젓고, 창밖에는 마을의 불빛이 몇 개. 텔레비전은 없다. 야구 중계가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는 기계를 침실에 두지 않을 정도의 분별은 나에게도 남아 있다.
그런 생활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팔월 첫 번째 토요일, 저녁 여섯 시 사십 분경이었다.
종소리가 울렸고, 세일러복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높이 묶은 머리에, 어깨에는 낡은 캠코더 가방. 아이는 가게 안을 둘러보지도 않고 최단 거리로 카운터까지 걸어왔다. 마치 오래전에 이 동선을 몇 번이고 연습해 본 사람처럼.
"저기요. 아저씨가 그 8번이에요?"
"……뭐?" 나는 장부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전설의 중견수요. 고시엔 데려갔고, 프로 갈 뻔했고, 사라졌다가, 메이저리그 심판이 된 사람."
볼펜이 반 박자 멈췄다. 반 박자는 심판에게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세이프가 아웃이 되기도 한다.
"……사람 잘못 찾았다."
"잘못 안 찾았는데요."
아이는 가방에서 복사지 두 장을 꺼내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탁, 탁. 삼십 년 가까이 묵은 신문들이었다. 담장 앞 공중에 떠 있는 열여덟 살의 내가 거기 있었다. 등번호 8. 그 옆 장에는 스물한 살의 내가 있었다. '프로 지명 확실'이라는 활자와 함께. 오래된 신문의 잉크 냄새는 복사기를 통과해도 어딘가에 남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찾았어요. 인터뷰 좀 해 주세요. 학교 방송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거든요."
"안 해."
"왜요?"
"그 얘기는 재미없어. 끝이 안 좋거든."
"끝이 안 좋은 얘기가, 제일 재미있는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겁이 없는 눈이었다. 다만 겁이 없다는 것과 상처가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나이의 눈에서 그 차이를 읽어 내는 능력을, 나는 별로 갖고 싶지 않은 경로로 습득했다.
아이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목소리를 반 톤 낮췄다. 좋은 인터뷰어는 급소의 질문 앞에서 목소리를 낮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 마지막 공. 진짜로 스트라이크였어요?"
레인 쪽에서 피칭 머신이 규칙적으로 공을 뱉고 있었다. 슝, 깡. 슝, 깡.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늘 누군가가 공을 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날도 있고, 전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날은 후자였다.
"……나가라."
"저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아이는 나가지 않았다. "근데 세상 전부가 그 공 하나로 아저씨를 판정하는 건 —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해서요.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그 문장은 이상한 각도로 들어왔다. 바깥쪽 낮게,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을 스치듯이. 치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하는 코스로. 나는 제일 시시한 질문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이름이 뭐야."
"사키요. 미즈시마, 사키."
볼펜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일 초. 이 초. 삼 초.
미즈시마라는 성은 일본에 대략 몇만 명쯤 있을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몇 페이지에 걸쳐 늘어서 있을, 지극히 평범한 성이다. 나는 그렇게 판정을 내리고 볼펜을 다시 움직였다. 이십 년간 판정으로 먹고산 남자가 그 여름에 내린 첫 번째 오심이었다. 오심의 문제는 내리는 순간에는 그것이 오심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알면 내리지 않았을 테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일수록 사람은 늦게 이해한다.
"또 올게요." 아이는 문가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두 개 다 대답, 그때 들을래요. 인터뷰랑 — 아까 그 질문이랑."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카운터의 신문 복사지를 집어 들고 쓰레기통 앞까지 갔다. 그리고 버리지 못했다. 대신 장부 밑에 끼워 넣었다. 아이가 찾으러 오면 돌려줘야 하니까, 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설명했다. 나 자신은 그 설명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이는 정말로 다시 왔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이틀째에는 카운터 앞에서 구십 도로 인사만 하고 갔다. 나흘째에는 삼백 엔을 넣고 레인에 들어갔다. 헛스윙, 헛스윙, 또 헛스윙. 어깨가 먼저 열리고 고개가 공보다 빨리 돌아가는, 야구에 관계된 인간이라면 오 초 이상 지켜보기 힘든 종류의 스윙이었다. 나는 안 보는 척하면서 전부 보고 있었다. 인간의 눈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는 잘 속아 주지 않는다.
닷새째에는 장대비가 왔다. 아이는 처마 밑에서 캠코더 가방만 품에 안은 채 비를 긋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젖어도 가방은 젖게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는 십오 분쯤 카운터에서 그 등을 보고 있다가, 수건을 던져 주고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았다. 따뜻한 쪽 버튼을 눌렀다. 여름에 따뜻한 코코아를 뽑은 것은 그 자판기를 들여놓은 이래 처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는요?" 아이가 수건을 받으며 웃었다.
"마셔."
엿새째, 아이가 또 어깨를 열었을 때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어깨 열지 마. 공 끝까지 보고."
다음 공에서 깡, 하는 소리가 났다. 금속 배트가 공의 중심을 제대로 잡았을 때 나는, 그 특유의 건조하고 기분 좋은 소리. 아이가 헬멧을 쓴 채로 홱 돌아보았다.
"지금 그거, 코칭이었죠? 저 방금 전설한테 코칭받았죠?"
"……아니야."
"카메라 켜 놓을 걸 그랬다."
그날 저녁 아이는 카운터 앞에 숙제를 펴 놓고 눌러앉았다. 나는 장부를 덮고 그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았다. 인간이 패배를 인정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다. 짧게 말하는 것.
"……딱 한 번이다. 카메라 한 대. 얼굴은 찍지 마."
"얼굴 없는 전설이 어디 있어요."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싫으면 관둬."
"……알았어요. 일단 그걸로 시작."
아이는 가방에서 촬영 동의서를 꺼냈다. 학교의 공식 양식이었고, 나는 대충 사인했다. 서명란 아래에 보호자 서명란이 있다는 것, 거기에 이미 단정한 글씨가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 보지 않기로 했는지, 정말로 보지 못했는지, 지금도 판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은 대개 그런 식이다. 슬로 비디오는 언제나 나중에야 도착한다.
봤어야 했는데.
"첫 촬영, 토요일 저녁이요." 아이가 가방을 메며 말했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이라, 아홉 시까진 끝내야 돼요."
토요일 저녁, 삼각대 위의 캠코더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는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취조받는 자세네요, 하고 아이가 웃었다. 부정할 근거가 없었다.
"질문 일 번. 지역예선 결승. 고시엔이 걸린 마지막 타구가 떴을 때 — 무슨 생각 했어요?"
"……생각 같은 건 안 해. 몸이 먼저 가."
사실이었다. 공이 떠 있는 동안, 세상은 단순해진다.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낙하지점이 있고, 도달 시간이 있고, 잡거나 못 잡거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단순함을 사랑했다.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더.
"그럼 질문 이 번." 아이가 노트를 넘겼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프로 간다던 사람이."
이십오 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캠코더의 빨간 불빛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라는 문장이 그 후로 며칠째 몸 안 어딘가에서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종이 울렸다.
"사키야, 아직이야? 아홉 시 넘—"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등이 먼저 알았다. 뇌보다, 심장보다 먼저, 등이. 몸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십팔 년쯤은 가볍게 건너뛰고, 열여덟 여름의 강변으로, 스무 살의 진구 구장으로, 한순간에 되돌아가도록. 외야수가 타구음만 듣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 간다.
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느린 턴이었을 것이다.
문가에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마흔여섯의 미즈시마 료코가, 문손잡이를 쥔 채로. 손끝이 하얘져 있었다. 형광등 두 개 분량의 빛 아래에서도 그것은 보였다.
사 초, 혹은 오 초. 텅 빈 배팅센터에 형광등의 웅웅거리는 소리만 흘렀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을 나는 직업상 잘 알고 있다.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종류의 정적이었다. 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면 이십 년 전에 던져진 공이 이제야 도착한 것인지도 몰랐다.
"……오랜만이야."
먼저 말한 것은 그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어. 오랜만."
이십 년 만의 대화치고는 경제적이었다. 두 어절. 그러나 어떤 종류의 문장은 길이와 무게가 반비례한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삼각대 뒤에서 사키가 우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캠코더의 빨간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REC. 세상 전부가 다시 보기를 그만둔 이야기를, 그 작은 기계만이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반 박자 빠르게, 료코가 대답했다.
"동창이야."
동창. 정확한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아무것도 아닌 말. 심판을 이십 년 하면 알게 된다. 정확한 판정이 반드시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키, 가자. 늦었어."
종소리가 울리고 두 사람은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빈 문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장부 밑에서 촬영 동의서를 꺼내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다.
보호자 서명: 미즈시마 료코.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류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보고도 보지 않은 쪽이다.
며칠 뒤의 저녁, 나는 그 사람과 강변의 공원을 걷게 되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사키의 촬영이 길어졌고, 데리러 온 료코가 가게 앞에서 기다렸고, 촬영이 끝나자 사키는 친구네 집에 편집 회의를 하러 간다며 자전거로 사라져 버렸다. 어른 둘만 남았다. 돌아가는 방향이 같았고, 강변을 따라 걷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리는 가끔 그런 식으로 사람의 등을 떠민다.
공원 입구에 자판기가 있었다. 삼십 년 전에도 있던 자리다. 기종은 두 번쯤 바뀌었을 텐데, 서 있는 각도는 같았다. 나는 동전을 넣고 캔커피를 두 개 뽑았다. 따뜻한 쪽 버튼을 두 번. 여름 저녁에 따뜻한 커피를 뽑는 인간은 드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판기가 낡은 탓인지, 나온 커피는 두 개 다 미지근했다.
"……미지근하네." 캔을 받아 든 료코가 말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웃었다. 이십팔 년 전의 무언가를 웃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 무언가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 사람도 내가 아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지근한 캔커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립하는, 그런 종류의 복잡한 침묵도 세상에는 있다.
우리는 걸으면서 위험하지 않은 과거만 골라서 이야기했다. 위험하지 않은 과거라는 것은 생각보다 적다. 고시엔의 알프스 스탠드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켄지가 그때도 지금도 얼마나 말이 많은지. 상점가의 다이후쿠 가게가 없어진 것. 그 정도를 다 쓰고 나면, 남는 것은 위험한 과거뿐이다.
"그림은." 나는 물었다. 질문의 후반부는 생략했다. 아직 그리나, 라는 후반부를.
"……그만뒀어." 그 사람은 캔을 두 손으로 쥐고 말했다. "꽤 오래전에."
"그런가."
"심판은, 왜 된 거야?" 이번에는 그 사람이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십팔 년짜리 대답을 캔커피 한 개 분량으로 줄이는 작업이었다.
"……공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천천히. 그 대답의 출처를 아는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이십팔 년 전의 강변에서 열여덟의 내가 했던 말을, 이 사람은 아직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리 앞에서 길이 갈라졌다. 그 사람의 집은 언덕 쪽, 나의 가게는 강 쪽.
"저기." 헤어지기 직전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때—"
문장은 거기서 접혔다. 나는 기다렸다. 심판은 기다리는 직업이다. 공이 존을 통과할 때까지, 판정은 내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잘 자."
그 사람은 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가로등 세 개 분량 멀어질 때까지 서 있었다. 빈 캔 두 개가 손안에서 미지근했다. 접힌 문장의 원형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사실만, 강변을 혼자 되짚어 걷는 내내 확인했을 뿐이다.
그날 밤 나는 창고에서 이십 년 동안 열지 않은 상자를 열었다. 매직으로 "N.Y. →"라고 쓰인 상자다. 화살표 뒤에 목적지를 쓰지 않은 것은 그때의 내가 그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 상자의 라벨은 여전히 정확하다.
심판 마스크와 프로텍터 아래에서 색 바랜 엽서가 한 장 나왔다. 연필 데생. 담장 앞 공중에 떠 있는 등번호 8의 소년. 오십 엔짜리 관제엽서에 그려진, 세상에 한 장뿐인 그림.
나는 그것을 알전구 아래에서 오래 바라보았다. 맥주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냉장고에는 보리차뿐이었고, 보리차는 이런 밤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십 년 동안 나는 내가 버려진 쪽이라고 믿어 왔다. 그 판정을 다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상 전부가 나를 그 공 하나로 판정하는 것에는 그토록 진저리를 치면서, 정작 나는 나의 이십 년을 단 한 번의 목격으로 판정해 놓고, 슬로 비디오 한 번 돌려 보지 않았던 것이다.
형광등을 갈아야겠다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물론 다음 날 아침에도 갈지 않았지만,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인생의 변화라는 것은 대개 그 정도의 크기로 시작된다. 공 반 개 분량. 존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정도의 크기로.
— 1화 끝 —
나에게는 문장을 접는 버릇이 있다.
말하려던 문장을 도중에 접어서,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커피라도 마실래, 는 커피라도, 에서 접힌다. 가지 마, 는 대개 잘 가, 로 접힌다. 종이접기와 비슷하다. 접는 횟수가 늘수록 원래의 모양은 알 수 없게 되고, 마지막에는 학인지 개구리인지 본인조차 구분할 수 없는 작은 덩어리가 남는다. 나는 그런 덩어리를 사십육 년 분량 가지고 있다. 서랍 하나는 족히 채울 것이다.
그날 밤에도 나는 하나를 접었다.
배팅센터의 문을 열었을 때, 카운터 앞 의자에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십 년 만이었다. 정확히는 이십 년하고 몇 개월. 나는 그 몇 개월까지 셀 수 있지만, 세지 않기로 한다. 세는 순간 그것은 기다림이었다는 것이 되어 버리니까.
"둘이, 아는 사이예요?"
딸이 물었을 때, 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반 박자 빠른 "동창이야"였다.
원래의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것은 여러 번 접혀서, 두 어절이 되었다. 동창이야.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아무것도 아닌 말. 접는 기술만큼은 이십 년 사이에 더 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사키를 재우고, 나는 침실의 벽장을 열었다.
제일 위 칸에 상자가 하나 있다. 이사할 때 유일하게 새로 포장하지 않은 상자. 테이프는 누렇게 바랬고, 상자 모서리는 이십 년 분량의 이사를 견디느라 무릎처럼 둥글게 닳아 있다. 나는 발판 위에 올라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골판지에 닿기 직전에 — 멈췄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어떨까. 오랫동안 잠가 둔 방의 문고리에 손을 얹는 순간, 문 너머의 공기가 손바닥에 먼저 느껴질 때가 있다. 차갑고, 밀도가 높고, 이십 년 동안 아무도 숨 쉬지 않은 공기. 그 공기를 오늘 밤 들이마실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벽장을 닫고 부엌으로 가서 보리차를 마셨다. 컵을 씻고, 행주를 개고, 이미 개어져 있던 행주를 한 번 더 갰다. 행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손이라는 것은 마음이 갈 곳을 잃으면 아무 데나 들르는 법이다.
창밖으로 언덕이 보였다. 이십팔 년 전과 같은 자리에, 같은 각도로.
이 마을에 돌아온 것은 이십팔 년 만이다. 아버지가 입원했고, 이혼 서류의 잉크가 말랐고, 딸에게는 전학 수속이 필요했다. 사람이 옛 마을로 돌아오는 이유는 대개 그런 식으로 사무적이다. 사무적인 이유를 세 개쯤 겹쳐 놓으면, 사무적이지 않은 이유 하나를 그 밑에 숨길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고향도 아니다. 내가 이 마을에 산 것은 인생에서 단 일 년 — 고등학교 마지막 한 해뿐이다. 그런데도 '돌아왔다'는 동사 말고는 쓸 말이 없다. 사람의 고향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인생의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에 등기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딸은 지금, 이십팔 년 전의 나와 똑같이 전학 서류를 들고 이 마을의 학교에 다닌다. 그런 것을 우연이라고 부를지 유전이라고 부를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처음 그 사람을 본 날에 대해 이야기해 두는 편이 좋겠다.
열여덟의 사월, 전학 첫날 아침이었다. 아버지의 전근이 우리를 이 마을에 내려놓았다. 졸업까지 일 년 남은 시점의 전학이라는 것은 다 지어진 건물에 마지막으로 끼워 넣는 벽돌 같은 것이어서, 나는 어디에도 힘을 주지 않는 법을 미리 연습해 두고 있었다. 담임을 기다리는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교사(校舍) 뒤편을 걷고 있었다. 낯선 교복, 낯선 통학로, 낯선 마을. 다만 낯설다는 것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한 학교, 아버지가 정한 이사, 아버지가 정한 장래. 우리 집에서 아버지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결재였다. 나는 결재된 서류 같은 얼굴로 걷고 있었다.
운동장 구석, 외야라고 불리는 초록의 구역에 남자아이가 하나 서 있었다.
아침 조례도 시작되기 전인데 유니폼을 입고, 혼자서, 아무도 치지 않는 공을 기다리듯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디선가 공이 떴다 — 나중에 알았지만 담장 너머 그라운드에서 상급생이 쳐 낸 파울 플라이였다 — 그리고 그 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이 저렇게 달릴 수 있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목적지를 의심하지 않는 달리기였다. 나의 인생에는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낙하지점을 몰랐다. 내가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버지의 결재란에 적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등 뒤로 느끼며 걷는 사람이었다.
그 아이는 공을 잡았다. 담장 바로 앞에서, 공중에 뜬 채로.
나는 그날 밤 노트 구석에 그 순간을 그렸다. 연필로, 아무에게도 보여 줄 생각 없이. 그것이 첫 장이었다. 그 후 일 년 동안 나는 같은 사람을 수백 번 그리게 된다. 수백 번 그리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연필은 눈보다 정직하다는 것. 눈은 좋아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연필은 좋아하는 것 앞에서 반드시 느려진다.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면 이렇게 된다.
야구 특기생이고, 등번호는 8이고, 수업 중에는 대개 잔다. 웃는 얼굴이 어색하다. 어색해서 잘 웃지 않는데, 그래서 어쩌다 웃으면 주변의 공기가 아주 조금 밝아진다. 글러브는 낡았고, 몇 번이나 꿰맨 자국이 있다. 그 꿰맨 자국의 배열을 나는 외우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남들이 세지 않는 것을 세고 있는 상태.
전학 온 지 두 달이 지난 유월, 나는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물건을 건넸다.
자판기 앞에서였다. 연습을 끝낸 그 사람이 동전을 넣으려다 말고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십 엔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나는 마침 캔커피를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방금 뽑은 것, 하나는 삼십 분쯤 전에 뽑아서 미지근해진 것.
나는 미지근한 쪽을 건넸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뜨거운 쪽을 주면 됐을 것을. 그러나 그 삼십 분 동안 내 손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뜨거움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열여덟이란 그런 나이다. 그 사람은 미지근한 커피를 받아 들고, 어색하게 웃고, 고마워, 라고 말했다. 나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 문장은 도중에 접혔다. 무엇이 접혔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접힌 것들의 문제는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접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문화제라든가, 그런 것도 있었다.
체육관 무대에서 같은 학년의 남자애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자작곡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서 '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드물었으므로, 그 애는 조금 유명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 애가 무대 위에서 잠깐 이쪽을 본 것 같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나는 그 시간에도 스케치북에 다른 것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 — 우리들의 졸업식 날 — 복도에서 기타 피크를 하나 받았다. 이거, 줄게,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나는 왜 나에게 기타 피크를 주는지 묻지 않았다. 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여덟의 나에게 세상의 질문은 하나뿐이었고, 그 질문은 외야에 서 있었다. 피크는 필통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다니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훨씬 나중에, 나는 그 피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야기의 훨씬 뒤에서 할 이야기다.
열여덟의 팔월에 대해서는, 짧게만 말하겠다. 길게 말하면 접을 수 없게 되니까.
여름 축제가 있었고, 언덕이 있었고, 불꽃이 백십육 발 올랐다. 세었으니까 정확하다. 나는 그 사람 옆에 서 있었고, 백열네 발째와 백십오 발째 사이의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의 뺨에 입을 맞췄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계획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세계에 속한 단어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접히기 전에 튀어나와 버린 문장이었다.
마지막 한 발이 오르고 어둠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이 말했다.
"……사귀자."
말줄임표까지 포함해서 네 글자였다. 훗날 나는 그 사람이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그저 그 네 글자가 백십육 발의 불꽃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 대신에. 그날 밤부터 우리는 연인이었다.
연인이 된 뒤에도 우리는 각자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말을 종이처럼 접었고, 그 사람은 말을 공처럼 삼켰다. 접는 사람과 삼키는 사람. 그 조합이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그 후로 이십팔 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의 고시엔에 대해서.
그 사람의 팀은 지역예선을 뚫고 고시엔에 갔다.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가 들썩였고, 상점가에 현수막이 걸렸고, 나는 알프스 스탠드에 있었다. 여자친구가 된 지 이 주째였다. 한여름의 콘크리트 관중석은 프라이팬 같았고, 응원단의 함성은 귀가 아니라 갈비뼈로 들어왔다. 팔천 명분의 소음 한가운데에서도 나는 외야의 8번만 보고 있었다. 소음이라는 것은 신기한 물건이다. 충분히 커지면, 오히려 한 사람만 남기고 전부 지워진다.
그해 겨울, 나는 그 사람을 그린 그림으로 현(縣)의 미술 공모전에 입선했다.
'외야의 소년'이라는 제목이었다. 담장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등번호 8. 전학 첫날 아침에 본 그 장면을, 반년 동안 수백 번의 데생으로 다듬은 끝에 완성한 그림이었다. 학교에는 알렸지만 집에는 알리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그림은 결재가 반려된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상장은 미술실에 두었다. 미술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서랍 하나를 비워 주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그보다 나은 것을 나는 별로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그 그림을 보았는지 어떤지,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알게 되는 것은 훨씬 나중, 태평양을 건넌 뒤의 일이다.
졸업에 대해서.
그 사람은 도쿄의 대학으로 갔다. 야구 특기생 — 프로 지명 확실, 이라는 활자를 이름표처럼 달고. 나도 도쿄로 갔다. 다만 미대는 아니었다. 미대에 가고 싶다는 문장은 아버지의 서재 앞에서 몇 번이나 연습되었지만, 결국 접혔다. 결재란에 적힌 것은 취직이었다. 도쿄의 평범한 회사, 평범한 사무직. 그림은 주말의 비밀이 되었다. 나의 반항은 진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 — 아버지가 모르는 연인을 계속 만난다는 것.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반항만 골라서 하는 법이다.
상경하는 날, 우리는 같은 열차의 같은 칸에 나란히 앉았다.
두 시간 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이 시골에서 교외로, 교외에서 도시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행복이라는 것은 대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불행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나는 것은 그 둘이 교체되는 순간뿐이다.
그것이 열여덟의 끝이었다. 이 마을에서의 단 한 해 — 인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던 일 년의 끝.
부엌의 시계가 열두 시를 넘겼다. 나는 개던 행주를 내려놓았다.
딸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키는 잠들면 세상 무엇으로도 깨울 수 없는 아이다. 그 점만은 나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십육 년 동안 얕게 잤다. 접어 둔 것이 많은 인간은 잠도 얕게 자는 법이다. 주머니 속의 종이들이 밤중에 부스럭거리므로.
동창이야, 라고 나는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다만 그 말은 열여덟의 불꽃과, 진구 구장의 함성과, 골목의 가로등과, 뉴욕의 코인 빨래방과, 이십 년의 태평양을 전부 접어서 만든 두 어절이었다. 펼치면 방 하나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그것을 펼칠 자신이 없어서, 벽장 제일 위 칸에 올려 두었다. 상자의 형태로.
내일 딸은 또 캠코더를 메고 그 배팅센터에 갈 것이다. 질문 노트에는 내가 흘긋 본 것만으로도 심장이 접히는 질문들이 적혀 있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 공, 진짜 스트라이크였어요.
언젠가 그 카메라는 나에게도 향할 것이다. 아이의 카메라란 그런 것이다. 어른들이 서로 보여 주지 않기로 합의한 것들을, 합의한 적 없는 존재가 정면으로 찍는다.
그때 나는 무슨 문장을 접게 될까. 아니면 —
이십팔 년 만에 처음으로, 접지 않게 될까.
보리차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마셨다. 미지근한 것을 건네는 쪽이 아니라 마시는 쪽이 되는 데에, 이십팔 년이 걸린 셈이다.
며칠 뒤의 저녁, 나는 그 사람과 강변의 공원을 걷게 되었다.
사키를 데리러 갔는데 촬영이 길어졌고, 끝나자마자 딸은 편집 회의라며 자전거로 사라졌다. 아이들은 가끔 자신이 무엇을 설계하고 사라지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한다. 그 아이는 특히 그렇다. 어른 둘이 남았고, 돌아가는 방향이 같았고, 이 마을에서 그것은 함께 걷는다는 뜻이 된다.
공원 입구의 자판기 앞에서 그 사람이 동전을 넣었다. 나는 그 손가락이 버튼을 고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따뜻한 쪽을, 두 번.
여름 저녁이었다. 아무도 여름 저녁에 따뜻한 캔커피를 뽑지 않는다. 이십팔 년 전의 미지근한 캔 하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 말고는. 나는 그 등을 보며, 이 사람의 기억력이 원망스러운 것인지 고마운 것인지 잠시 판정을 내리지 못했다.
자판기가 낡은 탓에 커피는 두 개 다 미지근하게 나왔다. 세상은 가끔 그런 식으로 완벽한 농담을 준비해 둔다.
"……미지근하네." 나는 말했다. 그리고 웃어 버렸다. 웃을 생각은 없었는데, 웃음이라는 것은 접히기 전에 튀어나오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위험하지 않은 과거만 골라서 이야기하며 걸었다. 고시엔, 켄지, 없어진 다이후쿠 가게. 안전한 화제라는 것은 금방 바닥난다. 과거라는 창고에서 안전한 선반은 한 칸뿐이고, 나머지 선반에는 전부 손대면 무너지는 것들이 쌓여 있다.
"그림은." 그 사람이 물었다.
"……그만뒀어. 꽤 오래전에."
접은 문장이었다. 원형은 이렇다 — 그만뒀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붓을 잡는 손이 냉장고에 붙일 유치원 안내문에 학부모 사인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지. 너를 이십 년 만에 본 그날 밤부터, 오른손이 자꾸 연필의 무게를 기억해 내려고 해.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캔을 두 손으로 쥐었다. 손이 갈 곳을 잃으면 아무 데나 들르기 전에, 쥘 것을 주는 편이 좋다.
"심판은, 왜 된 거야?" 내가 물었다.
"……공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
나는 두 번 끄덕였다. 천천히. 그 문장의 출처를 나는 알고 있다. 이십팔 년 전의 강변, 열여덟의 그 사람이 물수제비를 뜨다 말고 했던 말. 공이 떠 있는 동안은 세상이 단순해져. 공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사람보다, 쉬워. 그때 나는 그 말이 야구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제출한, 가장 긴 자기소개였다.
다리 앞에서 길이 갈라졌다. 그 사람의 가게는 강 쪽, 나의 집은 언덕 쪽.
"저기." 나는 말했다. "그때—"
그때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어.
이십 년 동안 서랍 제일 깊은 곳에 넣어 둔 문장이었다. 꺼내 보니 하나도 낡지 않았다. 그런 문장일수록 방부제가 잘 듣는다. 나는 그것을 입 밖에 내기 직전까지 갔다. 그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 판정을 내리지 않고 기다리는 얼굴로. 그 얼굴이 너무 조용해서, 나는 그만 —
접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잘 자."
언덕을 오르며 나는 방금 접은 문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사십육 년 분량의 서랍에 한 장이 더해졌다. 다만 이번 것은 지금까지의 것들과 조금 달랐다. 접은 자리가, 희미하게 뜨거웠다.
딸의 카메라가 언젠가 나를 향하면, 나는 이 문장부터 꺼내게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고, 예감이라는 것은 대개 예감이 아니라 결심의 다른 이름이다.
— 2화 끝 —
두 번째 촬영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사키는 삼각대를 지난번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세웠다. 바닥의 흠집을 기준으로 삼는 모양이었다. 카메라를 다루는 인간에게는 두 종류가 있다. 찍히는 것을 믿는 인간과, 찍는 위치를 믿는 인간. 그 아이는 후자였고,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문 이 번, 다시요." 아이가 노트를 펼쳤다. "왜 갑자기 사라졌어요? 프로 간다던 사람이."
지난번에는 이 질문 앞에서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무 종도 울리지 않았다. 세상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구해 주지 않는다.
"……길어질 텐데."
"테이프 세 개 있어요."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만 이름 하나만 빼고 전부 말하기로 했다. 이야기에서 이름 하나를 빼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름이라는 것은 빼내고 나면 그 자리에 이름 크기의 구멍이 남고, 듣는 사람은 대개 구멍부터 알아본다. 특히 그 아이처럼 구멍을 찾는 훈련이 되어 있는 인간은.
스무 살의 도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 도시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부터 말해야 한다.
나는 야구 특기생으로 도쿄의 대학에 갔다. 기숙사는 사 인실이었고, 아침 여섯 시에 기상 나팔 대신 주장의 고함이 있었고, 세탁기는 두 대뿐이었는데 부원은 마흔 명이었다. 켄지도 같은 팀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좌익수라는 포지션과 수다라는 재능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온 남자다. 녀석은 입학 첫 주에 기숙사 전원의 출신지와 혈액형을 외웠다. 나는 삼 년을 같이 산 룸메이트의 생일도 몰랐다. 세상의 균형이라는 것은 대개 그런 식으로 맞춰져 있다.
'프로 지명 확실'이라는 활자가 이름표처럼 붙어 다녔다. 스포츠 신문이 그렇게 썼고, 스카우트들이 백네트 뒤에 앉기 시작했고, 감독은 나를 부를 때만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공이 떠 있는 동안 세상은 단순했고, 나의 세상에는 언제나 공이 떠 있었으니까.
그리고 주말마다,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대에 가지 못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마루노우치의 회사에서 서류를 만들었다. 아침 여덟 시 오십 분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세상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무직 사원이었을 것이다. 물론 회사의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림은 주말로 밀려났다. 그리고 주말의 그 사람이 그리는 것은, 대개 나였다.
토요일 오후의 진구 구장. 리그전이 있는 날이면 그 사람은 외야 자유석의 왼쪽 구역, 앞에서 여섯 번째 줄에 앉았다. 늘 같은 자리였다. 무릎 위에 스케치북, 옆자리에 회사 가방. 나는 외야 수비 위치에서 그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타구를 쫓을 때는 공만 보였지만, 이닝 사이의 빈 시간에는 그 자리부터 보였다. 사만 명이 들어가는 구장에서 한 자리만 밝기가 다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가이엔의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그 사람은 스케치북을 보여 주지 않았다. 다 그려지지 않은 것은 보여 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의 원칙이었다. 다만 한 번, 바람에 페이지가 넘어간 적이 있다. 연필로 그린 내가 거기 있었다. 담장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등번호 8. 고등학교 때의 그림과 같은 구도였는데, 어딘가 달랐다. 어디가 다른지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낙하지점을 아는 사람의 등이 됐어."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지금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이 나를 나보다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것이 무섭지 않고 편안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보인다는 것은 대개 무서운 일이다. 그것이 편안하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그 시선에 채점표가 없을 것.
그 사람의 시선에는 채점표가 없었다. 그 사람은 평생 채점당하며 자란 인간이었고, 그런 인간은 두 종류로 자란다. 채점하는 인간이 되거나, 채점표를 버린 인간이 되거나. 그 사람은 후자였다.
기숙사에는 통금이 있었다. 밤 아홉 시.
여덟 시 오십 분이 되면 나는 기숙사 뒷담 아래에 서 있었다. 담 너머는 좁은 골목이었고, 골목에는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담의 높이는 일 미터 팔십.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넘어왔다. 우리는 담을 사이에 두고 십 분을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회사의 복사기가 또 고장 났다든가, 오늘 수비에서 한 발 늦게 출발했다든가, 그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밤공기를 나눠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홉 시 일 분 전에 그 사람은 말했다. "가."
"어."
"잘 자."
"어."
나는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지는 인간이고, 그 시절의 내 대답은 대부분 한 글자였다. 그 사람은 그것을 불평한 적이 없다. 접는 사람은 삼키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일요일에는 공중전화가 있었다. 기숙사 일 층의 초록색 전화기. 십 엔짜리 동전을 쌓아 놓고 거는 전화였다. 동전 하나에 일 분. 우리는 대개 여섯 개에서 여덟 개 분량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동전이 떨어지기 전에 그 사람은 꼭 말했다. "다음 주에 봐." 뚜, 하는 소리로 끊기는 것이 싫어서, 끊기기 전에 자기 손으로 매듭을 짓는 것이다. 그 사람다운 방식이었다.
그런 일 년이었다. 특별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 하나도 없는 일 년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일 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행복이라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사진에 찍히지만, 상태는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행복을 늘 뒤늦게, 그것이 끝난 자리에서만 발견한다.
"잠깐만요." 사키가 손을 들었다. "그 여자친구, 이름이 뭐예요?"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예상보다 빨랐다.
"……다음 질문."
"치사하다."
"인터뷰 대상에게는 묵비권이 있어."
"그런 규칙 없어요." 아이는 볼펜 끝을 깨물었다. "뭐, 좋아요. 어차피 테이프는 거짓말 안 하니까."
어차피 테이프는 거짓말 안 하니까. 나는 그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았고, 어디서 들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할게요. 그래서요?"
삼학년 봄에 대해서.
그해 우리 팀은 강했다. 리그 최종전까지 갔고, 상대와 승률이 같았다. 이기는 쪽이 우승이었다. 오월의 진구 구장, 관중석은 평소의 세 배쯤 찼고, 백네트 뒤에는 스카우트가 일곱 명 앉아 있었다. 켄지가 아침에 그 숫자를 세고 왔다. "일곱이다, 일곱." 녀석은 그 말을 시합 전까지 열한 번쯤 했다. 긴장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켄지의 방식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외야 자유석 왼쪽, 앞에서 여섯 번째 줄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토요일이었으니까. 스케치북은 무릎 위에 있었지만, 그날은 한 장도 그리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그릴 수 없는 날도 있어, 라고 그 사람은 말했다. 너무 보고 싶은 것은 그릴 수 없어. 눈이 연필을 이겨 버리니까.
구회말, 투아웃. 스코어는 이 대 일. 우리가 한 점 앞. 상대의 사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풀카운트에서 육구째. 타구음은 정확했다. 금속 배트가 공의 중심을 잡는, 그 건조하고 기분 나쁘게 완벽한 소리. 공은 좌중간으로 떴다. 높게, 깊게. 담장까지 가는 코스였다. 잡으면 우승이고, 빠지면 역전이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이 먼저 갔다. 왼쪽 시야 끝에서 켄지도 달리고 있었다. 좌익수와 중견수, 두 개의 점이 하나의 낙하지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콜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는, 훗날 켄지와 나의 기억이 다르다. 나는 했다고 기억하고, 켄지는 못 들었다고 기억한다. 어쩌면 둘 다 맞을 것이다. 사만 명의 함성은 소리라기보다 기압이고, 기압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공 하나보다 가볍다.
공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세상은 언제나처럼 단순했다. 공이 있었고, 글러브가 있었고, 그 사이의 줄어드는 거리가 있었다. 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공이 글러브에 들어왔다. 잡았다, 고 생각한 것과 거의 동시에 —
왼쪽에서 무언가가 왔다.
"……그래서요?" 사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캠코더의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테이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것을 잠깐 보았다. 편리한 기계다. 끝나는 시점을 스스로 알려 주다니. 인간에게는 그런 기능이 없다. 있었다면 나는 그 오월의 아침에 경보음을 들었을 것이다.
"……테이프, 끝나 간다."
"아직 삼 분 남았어요."
"그 얘기는 삼 분으로는 안 끝나."
아이는 입을 삐죽였지만, 캠코더를 껐다. 찍는 위치를 믿는 인간은 끊는 시점도 믿을 줄 안다. 아이는 삼각대를 접으며 지나가듯 물었다.
"아저씨. 그 공, 잡았어요?"
"……잡았어."
"그럼 우승했네요?"
"우승했지."
"근데 왜 그런 얼굴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도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가방을 메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다음 촬영 때는, 잡은 다음 얘기부터예요."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닫혔다. 나는 텅 빈 가게에 한참 앉아 있었다. 오른손이 저절로 왼쪽 어깨로 갔다. 비가 오려면 아직 먼 계절인데, 어깨 속의 낡은 못이 희미하게 울고 있었다. 이십오 년 전에 박힌 못이다. 뽑는 수술은 두 번 했지만, 못이라는 것은 뽑아도 구멍을 남긴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꿈을 꿨다. 공중에 떠 있는 꿈이었다. 공은 글러브 안에 있었고, 세상은 아직 단순했고, 왼쪽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오지 않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영원히 내려가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내려가지만 않으면, 그 다음의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사람은 내려온다. 그것이 낙하지점이라는 말의 뜻이다.
— 3화 끝 —
세 번째 촬영 날, 사키는 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잡은 다음 얘기부터예요."
인사도 없었다. 훌륭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인터뷰가 대부분 시시해지는 것은 본론 앞에 인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캠코더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나는 잡은 다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왼쪽에서 온 것은 켄지였다.
시속으로 치면 둘 다 이십 킬로미터를 넘었을 것이다. 인간 두 명분의 질량이 하나의 낙하지점에서 만났다. 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관중석에서는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듣지 못했다. 몸의 안쪽에서 나는 소리는 몸의 주인에게 제일 늦게 도착하는 모양이다.
하늘이 보였다. 오월의 하늘이었다. 구름이 두 개 떠 있었고, 나는 누운 채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평화로운 몇 초였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세상의 온도가 바뀌었다.
글러브 안에는 공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구급차 안에서도, 엑스레이실 앞 복도에서도. 간호사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 줄 때까지 쥐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몸이라는 것은 주인이 정신을 놓아도 마지막 업무를 계속하는 성실한 조직이다. 그날 내 몸의 마지막 업무는 아웃 카운트 하나였고, 그것은 우승이 걸린 아웃이었고, 몸은 그 업무를 완수했다.
팀은 우승했다. 나는 그 순간을 병원 천장을 보며 라디오로 들었다.
진단명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깨 속의 어떤 것들이 부서졌고, 부서진 것들 중 몇 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며 말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일상생활. 나는 그 단어를 오래 생각했다. 의사에게 야구는 일상생활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야구가 일상생활이었고, 나머지 전부가 예외였다. 같은 단어가 사람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된다. 언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공정한 심판이 아니다.
수술은 두 번 했다. 어깨에는 금속 못이 들어갔다. 재활은 아홉 달 했다. 아홉 달 뒤에 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시속 백 킬로미터로.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의 나보다 느린 공이었다.
스카우트는 일곱 명이었다. 부상 전에는 일곱 명이었다는 뜻이다. 부상 후에 몇 명이 되었는지는 셀 필요가 없었다.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조용한 사건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사건이 인생에서 제일 큰 사건인 경우가 종종 있다. 행복이 그렇듯이, 몰락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특기생 장학금은 다음 학기부터 없어졌다. 학비를 낼 방법이 나에게는 없었다. 어머니는 야간조를 늘리겠다고 했다. 나는 자퇴서를 냈다. 어머니에게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말했다. 순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우리 집은 중요한 것일수록 말하지 않는 것으로 지키는 집이었고, 나는 그 집의 아들이었다.
그 사람은 병원에 매일 왔다.
회사가 끝나면 전철을 갈아타고 와서, 면회 시간이 끝나는 여덟 시까지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스케치북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는 대신 내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부서지지 않은 쪽 손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말을 접는 사람이고 나는 말을 삼키는 사람이라, 병실은 대체로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힘들지 않은 상대는 인생에 몇 명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훗날 그 몇 명 중 한 명을 십 초 만에 버리게 된다.
퇴원하는 날, 그 사람은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생각 중이야."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야구를 빼면 나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의 재료가 없었다. 이십일 년 동안 낙하지점 하나만 보고 달려온 인간이 낙하지점을 잃으면, 남는 것은 달리는 법뿐이다. 방향 없이 달리는 법.
나는 해상자위대에 지원했다. 왜 하필 바다였느냐고 사키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바다에는 외야가 없으니까."
농담이 아니었다. 야구가 보이는 곳, 야구가 들리는 곳, 야구의 냄새가 나는 곳에서 최대한 먼 장소가 필요했다. 일본에서 그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바다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계산은 틀렸다. 함내 라디오에서는 야구 중계가 나왔다. 도망이라는 것은 대개 그런 식으로 실패한다. 사람은 장소에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자기가 사랑했던 것의 전파 범위에서는 도망치지 못한다.
입대하고서도 연애는 이어졌다.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통, 그다음에는 이 주일에 한 통, 그다음에는 달에 한 통.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쓸 수 없는 것이 늘어나서였다. 오늘도 훈련을 했다, 밥은 먹었다, 바다는 넓다 — 그런 문장들만 남을 때까지, 쓸 수 없는 것들이 편지지의 여백을 채워 갔다. 어깨는 이제 안 아프냐는 그 사람의 질문에 나는 두 번 다 답장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은 어깨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면회는 세 번 왔다. 세 번째 면회 때 그 사람은 부두 끝까지 배웅을 나왔고, 헤어지기 전에 뭔가 말하려고 했다. 문장은 도중에 접혔다. "……아니야. 몸 조심해."
나는 그 접힌 문장을 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시작이었다. 접힌 것을 펴 보지 않는 남자와, 펴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 우리는 각자의 결함으로 서로를 향해 조금씩 눈을 감아 갔다.
여기서부터는, 테이프에 없는 이야기다.
그날 인터뷰에서 나는 입대까지 말하고 캠코더를 끄게 했다. 사키는 "그래서 그 여자친구랑은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테이프 갈 시간이다"라고 대답했고,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노골적인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야기는 열네 살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마흔여섯에게도.
스물셋의 시월, 나는 나흘짜리 휴가를 받았다.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놀라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 연락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해질 만큼 뜸해져 있었다는 사실이 절반. 그 비율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번 다시 계산해 봤지만, 지금도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도쿄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그 사람의 아파트는 역에서 걸어서 십이 분. 나는 그 길을 외우고 있었다. 편의점을 지나고, 세탁소를 지나고, 자판기 두 대를 지나면, 가로등이 하나 있는 좁은 골목.
가로등 아래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남자였다. 남자가 그 사람을 안고 있었다. 남자의 등이 이쪽을 향하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기타 케이스 같은 것이 골목 벽에 세워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기억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것은 현장검증에 응하지 않는다.
나는 십 초를 서 있었다.
십 초는 길다. 심판은 그것을 안다. 투구 하나의 판정에 주어지는 시간은 영점 몇 초다. 십 초면 판정을 백 번 할 수 있다. 아니면 — 세 발짝 걸어가서, 목소리 한 번 내면 되는 시간이다. 어이, 라든가. 뭐 해, 라든가. 두 글자면 충분했다. 두 글자에 인생 전체가 걸려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그 십 초 동안 보았다. 안고 있는 남자를. 안겨 있는 그 사람을. 그리고 판정을 내렸다.
돌아섰다.
돌아서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역까지의 십이 분을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걸었다. 그날 밤 안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다음 편지를 쓰지 않았고,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반년 뒤에 국제 심판학교의 자료를 신청했다.
훗날 나는 심판이 되어 배웠다. 구심의 판정에는 철칙이 하나 있다. 끝까지 보고 나서 콜을 한다. 공이 미트에 들어가기 전에 콜을 하는 심판은 심판이 아니다. 그날 골목의 나는 공이 아직 공중에 있는데 콜을 했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에서.
십 초만 더 봤다면 무엇이 보였을지, 나는 이십삼 년 뒤에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한참 뒤의 이야기다.
촬영이 끝나고 사키가 돌아간 뒤, 나는 가게의 불을 끄고 어두운 레인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골목의 십 초는 세월이 지나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기억들은 전부 낡아 간다. 우승의 순간도, 고시엔의 함성도, 이제는 오래된 팔 밀리 필름처럼 긁히고 바랬다. 그런데 그 십 초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가로등의 색온도까지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유는 알고 있다. 재생 횟수의 문제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오심을, 세상 그 어떤 명장면보다 많이 돌려 본다. 돌려 볼 때마다 화질은 좋아지고, 판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그 재생 장치의 저주받은 사양이다.
천장에서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세 개 중 두 개 분량의 빛. 나는 문득, 사키의 캠코더를 생각했다. 그 작은 기계는 찍은 것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고, 슬로모션으로도 볼 수 있고, 남에게 보여 줄 수도 있다. 나의 재생 장치에는 그 기능이 전부 없다. 혼자서만, 실시간으로만, 영원히 같은 판정으로만 볼 수 있다.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라고 아이는 말했다.
그 말은 틀렸다. 나는 이십삼 년 동안 매일 다시 봤다. 다만 판독 없이 봤을 뿐이다. 다시 보는 것과 판독하는 것은 다르다. 판독에는 다른 각도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골목의 다른 각도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언덕 위의 집에서 딸과 살고 있다.
다른 한 명이 누구인지를,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 4화 끝 —
"엄마. 전설 아저씨, 대학 때 여자친구 있었대."
사키가 식탁에서 편집 노트를 넘기며 말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접시를 헹구던 손이 반 박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수돗물 소리가 그 반 박자를 덮어 주었다. 물소리라는 것은 그런 용도로 꽤 쓸 만하다.
"……그렇구나."
"이름은 안 가르쳐 줘. 묵비권이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인터뷰가 원래 그래."
"근데 이상하지 않아?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다 그만두고 군대 가고.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마지막 접시를 선반에 올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서는 이십삼 년 분량이다. 서랍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얇은 한 장을 꺼냈다.
"……사정이 있었겠지."
사키는 코로 웃고 노트로 돌아갔다. 아이의 등 뒤에서 나는 행주를 갰다. 이미 개어져 있었지만, 한 번 더.
그 여자친구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무도 인터뷰하러 오지 않는다. 버려진 쪽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다. 극적인 데가 없기 때문이다. 버려진 쪽은 그저 어제와 같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와 같은 전철을 타고, 어제와 같은 서류를 만들 뿐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방음이 잘되어 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이것은, 아무도 찍으러 오지 않는 쪽의 기록이다.
편지의 주기가 늘어난다는 것을 나는 소인으로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통이 이 주에 한 통이 되고, 이 주가 한 달이 되었다. 나는 우편함을 하루 두 번 확인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출근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 우편함이라는 것은 이상한 상자다.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데도 매번 같은 크기의 용기가 든다.
편지의 내용도 얇아졌다. 훈련을 했다, 밥을 먹었다, 바다는 넓다. 나는 그 세 문장 사이의 여백을 읽으려고 애썼다. 여백을 읽는 것은 나의 특기였어야 했다. 접는 사람은 접힌 것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여백만은, 읽으려고 하면 눈이 미끄러졌다. 무서운 것 위에서 눈은 스케이트를 탄다.
어깨는 이제 안 아프냐고 두 번 물었다. 두 번 다 답장에 그 부분만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아프다는 뜻으로 읽었다. 틀린 독해였다는 것을 아는 데 이십삼 년이 걸렸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그 사람의 상처였다는 것을. 심판은 다친 데가 없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고, 그 사람도 아직 몰랐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은 면회였다. 부두 끝까지 배웅을 나갔고, 헤어지기 전에 나는 말하려고 했다.
돌아오면, 그때는 네가 먼저 말해 줘. 우리 다음 얘기.
문장은 부두의 바람 속에서 접혔다. "……아니야. 몸 조심해."
그 사람은 어, 라고 대답하고 배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등이 작아지는 것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끝까지 보지 말 걸 그랬다.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눈에 박혀서 평생 빠지지 않는다. 나는 그 등을 그 후로 수백 번 그리게 된다. 한 번도 종이 위에서가 아니라, 전부 눈꺼풀 안쪽에서.
시월의 그 밤에 대해서.
도쿄에 나와 있는 히가시노 동창들의 모임이 있었다. 예닐곱 명이 이자카야에 모여서, 고향의 축제가 어땠다느니 누가 결혼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잘 나가지 않았지만, 그날은 나갔다. 방에 혼자 있으면 우편함 생각만 하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에 케이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후지사와 케이. 고등학교 때 문화제에서 기타를 치던, 졸업식 날 나에게 피크를 준, 그 애다. 도쿄에서 음악을 한다고 했다. 오디션 이야기를 하고, 라이브하우스 이야기를 하고, 언젠가 완성할 거라는 노래 이야기를 했다. 케이는 취해 있었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취하지 않은 사람이 취한 사람을 바래다주는 것 같은 밤길이었다.
아파트 앞 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케이가 갑자기 나를 안았다.
나는 화가 났다. 놀랐고, 그다음에 화가 났다. 두 손으로 가슴을 밀어냈다. 케이는 서너 걸음 물러나서, 취한 얼굴 그대로 사과했다. 미안, 미안. 진짜 미안. 나는 됐으니까 가, 라고 말했고, 케이는 기타 케이스를 챙겨서 골목을 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시간으로 치면 이십 초쯤. 불쾌하고, 시시하고, 다음 날이면 잊을 종류의 사건이었다.
나는 방에 올라가 세수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꺼냈다. 내일 부칠 편지였다. 이번에는 여백 없이 쓰자고 생각했다. 접지 말고, 전부 쓰자고. 보고 싶다는 말을 첫 줄에 쓰자고.
그 편지는 부치지 못했다. 부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편지도, 전화도. 내가 건 전화는 받지 않았고, 내가 보낸 편지는 답장이 없었고, 반년 뒤에는 부대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통지조차 오지 않은 채 편지가 반송되었다. 수취인 불명.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고, 제일 잔인한 네 글자였다.
이유를 아는 데 이십삼 년이 걸렸다. 그 골목의 이십 초와 그 사람의 십 초가 같은 밤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카메라는 한 대뿐이고, 앵글은 하나뿐이고, 다른 앵글의 존재는 아주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밝혀진다.
버려진 쪽은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이유를 만든다.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내가 잘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의 목록. 답장이 늦었던 것. 면회를 세 번밖에 못 간 것. 부두에서 접은 문장. 어깨 얘기를 두 번이나 물은 것 — 어쩌면 그것이 상처였을까. 목록은 밤마다 길어졌다. 버려진 쪽의 상상력은 검사보다 유능하다. 증거 없이도 기소할 수 있고, 피고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일 년을 그렇게 보냈다. 회사는 다녔다. 서류는 만들었다. 실수는 하지 않았다. 사람은 무너진 채로도 출근할 수 있다.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제일 쓸쓸한 정의인지도 모른다.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연필을 잡는 대신 잤다. 그리는 것은 보는 것이고, 보는 것은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 위험한 행위였다. 무엇을 그려도 마지막에는 등번호 8이 나왔기 때문이다. 손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주인을 배신한다.
그 일 년 동안, 케이가 있었다.
그 밤의 일을 케이는 정식으로 사과했다. 술을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냥, 곁에 있었다. 밥을 먹자고 불러냈고, 시시한 영화 이야기를 했고, 라이브가 있으면 표를 줬다. 나는 그 친절에 기댔다. 기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기댔다. 물에 빠진 사람은 붙잡는 것의 이름을 고르지 않는다.
일 년쯤 지난 어느 밤, 케이가 고백했다. 두 번째였다. 대학 때 한 번, 그리고 그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비어 있지 않아서, 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케이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한 얼굴을 했다. 웃으려다 실패한 것 같은, 어딘가 부서지는 것 같은 얼굴. 나는 그 표정의 뜻을 몰랐다. 이십여 년 뒤에 알게 된다. 세상에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형벌이 되는 위로가 있다는 것을.
"그림 그리고 싶다며. 가."
어느 날 케이가 말했다. 라멘집에서였다. 나는 면을 집다 말고 그 애를 봤다.
"회사 그만두고, 뉴욕 가. 아트 스쿨. 돈은 얼마나 모았어?"
"……갑자기 무슨."
"너 요즘 얼굴이, 서류 같아."
서류 같다는 말은 이상하게 정확했다. 결재된 서류. 나는 아버지의 결재란 안에서 살아온 인간이고, 이제는 얼굴까지 서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너 계속 우편함만 볼 거잖아." 케이는 라멘 국물을 보면서 말했다. 나를 보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안 와. 갈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거야, 어디든."
그 애가 그 말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그때의 나는 반의반도 몰랐다. 자기 곁에 두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것도 그 사람이 아직도 다른 남자의 우편함을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 나는 그저 그 말이 등을 밀었다고만 기억했다. 이십여 년 동안, 그렇게만.
나는 사표를 냈다. 아버지에게는 수속이 끝난 뒤에 말했다. 전화기 너머의 침묵은 길었고, 마지막에 아버지는 한마디 했다. "……멋대로 해라." 결재란이 비어 있는 서류를,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출한 것이다. 스물다섯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늦다고 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최고 속도였다.
뉴욕에 대해서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만.
그 도시의 좋은 점은,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딸도 아니고, 버려진 여자도 아니고, 얼굴이 서류 같은 사무원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림을 그리는 동양인 유학생이었고, 그것은 내 인생 최초의, 수식어 없는 나였다.
아트 스쿨의 과제는 크로키였다. 움직이는 것을 그려 오라고 했다. 지하철의 사람들을 그렸고, 공원의 개를 그렸고, 그러다 어느 토요일, 같은 반의 친구가 말했다. 야구장에 가 보자. 싸고, 사람들이 계속 움직여.
마이너리그 구장이었다. 관중은 드문드문했고, 잔디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핫도그는 눅눅했다. 나는 삼루 쪽 관중석에 앉아 크로키북을 펼쳤다. 타자를 그리고, 투수를 그리고, 파울볼을 쫓는 아이들을 그렸다.
그리고 홈플레이트 뒤에 서 있는 심판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연필이, 느려졌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프로텍터 때문에 몸의 선도 뭉개져 있었다. 그릴 수 있는 것은 자세뿐이었다. 무릎을 굽히고, 등을 낮추고, 공을 기다리는 —
기다리는 자세.
수백 번 그린 적이 있는 무언가가, 그 자세 안에 있었다. 눈은 아직 몰랐다. 그러나 연필은 알고 있었다. 연필은 좋아하는 것 앞에서 반드시 느려진다.
— 5화 끝 —
CHARACTERS
야구부 중견수, 등번호 8. 마을이 아는 천재 외야수
빚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 도시락 공장 야간조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 "중요한 것일수록 말하지 않는 것으로 지키는" 집에서 자랐다. 명료한 세계만 견딜 수 있는 기질. 공이 떠 있는 동안만 세상이 단순해지는 아이라서, 외야에서는 누구보다 빨랐고 교실에서는 누구보다 말이 없었다. 감정이 실릴수록 말이 짧아진다. 3학년 여름, 팀을 학교 사상 처음으로 고시엔에 데려간다.
"공이 떠 있는 동안은 세상이 단순해져. 공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사람보다 쉬워." — 강변에서, 딱 한 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소녀. 미술 공모전 입선 '외야의 소년'
"아버지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결재"인 차가운 집에서, 냉기를 들키지 않으려 웃는 연습을 하며 자랐다. 필요한 순간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아이 — 좋아한다는 말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도, 전부 침묵으로 한다. 대신 스케치북이 말한다. 3년 동안 한 사람을 수백 번 그렸고, 그 사실을 그린 당사자만 모른다.
문화제 무대의 소년. 마을에서 제일 먼저 '꿈'을 입 밖에 낸 아이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 —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 문화제 무대에서 자작곡을 부르던 소년이다. 무대 위에서는 수백 명 앞에 서면서, 정작 한 사람 앞에서는 말을 걸지 못했다. 그의 짝사랑은 처음부터 삼각형이었다 — 전학 온 봄, 미술실 창가에서 그림 그리는 료코를 처음 봤지만,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외야의 등번호 8을 향해 있었고, 케이는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냈다. 졸업식 날 말 대신 기타 피크 하나를 건넸고, 그녀는 그것이 고백인 줄 몰랐다. 그 시절 그녀를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첫 자작곡은 아직 후렴이 없다 — 부르면 끝나 버릴 것 같아서.
LOCATION
열여섯의 봄, 입학식 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 야구 특기생 소년은 첫날부터 마을이 아는 얼굴이었고, 소녀는 교실 맨 뒷자리에서 창밖을 그리는 아이였다. 미술실의 창은 그라운드를 향해 나 있다.